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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May 12. 2024

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249)

장모 아니 전처의 엄마 이야기 - 2(완)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지만 길어지면 불쾌함도 있으실 거 같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자친구와 병원에 있는 동안 그녀를 많이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발등뼈가 부러져 거동이 불편한 그녀를 검사실로 옮겨주고 화장실로 데려가고 쉽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그렇게 했으면 효자 소릴 수백 번도 들었을 것이다 여자친구는 틈나면 노트북으로 공부를 하거나 강연 같은 것을 보여줬다 그때 나에게 보여줬던 게 세바시라는 프로그램에서 김미경 강사가 나와했던 청년들이여 불공정 거래를 하지 말라는 영상이었다


예전에 한번 다뤘던 적이 있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연인과 부부 사이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부부는 서로 등쳐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키워주는 존재이다 그녀는 그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 너도 나도 서로 덕 보려는 세상에서 그런 말을 하는 그녀가 신기했다 당연하지만 그동안 쉬쉬 했던 것들


보편적으로 남자는 결혼을 하면 집을 해와야 하고,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짐이 지워진다, 여성은 양육과 가정을 돌봐야 하는 짐 나는 왜 그게 짐이 돼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가정을 꾸려 나가는 건 부부가 같이 해야 할 일이고 같이하면 짐이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양육도, 돈버는 일도 왜 어느 일방의 희생을 당연히 생각하는지 여자친구는 혼자 할 수 없는 세상이라고 했다 저 영상에서 했던 말처럼 서로 키워주고 같이 성장해 나가야 한단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다리가 다 나은 그녀는 시골로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곳에 가는 것보다 여기 남아서 취직 준비를 하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다 도시까지 나오는데만 30분이 걸린다 취직을 해도 학원이라도 다니려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내가 그녀를 키워줘야 할 때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취직을 하고 최저 임금 130만 원을 받았다 거기서 28만 원을 여자친구 월세로 내줬다 처음에는 미안해하던 그녀는 어느샌가 당연하다는 듯이 받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끌어주고 있다고 착각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도 안 하는 자기 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고맙다는 이야기나 찾아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혼을 진행하게 될 때 물어보았다 연애할 때 내가 당신 딸 월세 내주고 전셋집 구해서 거주하게 해주는 동안 당신 내 들은 나에게 고맙다는 소리 한번 해봤냐고 돌아오는 답변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네가 좋아서 해준걸 그걸 왜 우리 탓을 하고 자빠졌냐?"


"내가 좋아해서 해준 건 맞지만 그게 당연한 건 아니지요 그때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줬다면 이 사단은 안 났을 겁니다."



전화기로 욕설이 날아든다 자기 딸을 벗겨먹으려 하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간다 능력 없는 남편으로 몰아간다 참담함이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단칸방에서 살아도 된다던 그녀는 상견례를 마치고 온날 집을 해오지 않으면 결혼을 못하겠다고 했다 엄마가 집안해오면 결혼 못 시키겠다고 그랬단다, 그래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방영했던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나왔던 엄마를 설득하지 못하는 여자 편처럼 엄마를 핑계로 당연하게도 집을 해오길 바랐던 것이다 단칸방에서 살기 싫었던 것이다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착각했던 건 나였다 원래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살기 싫었으면 결혼을 하지 말던지 아니면 네가 더 벌어서 집을 해오지 그랬냐?"


"그걸 왜 내가 해야 하는데?"


"그럼 집 해오는 게 왜 내가 하는 게 당연한 건데 처음에 그냥 그렇게 말하지 그랬냐 그렇게 살기 싫다고, 당연한 게 어딨어 처음에는 단칸방에서 살아도 상관없다며 키워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부모 손 빌려 살면 그게 우리가 이룬 거야?"



지금 내가 40이 되는 나이까지 꾸준히 일하면서도 이룬 게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돈을 벌어본 적도 그렇다고 살림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던 사람이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본인의 입으로 말하는 사랑의 척도가 남자가 해오는 집의 크기란다 벌어오는 돈의 액수란다 반대로 이야기를 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단다 기가 막히고 코가 찰 노릇이었다


다른 사촌들이 결혼한 남편들과 나를 비교한다, 누구는 명절에 몇십만 원짜리 한우 갈비세트를 가져왔다는 둥 용돈으로 몇백을 가져다줬다는 둥 본인은 회사에서 주는 그 알량한 선물세트도 한 번 우리 집에 가져다준 적 없으면서 그런 소릴 한다 비교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우리는 남들보다 더 잘 사는 집이 될 수도 아니면 못 사는 집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애초에 그런 비교가 싫었다 어떤 미국 코미디언이 한 말처럼 내가 이웃의 바구니를 들여다볼 때는 내가 가진 것과 비교할 때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나눠줄 때뿐이라고


나처럼 사는 게 구질구질하게 사는 거라고 느꼈다면 본인이 나가서 일을 하고 벌어왔으면 될 일이다 부족한 벌이를 남편 탓으로 알량한 18평짜리 집을 사는데 도와준 시댁을 더 해주지 못한 탓을 할게 아니라 말이다 그 모든 행동의 뒤엔 장모란 사람이 있었다


이혼의 끝에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얼마나 좋아 이 결혼의 실패는 내 탓이라고 하면 되고, 이제 이혼하고 나서 네가 니 인생 제대로 못살게 되면 그때는 또 너희 부모님 탓을 하면 되니까, 정신 차려 내가 적게 벌어서 내가 못나서 이렇게 산 게 아니라 네가 아무것도 안 해서 그렇게 산 거야."


