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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May 13. 2024

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250)

공주님의 효도쿠폰

공주님이 어버이날 선물 쿠폰을 들고오셔서 잘 받았다 담임 선생님께서 프린트해 만들어 주신거지만 빈칸에는 야무지게 본인의 포부를 적어 사인까지 하셨다(사인은 누구에게 배운 거지?) 아빠랑 같이 살지만 어버이날 편지에는 엄마도 항상 들어간다 면접교섭도 제대로 하지 않는 엄마지만 물어보니 엄마가 삐질까 봐 그런단다 그 마음이 참 예쁘다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엄마보단 아빠인 나를 더 좋아해 주길 바라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냥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공주가 한 약속은 세 가지 였다 공부 잘하기, 말 잘 듣기, 예쁜 말 하기라고 하시는데.. 예쁜 말은 잘하지만 공부 잘하기랑 말 잘 듣기는 어려운 거 같은데 정말 괜찮을까 싶다 자신만만한 표정이 왠지 어이가 없지만 그냥 웃고 만다


직장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다 허리가 좀 아파서 안마 쿠폰을 먼저 써봤다 평상시 같으면 30초를 못 버티고 그만하겠다고 했을 텐데 웬일로 타이머까지 가지고 오서서 10분을 맞춰놓고 허리를 조물조물 주물러 준다



"힘들면 그만해도 되는데."


"아니에요 오늘은 시간 딱 맞춰서 해줄게요."



그래도 힘이 달리니 하고 쉬고를 반복한다 쉬는 동안에는 내가 얼른 아이의 팔을 조물조물거려 준다



"다음은 뽀뽀하고 포옹하기 사랑한다고 말하기!"


"그건 매일 하잖아요 그냥 사인해 줄게요."


"안 돼요 그래도 또 해야 해요."



안마를 받느라 엎드려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 폭 안아준다 그리고 볼에 뽀뽀도 해주고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이거 지킬수 있는거 맞지? ㅋ




"아빠 또 쿠폰 쓰고 싶은 거 있어요? 소원 있어요?"


"아빠 소원은 이어폰 하나 사는 거? ㅋㅋ"



요즘 귀에 꽂는 이어폰을 가지고 싶어서 이야기했더니 얼마냐고 물어본다 진짜로 사줄 것처럼



"비싸 아빠가 월급 모아서 살 거야 아빠 소원은 공주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사는 게 소원이지."


"그런 거 말고 아빠가 바라는 거."





예전 같으면 더 물어보지도 않았을 텐데 오늘은 조금 집요하다



"쿠폰 기간이 5월 30일까지 라면서요 그전에 생각해 볼게요 지금 당장은 없는데?"


"소원 생기면 꼭 알려주셔야 해요?"


"약속."



커피사준대서 초밥 사줬더니 지갑을 두고 오셨단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다 아이가 준 쿠폰을 찬찬히 살펴본다 공란으로 남겨진 쿠폰도 있다



'백지 수표도 아니고 여기에 소원 백개로 늘려줘 이런 거 쓰면 어쩌려고.'


치사하게 그런 소원권을 쓰지는 않겠지만 아이에게 바라는 게 별로 없는 나는 사실 이런 게 좀 부담스럽다 평상시에도 내가 힘든 걸 알면 알아서 잘 도와주고 챙겨주는 아이라서 물론 공부는 잘 안 하지만 (그건 어느 집 아이라도 같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하는 기분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순수한 아이는 그래도 약속이라고 열심히 지키려고 한다 그 마음이 참 대견하다고 느낀다


쿠폰을 다 사용하고 사인을 받아가면 선생님께도 칭찬을 받는다니 아이가 힘을 더 내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하루 어른들보다 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네가 아빠보다 훨씬 어른이겠다.'



이리재고 저리 재는 건 오히려 나다 싶다 방으로 돌아간 아이를 쫓아가서 꼭 안아준다 아이의 꺄르륵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이런 행복이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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