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좀 춥다고 보일러 좀 틀었다가 가스비 폭탄을 맞은 뒤론 조심하고 있는데 공주님이 많이 춥다고 하신다, 이불 아래 전기장판을 하나 넣어주고 잠들기 전에 수면 모드로 딱 맞춰 줬더니 따듯하게 잘 주무신다
그동안 얇은 이불을 덮었었는데 이제는 두꺼운 이불로 바꿔줬다 주말 동안 세탁을 잘해서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햇볕에 잘 말렸더니 뽀송뽀송한 이불냄새가 참 좋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주셨던 애착이불이 이제는 공주의 애착이불이 되었다 다른 이불보단 미묘하게 부드럽고 폭신한 느낌이 내가 느꼈던 느낌과 비슷한 걸까? 이불속에 폭 들어가 꼬물대는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내 모습이 간간이 보이기도 한다
이제는 여름옷들을 한 번씩 빨아 정리한다, 작년에 입었던 가을 겨울 옷들을 꺼내본다, 진공 팩에 압축해 놓으면 옷감이 삭지도 않고 잘 보관된다고 하던데 그렇게까지는 관리하기가 쉽지가 않다, 아이 침대 아래 있는 수납공간에 습기 제거제와, 탈취제를 넣고 한 계절을 그렇게 버틴다
부쩍 커버린 다리 길이에 옷도 몇 벌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결제일을 기다린다, 가계부를 아직도 잘 쓰고 있지만 가끔 놓치고 지나가는 게 있어서 요즘은 인터넷 뱅킹을 들어가 보면서 금액을 맞춘다 카드를 쓰면 내 눈앞에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서 더 막 쓰게 되는 것 같아 조심하려고 한다
"아빠 카드는 돈이 많아요?"
"응? 아니요? 아빠 통장에 있는 돈만큼은 쓸 수 있는 거지요?"
공주님에게 준 기프티 카드 캐릭터가 귀엽다
마트에 가거나 편의점에서 결제를 하려고 카드를 내면 공주가 가끔 물어본다 돈을 내지 않고 사는 게 신기한 모습인가 보다 그래서 공주님과 같이 카페 데이트를 갈 때에는 본인도 한번 결제해보라고 예쁜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기프티 카드를 하나 만들어 줬더니 주말에 종종 카페 가자고 자기가 쏜다고 의기양양 내 손을 잡아 끈다
아이 손에 이끌려 동내 카페로 간다, 가로수들에게도 이제 가을이 왔나 보다 알록달록한 잎사귀를 보며 공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빠 이제 가을이에요."
"그러네, 공주님도 이제 곧 2학년 되겠네요."
"아.. 2학년 되면 공부 더 많이 해야 해요?"
"아마도요? 공부는 점점 더 많이 할 거예요, 그래도 어떻게 해 지금은 공부도 하고 놀기도 잘 놀고 해야 하는 때인걸."
요즘 받아쓰기 하는 게 쉽지 않나 보다, 내가 1학년때 했던 것보다 수준이 훨씬 높은 거 같다 같이 틀린 거를 보고 고쳐 써보고 그러지만 아이일 때도 어른일 때도 공부하는 게 가장 힘든 거니까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 카페에 도착한다, 요즘은 아이랑 같이 가면 알아봐 주시고 인사도 해주신다 공주도 같이 인사를 한다 차를 주문하고 카페에 앉아 아이는 태블릿을 꺼내 유튜브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그러는 동안 나는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노래를 듣는다
남자들은 나이를 먹으면 가을을 많이 탄다던데 아직 30대 후반인 나도 그런 걸까?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카페에 앉아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때운다 여름 때와는 다른 약간은 연해진 햇볕이 카페의 통유리를 통해 들어온다 나른하고 조용한 하루 우리는 그렇게 가을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