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줬던 시간들이 억울한 게 아니더라 잘해줘도 억울하지 않던 때가 그립더라.'
-하상욱
아내와 별거 한지 5개월 차이다, 종종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서로의 기억이 너무나 다르다, 내가 잘해줬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 사실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해줄 때는 내 마음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준 것들도 상대방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내가 상대방에게 쏟았던 정성과 애정이 윗글처럼 되어버린다
바라지 않고 해 준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보다 더 나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티브이에 나와서 자기도 어려운데 봉사 활동도 많이 하시고 기부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살면서 당연한 건 없다고 그랬다, 좋든 싫든 사람들은 서로 주고받는다, 사랑, 관심,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 등 인간세상에서의 행위는 상대적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받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아직까지 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줘도 줘도 구멍뚤려있는 독에 물 붙는 것처럼 반작용이 없는 사람들, 상식적인 선에서 감사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 상대가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본인이 할 일에 대해선 침묵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힘듬엔 침묵하다가 본인에게 닥치면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다, 사랑의 결실로 생긴 아이를 봐서라도 대화의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이혼하면서 누구에게 가야 할지 어쩔지도 본인의지보다는 부모의 경제력과 보조 양육자 등 다양한 것들을 토대로 판결이 난다, 협의이혼이 아니라면 서로 진흙탕을 구르는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인간으로서 아내에 대한 신뢰를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지인이 그랬다
'벌어지지 않은 일을 뭐하러 걱정해? 그때 걱정은 그때 가서 하고 지금은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에만 집중해.'
하지만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다, 나 자신을 잘 돌보고, 가정을 잘 돌봐야 나라도 잘 다스릴 수 있다 뭐 이런 뜻이긴 한데, 결국에는 큰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 아니겠는가
나는 왜 아내에게 일말의 마음이 남아있는가, 긴 시간 동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게 이혼까지 가야 할 상황인지도 모르겠고, 연락도 다 차단하고 집을 나가서 아이는 찾지도 않은 채 학원을 다니고, 자기 생활을 하는 여자가 정상인가 싶기도 하다, 자기가 유책이어도 남이 유책이어도 아이를 찾는 게 엄마라는데, 모성애라는 말은 아내에게 그냥 없는 말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많은 생각을 한다, 상담 선생님은 생각을 멈추라고 했는데,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내가 바랬던 건 끝나기 전까지 단 한 번이라도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고 싶었나 보다, 이제 와서 받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보상을 바라고 했던 일들은 아니었고 알아주고 표현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했을 나의 행동들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녔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차례차례 시작이 될 것이다, 조사관의 조사가 시작되고, 부족하면 가정조사가 나올 것이고, 부부 상담을 받게 될 것이며, 조정기일이 잡히고 조정이 잘되면 일찍 이혼하게 되는 것이고, 안 잡히면 1차 2차 3차 조정을 하고 재판까지 넘어가게 되겠지 인생이란 마라톤에서 겪고 싶지 않았던 것 겪을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일을 겪게 되면 나는 한층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무너져 내릴 것인지
삶에서 단 한 번이라도 내편이길 바랬던 너는 그냥 나를 돈 벌어오는 남자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나, 동거인 1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너는 울타리를 벗어나 너희 집 식구든 여기든 필요할 것만 얻어가는 박쥐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않게 너의 대답을 들려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