연극 <안산, 황금용> 리뷰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이 있다. 본국을 떠나 타지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그 행위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 복잡한 갈등의 역사를 거쳐 성장한 일명 디아스포라 키즈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감정을 담은 작품들을 활발히 내놓고 있다. 낯선 땅에서 겪는 문화적 소외감, 언제나 이방인이라는 감각, 외로움과 막막함,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을 다루는 이 장르는 언제나 안정적인 공동체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 같은 장르처럼도 느껴진다.
단일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특히 한국을 떠나본 적 없는 한국인에게 이는 막연히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260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고개를 조금만 돌려 고향 땅을 떠나온 이들의 삶에 시선을 둬야 할 필요가 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처연한 삶은 그린 작품, 연극 <안산, 황금용>을 보며 그러한 생각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안산 다문화 거리에 위치한 타이-차이나-베트남 식당 황금용. 그 이름처럼이나 다채로운 퓨전 음식을 판매하는 이 식당은 언제나 손님으로 북적이다. 이곳의 주방에는 동남아에서 온 다섯명의 요리사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끝없이 밀려드는 주문, 비좁은 공간에 자꾸만 겹치는 동선, 견디기 힘든 열기와 습기... 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역시나 불법체류자로서의 불안정한 삶이 가장 괴롭다. 이 중 새로 들어온 베트남 요리사 '꼬마'는 ―20대 초반이지만 가장 어리기에 이렇게 불린다―는 치통에 고통 받는다. 그들은 모두 치과에 갈 수 없는 신분이기에, 앓고 또 앓는 꼬마를 견디지 못한 동료들은 결국 꼬마의 썩은 앞니를 뽑는 걸 돕고, 날아간 이는 손님 상에 나갈 수프에 빠져 버린다. 불행하게도 꼬마는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식당 주방에 웅크린 채 사망한 꼬마를 보며 동료들은 끔찍한 기분에 휩싸인다.
수프를 서빙 받은 손님, 승무원 '안'은 근처 공항 저가 항공사의 승무원이다. 긴 비행을 마치고 동료이자 룸메이트인 승무원과 함께 황금용 식당을 찾은 그는 수프에 빠진 이빨을 발견하고, 그것을 빨간 냅킨에 싸 집까지 들고 온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어둠 속에서 상념에 잠기다, 저도 모르게 그 출처 모를 썩은 이빨을 입 안에 넣고 굴려본다. 까맣게 구멍이 난 이빨을 통해 그 주인의 심정과 삶을 이해보려는 듯, 그 아득한 불행의 블랙홀에 같이 빠져들겠다는 듯 이 기이한 의식이 계속된다. 결국 모두가 잠든 새벽, 길을 나선 그는 다시 이빨을 입에 굴리다 강물 아래로 그것을 뱉어 버린다.
안은 밤길에 황금룡 요리사들을 마주치는데, 그들은 죽은 꼬마의 시신을 강물에 흘려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꼬마의 시신은 해류를 타고 흘러 흘러 고향 마을에 닿는다. 꼬마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에게 '여동생을 찾지 못했다'고 사죄하고, 자신의 처연한 삶에 대해 털어놓는다. 죽은 몸이 다시 고향에 닿는다는 이 판타지적인 결말은 그렇게라도 꼬마의 외로움을 해소해주고 싶은 마음이자, 외면과 고통 속에 죽어간 꼬마에 대한 사죄로도 읽혔다.
황금용 식당의 이웃들 역시 저마다의 불행을 안고 있다. 윗층에 사는 할아버지는 날로 쇠약해져가고, 할아버지의 손녀 커플은 원치 않은 임신에 갈등을 겪고, 폭력적인 남편은 이주민 남성과 바람이 난 아내에 분노한다. 한편 황금용 식당 맞은편 식료품점 주인은 베트남 여성을 붙잡아 감금하고, 성매매를 강요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각자 생의 불행을 안고 있는 이 한국인들이 모두 이 여성의 인격을 죽이는 데 동참한다는 것이다. 마치 불행한 만큼 누군가를 불행하게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처럼, 여성을 모욕하고 사물화 해간다.
그러나 <안산, 황금룡>은 이 무거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우화'를 택한다. 이 베트남 여성은 연극 내내 '베짱이'로 일컬어진다. 잘 알려진 <개미와 베짱이>에 빗대어 이야기 되는데, 개미는 도움을 청해오는 베짱이에게 '넌 여름 내내 게으르게 굴지 않았냐'며 '쌀 한 톨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뭐든 하겠다는 약속만 한다면' 거두어 주겠다는 개미의 말에 베짱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그 이후로 개미의 감시 하에 인격이 지워진 베짱이는 안산 다문화 거리 주민들의 묵인과 외면, 나아가 가담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베트남 여성으로 치환된다. 베짱이의 정체를 깨달았을 때, 안타까운 탄식과 분노를 뱉게 되는 건 조건반사이다. 거기에 더해 한국인으로서 이 상황에서 완전히 무결한 입장이 못 된다는 생각에 부끄러움도 밀려온다.
연극의 매력적인 지점이라 하면 먼저 젠더 스위치 캐스팅을 들고 싶다. 여성 배우들이 해로운 마초이즘에 절여진 남성들을 연기하고, 남성 배우들이 여성을 연기한다. 사실 이주 노동자의 잔혹한 실상을 다룬 작품인 만큼, 관객 입장에서 보기 쉽지 않은 장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젠더 스위치 캐스팅만으로도 이 불편감이 다소 완화되는 느낌이었다. 또한 배우들은 역할과 완전히 융합되는 대신 이야기를 전달하는 해설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배우 한 명당 최소 3개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고, 대사는 물론 지문을 직접 발화하는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이는 이 작품의 우화적인 성격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우화가 언제나 그러하듯 날카로운 진실을 더욱 차갑게 전달한다.
연극 [안산, 황금용]은 2025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에 선정되었을 만큼 '믿고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수많은 이주노동자와 함께 삶을 꾸려가야 하는 우리에게 단일 민족이라는 낡은 정체성을 천천히 폐기해 가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라는 형식으로 설득시킨다. 대학로 씨어터쿰에서 12월 21일까지 공연되는 이 작품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