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튤립> 리뷰
창작물에서 전쟁을 다루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거칠게 울리는 총성과 뒤섞이는 비명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정교하게 섞어내면 그 참혹함이 금세 와닿는다. 잔혹한 속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라면 가까워지는 군홧발 소리에 이리저리 도망치는 민간인들을, 이후 여기저기 고인 피웅덩이와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은 시체 더미를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에는 다가오는 총과 칼, 폭탄과 파편, 살점들만으로는 채 다 덮을 수 없는 미묘한 속성이 있다. 전쟁이 항상 전장 한 가운데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 발의 총성으로 시작한 전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삶의 배경이 되고, 관계의 기준이 되며, 끝내 생사의 근간이 되어간다.
여기,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쟁과 식민지를 튤립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다. '전쟁에 꽃이라니 이 무슨 모순인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튤립은 사실 꽃이 아닌 구근을 키우는 식물로 땅에 잠들어 있는 구근은 또 다른 생을 맞이하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튤립 구근은 독성을 지닌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화려한 이미지와는 달리 독을 품은 채 다음 시기를 기다리는 인내와 치밀함의 상징처럼도 느껴진다. 빨강, 노랑, 주황... 그 갖가지 색과 꽃말은 제각각이라도 독을 품은 구근은 사라지지 않은 근원으로 남아 있다. 작가는 튤립을 장소이자 기억, 지워지지 않는 것으로 은유한다고 밝힌다.
극단 돌파구의 2026년 첫 창작 신작, <튤립>을 감상하고 왔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주요 인물을 다섯 명이다. 먼저 그 새카만 얼굴 때문에 '조선인 까마귀'라는 별명을 지닌 '나카무라 쿠로'는 도쿄의 한 명문 사립학교에서 관리인으로 일한다. 작은 꽃밭을 가꾸는 그는 학교에서 일하는 간절한 이유를 지닌 듯 보인다. 그리고 매일 그를 찾아와 즐거운 대화를 주고받는 학생 '쥬리프'는 쿠로와 독특한 우정을 쌓아온 인물이다. 졸업을 앞둔 쥬리프가 쿠로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면서, 쥬리프의 아버지이자 현재 동양척식회사의 간부인 '야마토'가 등장한다. 또한 집과 가족을 가꾸는 쥬리프의 어머니 '에리코', 그리고 그를 보조하는 시녀 '미호'까지. 연극은 학교와 쥬리프의 집, 단 두 공간만을 오가며 이들의 미묘하게 뒤틀린 관계성을 탐구해 나간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쥬리프는 사실 쿠로의 아들이었고, 러일전쟁 당시 군인이었던 야마토가 튤립 꽃밭에서 쥬리프를 훔쳐 왔다는 과거가 드러난다. 이 진실을 알게 된 에리코는 큰 충격에 빠지고,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마침내 쿠로를 독살하기에 이른다. 쿠로와의 먼 미래를 기대하던 쥬리프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근무지인 히로시마로 향한다. 이야기는 열린 결말처럼 끝이 난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인물을 중심으로 소개해보고자 한다. 쥬리프의 아버지 야마토는 다소 모순적인 인물이다. 막 출산한 여성을 찔러 죽이고 아이를 훔쳐올 만큼 악독한 인물인데, 막상 이후로 그를 찾아오는 쿠로의 목숨줄을 끈질기게 붙여 둔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아들 쥬리프가 다니는 학교에 취직시켜주기까지 한다. 아들의 이름을 '쥬리프', 즉 튤립의 일본식 발음으로 지은 장본인도 그이다. 친부를 어떻게든 떼어놓고 출생의 진실을 완전히 덮는 것이, 그렇게 완전한 일본인으로 키우는 것이 유리할 텐데도 말이다.
