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180)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 공주님과 가장 큰 고민은 방학 숙제였던 그림일기를 쓰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과는 다르게 방학 기간 동안 여섯 편의 일기만 쓰면 되는 것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일기는 미루고 미뤄 쓰는 게 국룰 인가보다 아직 3편의 일기가 남아있는데 무엇을 쓸지 공주님은 고민이 많으시다
"아빠, 어제 저녁에 족발 먹은 거 쓸까요? 아니면 오늘 밖에 놀러 나갔다 온 것 쓸까요?"
"그.. 일기는 일단 오늘 일을 오늘 쓰는 게 일기 이긴 하지요?"
'하지만 아빠는 어제 족발이 맛있었으니까 족발 먹은 거 쓰면 좋을 거 같아요.'라고 말해주며 빨래를 마저 개기 시작한다 고민을 하던 공주님은
"그냥 둘 다 쓸게요 어차피 아직 3개나 더 써야 해서요."
"ㅎㅎ 그래요."
무슨 일기를 쓸까? 어제 먹은 족발을? 아니면 카페 데이트?
아이가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는 동안 나는 마저 빨래를 개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고등어를 오전에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옮겨 놓았다, 마트에서 파는 고등어 두 마리를 먹기 좋게 손질해서 넣어두었다가 간간히 꺼내서 먹는다, 그냥 구워 먹어도 맛있고, 카레가루를 뿌려 구워도 맛이 좋다 가시가 큼직해서 갈치보다 오히려 발라주기가 편하다
공주님과 같이 쓰는 게시판에 공주님 방학 일정을 보니 벌써 다음 주 수요일이 개학이다, 다른 엄마들은 방학이 왜 이렇게 기냐고 한다는데 왠지 모르게 아쉽다, 방학 동안 많이 못 놀아준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까? 그런 아쉬움에 전기밥솥에 밥이 다 되기 전까지 공주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그림일기 쓰는 것을 구경한다 일기에 등장하는 건 아빠와 자기 두 명뿐이지만 웃고 있는 얼굴이다 손에는 무엇인가를 하나씩 들고 있고 재밌었고 즐거웠던 이야기들만 적혀있다
친구랑 놀러간날 , 그리고 치킨 먹은날 그림일기 ㅎㅎ
"와 공주님 진짜 잘 그렸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칭찬을 해주자 나를 바라보며 씩 웃는다 그게 퍽 귀엽다 밥솥에서 밥이 다 되었다고 김을 내뿜는 소리에 저녁 밥상을 차리기 시작한다, 공주님은 조막만 한 손으로 식탁 위를 정리한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너무 어른스러운 8살짜리 누군가는 일찍 철드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들 하지만 요정도 살아본 나는 그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해보고 어른이 되었으면 좋지 않을까?
내가 공부를 잘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고 (공부를 잘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어린 시절을 즐겁고 재미있게 보냈으면 좋겠다
작년 4월 경부터 쓴 글이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맘 때쯤이면 이혼도 마무리가 되고 뭔가 좀 정리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갈 길이 참 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계획대로 그리고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게 인생사 아니겠는가 내가 재촉할 수 없는 일들은 흘러가게 놔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스트레스라도 덜 받을 텐데 좀 더 나이가 들고 생각이 깊어지면 가능하게 될까?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