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회사가 싫은 건 아니야!! 아니라고!!
아이가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적은 것을 가져와서 보여줬다 한 장은 자기 소개하기라는 종이였고 다른 한 장은 좋아하는 사람을 소개하기라는 종이였다 알록달록한 종이 위에 얼기설기 글을 써왔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아빠라니
며칠 전부터 좋아하는 게 뭐냐고 꼬치꼬치 캐묻던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아빠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갑자기? 아빠 고기."
"그리고?"
"피자?"
"오케이."
그러고는 방으로 사라졌는데 숙제였을 줄이야
해석:
아빠는 (불)고기피자를 좋아하고 고기도 좋아합니다
아빠는 회사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아빠는 키가 크고 코가 저랑 비슷합니다
어제 저녁에 학교에 다녀와서 집안 게시판에 붙여놓은 것을 아침에 출근 전에 보고 빵 터졌다 아니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할 때 아빠를 회사 가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하다니 물론 어른들이라면 다 회사에 가기 싫어 하지만 다른 좋은 아빠의 장점들도 많을 텐데 굳이?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열심히 했을 공주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공주 아빠가 회사 가기 싫어하는 건 맞지만 굳이 아빠를 소개하는 멘트로 이런 걸 적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다른 건 생각이 안 났는데요?"
아이 앞에서 말도 함부로 못 한다더니 딱 그 꼴이다 뭐 이미 다 들킨 것 어쩔 테냐
"회사가 싫은 게 아니라 가기가 싫은 거야."
"그게 그거 아니에요??"
"아니 달라!"
손을 잡고 등굣길에 나선다 아이는 궁시렁 댄다 뭐가 다른 건지 궁금한가 보다 그런 공주에게 한마디 해준다
"말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해, 너도 커서 회사 가면 알게 될 거예요."
어리둥절해하는 공주 볼을 한번 살짝 꼬집고 가는 길을 재촉한다 날이 맑다 점점 무더워져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계절의 변화가 온몸으로 느껴질 때마다
'아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또 철없이 나이만 먹어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다 어린시절에 봤던 어떤 영화에서(제목도 기억이 안날정도로 오래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아이에게 내 나이를 나누어 준다는 이야기 아이는 내 나이를 받아 점점 어른스러워지고 반면에 나는 내 나이를 나눠준 만큼 다시 아이처럼 돌아간다는, 아직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막연하게 어떤 느낌이겠구나 싶은 거지
올 여름은 좀 덜 더웠으면 좋겠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의 보상만큼은 아니더라도 잠시 한숨 돌릴 그럴 시간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