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 관찰 일지(2)
O월 O일 공주님 관찰일지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침 9:00
모처럼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며칠 전에 사준 문어 인형이 마음에 드셨는지 잠에서 깨서도 들고 밖으로 나오십니다, 자기 몸보다 큰 인형인데 무겁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바닥을 쓸고 다녀서 인형이 금방 더러워질 것 같습니다
졸고 있는 공주님에게 다가가 인형을 슬며시 들어줍니다
"바닥을 쓸고 다니면 인형 또 빨아야 하는데... 더러운 인형 안고 잘 수는 없겠지요?"
고개를 끄덕이고 인형을 다시 자기 방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아침 10:00
토스트에 시리얼 계란 프라이가 아침밥입니다, 티브이를 보시느라 먹는지 마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른 아빠는 아빠몫을 다 먹고 아이 옆에 앉아서 조각조각 내서 먹이기 시작합니다 오물거리지도 않고 티브이 보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에
'공주님 얼른 먹어야죠?'
목소리를 깔자 아빠를 한번 흘겨보고 다시 식사를 하십니다
아침 11:00
식사를 끝내고 공주님을 방으로 밀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요즘 일이 힘들어서 인지 금세 잠들어 버립니다, 글을 써야 하는데 컴퓨터 앞에 잠깐 앉아있으면 졸립니다, 할게 너무 많은데 시간은 참 부족한 느낌입니다, 주말에는 아이 친구들과 친구들 엄마도 만나서 좀 대화를 해보고 싶고 정보도 얻고 싶은데 아빠는 그 무리에 끼기가 참 힘듭니다
청소하는 동안 공주님은 얌전히 전날 시험본 받아쓰기 문제를 확인해 보고 계시는군요, 오늘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다니 상으로 컴퓨터 한 시간 할 수 있게 해 줘야겠습니다
오후 1:00
점심 식사를 먹고 공주님과 차를 타고 동내 마트에 갑니다 다음 주 먹을 것들을 구입해야 합니다 마트에 와서인지 신이 났습니다 찬찬히 카트를 미는 동안 공주님은 마트를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것을 바구니에 담습니다, 전에 한 입만 먹고 버린 과자도 다시 담길래 한마디 합니다
"공주 전에 그거 사놓고 한입 먹고 버렸잖아요 다 먹을 거 아니면 그만 사요."
볼이 빵빵 부풀어 제자리에 가져다 둡니다, 과자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돈으로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사 먹여야지라고 생각했다가 화들짝 놀랍니다 이럴 때 보면 주부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오후 2:00
공주님과 마트 옆 카페로 갑니다, 날이 많이 쌀쌀해졌지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킵니다, 전에는 진하게 마셨는데 요즘은 연하게 마십니다, 진하면 맛이 없어... 공주님은 캐릭터가 그려진 음료를 고릅니다, 달달하고 새콤한 맛인데 아빠 입맛에는 그냥 그렇습니다
"그냥 사이다에 뭐 더 넣은 맛인데.. 그렇게 맛있습니까? 공주님?"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음료를 마십니다 그 모습에 피식 웃고 맙니다, 카페 구석에 앉아서 둘이 조용히 음악감상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시간을 때웁니다
오후 4:00
집에 돌아와 장본 것들을 정리하고 욕조를 욕실로 밀어 넣습니다, 오랜만에 욕조로 아이를 씻겨야겠습니다, 미지근한 물을 받고 아이를 부릅니다, 혼자 씻게 했더니 머리도 너무 대충 감고 나와 보면 머리에 비누 거품이 많이 남아 있어서 옆에서 다시 알려주면서 빡빡 씻깁니다
고양이도 아니고 세수하는 것을 보면 한 손으로 설렁설렁 비누칠도 대충대충 어휴 한숨이 나왔다가도 이쁜 얼굴을 보면 어쩔 수 없지 싶습니다 거울을 보고 다시 시킵니다 그제야 제대로 세수를 합니다
째려보는 것 같은데 아빠의 착각이겠죠?
우후 6:00
저녁밥을 먹습니다, 밥 하기가 귀찮아서 오늘은 치킨 한 마리 시켰습니다, 아이는 뼈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중에 뒤처리 하기가 귀찮아서 순살입니다 마트에서 사 온 조그마한 맥주 한 캔에 아이는 펭귄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음료수입니다 뚜껑을 까서 서로 맞대며 건배를 외칩니다 하루의 피로가 싹 씻기는 느낌입니다 둘이서 한 마리 다 먹기 힘들어서 조금씩 덜어먹고 나머지는 밀폐용기에 잘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둡니다.
공주님은 같은 건 두 번 연속으로 잘 안 드셔서 내일 일어나서 제가 마저 먹어야겠습니다
잘 씻고 나서인지 얼굴도 뽀송뽀송하고 로션냄새도 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일찍 주무시지 않을까요?
오후 9:00
웬일로 9시에 먼저 지쳐 잠드셨습니다, 평상시라면 절대 절대 아빠가 눈을 감기 전까지 자지 않는 분인데 조용히 아이 매트를 수면 모드로 켜주고 불을 끄고 방문을 거의 끝까지 닫았다가 무서울까 봐 살짝 열어둡니다 모처럼 아이가 일찍 자니까 취미 생활도 좀 하고 아빠의 시간을 보내야겠습니다 좀 힘들지만 또 이때 아니면 아빠만의 시간이 있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바쁘면서도 행복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