그는 쥬리프를 가리켜 '내 집에서 20년을 키워온 아들도 일본인이 되지 못했는데, 내선일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라는, 전직 일본 군인으로서는 적절치 못해 보이는 발언을 한다. 이를 통해 그의 생각을 짐작해볼 수 있다. 야마토는 아무리 화려한 색의 꽃으로 키워 놓아도 '근원', 즉 구근은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없지 않을까 의심하고 나아가 어느 정도 확신하는 인물이다. 그는 전쟁통에 끔찍히 아끼며 데려온 자신의 아들은 영원히 완전한 자신의 아들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쥬리프'라는, 그의 근원을 품은 명명을 통해 커다란 진실이 언젠가 빠져나올 구멍을 작게 뚫어둔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아내 에리코는 아주 일관적이다. 그는 언제나 아들 쥬리프를 최우선으로 둔다. 그렇기에 이데올로기도 이상도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쥬리프의 신변에 위협을 줄 만한 쿠로를 떼어놓으려고 하는 것, 진실을 감추고 쥬리프의 미래에 싱싱한 꽃밭만을 마련해주는 것이 에리코의 유일한 행동 동기이자 목적이다. 다만 쥬리프가 전쟁 중에 주워온, 출처도 모를 아이라는 점을 알고도 친자식 못지 않은 정성으로 키워온 그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면 에리코도 흥미로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에리코는 쥬리프를 키우는 20년 내내 '이 아이는 어디에서 왔을까'에 대한 불길한 의문을 불쑥불쑥 마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꾹꾹 눌러두고, 즉 구근을 못 본 채 하고 화려한 색을 드리운 꽃잎만을 정성스레 키워냈다. 그러나 에리코의 바람과 달리 쥬리프는 마침내 쿠로를 알아보았다. 심지어 거부할 수 없는 인연임을 느끼고 또 사랑하게 되었다. 에리코는 그제야 밟으려고 노력했던 구근의 존재를 비참하게 인식한다.
밝고 명랑한 성격의 쥬리프는 도쿄의 명문 사립학교 재학생임에도 아주 계몽적인 성향을 지녔다. 도쿄 도내에서 일어난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사형하라는 시위에 대해 반감을 보이기도 하고, 주변인들이 뭐라 하든 조선인 까마귀 쿠로와의 관계를 힘차게 견인해 나간다. 마냥 해맑을 줄만 알았던 쥬리프는 그러나 자신의 근원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반전 매력을 지녔다. 미호를 통해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캐내고,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꽤나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따라 기어코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낭만파인 동시에 비판하며 진실을 마주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결말에서는 다 보여주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쥬리프가 언젠가는 쿠로의 말을 상기하며 연해주에 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곳에서 자신의 구근을, 그것이 품은 독을 마주하고 잠시 아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과 진실의 비참함까지 받아들일 그는 미래로 나아갈, 즉 역사를 기록하고 써내릴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관람 중 인상적이었던 연출이 하나 있다. 바로 배우들이 완전히 퇴장하지 않고 내낸 무대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극중 쥬리프가 부재한 상황에서 나누는 야마토 부부의 대화를, 쥬리프 역할의 배우는 무대 가쪽에 선 채 빤히 지켜보고 있다. 쥬리프가 실제 나카무라 쿠로, 아니, '막산'의 아들이며 고로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막산의 애처로운 나레이션 역시 무표정의 배우들 모두가 함께 듣고 있다. 지금은 그저 방의 벽들만이 들을 수 있는 비밀들이 언젠가는 다른 인물에게로, 나아가 무대 위로, 공공의 것이자 역사로 기록되고 퍼져나갈 것을 은유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이렇듯 <튤립>은 전장의 한 가운데에도, 피 흘리는 사람들의 주변에도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평온하디 평온한 도쿄의 부잣집을 배경으로 소수의 인물들의 미묘한 관계성에만 집중한다. 튤립처럼 세심하게, 그러나 독을 품은 구근처럼 끈질기게 말이다. 전쟁의 미묘한, 그러나 어디에든 뻗어 있는 끈질긴 속성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며, 새로운 영감을 얻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