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싫어하는 게 있다고요
나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다, 할 말이 있으면 꼭 하는 편이긴 하지만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하지만 친한 사람들에겐 직설적으로 문제 제기와 해결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잘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그리고 친구들은 거기에 자기들 의견을 하나씩 더하고 토론해서 그중에서 좋은 방법을 찾는다
나는 말하는건 싫어하지만 토론하는건 좋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아는 것도 좋고 내가 주장하는 어떤 것이 상대방의 의견보다 효율이 좋거나 하는 걸 설명해주는 것 도 좋고, 비슷하지만 미묘한 사실이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것도 참 좋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는 비슷해 보이는 상황들도 사실 겪고 있는 사람들에 따라서 매우 다르다는 것 그리고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결과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많이 하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스트레인지가 수십 수백만 가지의 미래를 보고 와서 가장 결과가 좋은 방법을 선택하는 것처럼 나도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의 시나리오가 흘러간다 물론 영화처럼 결과가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생각해 봤다는 건 돌발상황조차 내 시나리오 안에 들어있어서 인지 유하게 잘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 나도 싫어하는 게 있다, 아내에게 말은 못했었지만 약속시간은 하루 전날 잡아 줬으면 좋겠고, 약속을 취소하고 싶으면 최소 4시간 전에는 알려줬으면 좋겠다, 오늘 네가 먹고 싶은 걸 먹었다면 다음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오늘 집 앞까지 데려다주지만 사실은 나도 네가 내 집 앞까지 가끔은 데려다줬으면 좋겠다, 매번 내가 먼저 전화하지만 가끔은 네가 먼저 전화해 줬으면 좋겠다
남자니까 라는 말에 참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몸이 많이 안 좋아도 참아야 했고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먼저 나서야 하는 경우가 많고 어른이 되니 이제는 남자니까 가정을 책임져야 한단다 집안의 장손이라고 하지만 부자였다던 할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주신 땅 한 평도 없고 명절이면 우리 장손이 잘되야 한다며 공부 잘해야지 건강해야지 말뿐인 관심과 억지로 주어지는 책임감이 나를 짓누른다
나는 그런 게 싫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싶다 힘들면 좀 쉬고 싶고 가끔은 해보고 싶은 것도 찾아서 해보고 거기에 돈도 좀 써보고 싶다
근대 살다 보면 나는 다 그냥 네 하는 사람인 줄 알더라, 어린 시절 스탠드를 사줬던 어머니가 동생이 좋은 걸 고르자 네가 형이니 동생에게 양보해라 같은, 수도 없이 포기하고 양보했던 많은 날 때문에 나는 여전히 내가 먼저 받는 것보다 먼저 주는게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그게 욕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나도 나중에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너에게 먼저 베푸는 것이지 내가 가지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나중에 나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면 나도 매몰차게 돌아설 것이니까 너에게 먼저 베풀었고 난 받지 못해 언제나 내 손은 빈손이겠지만 마음만큼은 너보다 풍요로운 사람이겠지 받기만 하는 사람은 스스로 일어서지 못한다 제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니까 언제까지나 받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주변에 사람들을 다 잃고 깨닫게 되면 그때는 이미 늦은 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