"내가 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애는 내가 안 키웠어?"


"사는 게 힘들다고 집 나가서 안 들어와, 내가 돈은 적게 벌어온다면서 본인이 나가서 일할 생각은 안 해, 네 엄마한테 무슨 세뇌를 당했는지 남편말은 믿지를 않고 네 엄마말만 듣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한테는 비전있냐는 이야기하면서 너는 무슨 비전이 있는데? 너 네가 네 입으로 하겠다고 해놓고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게 있어? 있으면 이야기를 해봐 그럼 인정을 해주겠다니까? 너 연애할 때 네 입으로 그랬어 서로 키워주는 사람이 되자고 지금 것 너 하겠다는 것들 네가 하던 안 하든 계속 밀어주고 도와줬어 그럼 연애 3년 결혼 생활 6년 했으면 결과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어? 나도 배우고 싶은 거 있어 너 밀어주느라 나는 그냥 네 말대로 그 알량한 회사 생활 지금까지 다니고 있잖아 이거라도 안 했으면 네가 그렇게 배우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었겠어? 너는 그렇게 알량한 직장이라도 다니면서 나 도와줄 생각 했냐고. 너는 독박육아가 힘들다는데 나는 독박벌이 아니었어? 네가 그렇게 독박육아라는 말 쓰는 거 기분 나빠도 아무 이야기 안 했고 아이 키우는 거 힘든 거 아니까 출근하면서 아이 유치원 어린이집 내가 데려가고 퇴근하면서 데려오고 너 집에서 니 하겠다는 거 하게 해 줬어 근대 그게 독박육아야? 너 전업주부야 아침밥 안 차려 준다고 내가 너한테 뭐라 한적 있어? 차려주겠다 해도 너 피곤할까 봐 그냥 더 자라고 시리얼 말아먹고 출근 한 날이 더 많아 내가 그런 거 가지고도 뭐라고 한 적 있어? 너는 근대 그게 아니잖아 내가 하는 게 당연하잖아  분리수거 할거 있음 남겨놨다가 퇴근해서 온 나한테 버리고 오라고 시키고 전화로 배달음식 시키는 것도 못해서 퇴근하면서 오는 나한테 전화해서 주문해서 찾아오라고 방정리도 제대로 안 돼있어서 주말에 하루종일 정리 하고 있던 나는 생각이 안 나? 야!! 그 정도 했으면 최소 미안하다는 말부터 나왔어야지."


마지막이라 그런지 그동안 못했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 거 같았지만 꾹 참았다


사소한 것이었다 사랑하니까 그냥 해줬던 모든 일들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나의 문제들은 이야기를 꺼내면 속 좁은 놈, 남자답지 않은 놈이 되어 버린다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을 텐데 처가에만 다녀오면 불통이 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오는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오는지


마지막으로 변호사와 대화를 했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녀가 미운 것보단 그녀를 그렇게 가르친 사람이 문제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 선택한 제 잘못도 있는 거지요 변호사는 전처의 치명적인 잘못까지 끄집어 내 공격하자고 하셨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훨씬 유리하게 끝낼 수도 있었지만 그간 같이 살아왔던 시간과 내가 그녀를 좋아했었던 감정도 거짓은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혼이 마무리되고 난 후에도 그 장모란 사람의 말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사위에게 거지 앵벌이 새끼라고 한 사람,  사위의 이혼한 부모 욕을 했던 사람, 잘 사귀고 있던 남녀 사이에 돌을 던지던 사람, 집해오라고 딸을 팔려고 했던 사람, 하나님을 믿지만 인간을 믿지 못한 사람, 그리고 그 죄로 눈이 멀어가고 있는 사람, 조금 더 훗날에는 자기 딸에게 버림받아질 사람, 그 좁디좁은 마음이 불쌍한 사람


아마도 나는 남아있는 인생동안 그녀를 용서하진 못할 것 같다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이상한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을 어찌 용서할 수가 있을까


나는 독실한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독교에서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면 천국에 간다 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인이니 잘 알겠지 반대로 말하자면 뉘우침이 없는 자에게 천국은 없다 그녀는 그녀가 잘 못 한 게 없다고 생각할 테니 천국으로 갈 것인가 지옥으로 갈 것인가 나는 왠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죄를 인정하고 와서 사과해 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한다 당연한건 없다 그저 다른 일방이 사랑으로 받아주고 있을 뿐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걸 잘 모른다


내가 미성숙 한걸까 아님 너무 이상적인것만 바라는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기억은 조금씩 잊혀져 갈 것이다 그래도 그 상처만은 남아 나를 계속 괴롭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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