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마음
다른 집 아이들도 저녁에는 안 자려고 애를 쓴다더니 우리 집 딸랑구도 똑같다 홀로 키우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아빠가 자지 않으면 잠들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 금요일이나 토요일은 아빠가 먼저 자도 끝까지 눈을 감지 않고 놀려고 하는 아이
주변에선 귀엽다고들 하지만 아빠인 나는 쉽지가 않다, 늦게 자고 컨디션이 안 좋아지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온갖 생활 패턴들이 깨지고 더군다나 회사에 나가있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와서 갑자기 열이난 다고 하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생활이 조금 안정화가 되고 나도 퇴근해서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내 조그마한 취미생활이라도 시작하고 싶지만 아이가 너무 늦게 자면 안 되니까 결국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눕게 된다 이것저것 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좀이 쑤시기도 한다
야단도 쳐보고, 타일러도 보고, 달래도 보지만 아이는 그때뿐이다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부모님보다 먼저 자는 게 불효라고 부모님 주무시기 전까진 잠도 못 잤다던데 딸랑구가 딱 그 꼴이다
주말에는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효녀였을 텐데, ㅋㅋ."
"왜요?"
"아니 옛날에는 엄마랑 아빠보다 먼저 자면 불효자 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대 그런 때가 있었다더라고. 아빠는 잠이 엄청 많았거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무시든지 말든지 졸리면 자고 그랬지?"
학교가 끝나고 센터로 가는 공주님은 이제 태권도도 안 하고 놀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빠의 생각일 뿐이었나 보다 평일에 이제 잘 시간이에요라고 이야기하면 항상 하는 소리가
"ㅠㅠ 아직 다 못 놀았단 말이에요."
였으니까 말이다
뭐가 그렇게 세상 신나고 재미가 있을까? 같이는 못 놀아 주지만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얼굴에 모든 감정들이 다 느껴진다 웃음, 슬픔, 화남, 짜증, 기쁨, 성취감, 아빠는 세상 감정에 메말라 가다가도 공주를 보면 회색 불투명한 세상에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려 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 말 안 들을 때는 밉다가도 울어서 눈물 자국 남아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 서글프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내 얼굴도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고, 아이가 힘들어하고 아파할 때면 나도 덩달아 아픈듯한 느낌이다 전처는 이런 느낌을 알까?
이행 명령신청이 진행 중이다 아직 이렇다 할 답변도 법원에 출석해야 할 기일도 잡히지는 않았는데 불안하다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가 원하는 대로 진행을 시켜야 할지 중단을 해야 할지 가본 적이 없던 길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투닥거리며 사는 게 그렇지 않은 삶보다 좋다는 걸 공주가 알아야 할 텐데, 투닥거리는 게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할 텐데, 아빠가 사랑한다고 매일 말해주는 그 마음을 알아줘야 할 텐데, 면접 교섭을 시작하고 2주에 한번 만나는 엄마는 모든 걸 다 해줄 텐데 그렇다고 다 못해주는 아빠의 마음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어린 시절에 그랬으니까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모쪼록 별 탈 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매일이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 아니라 평안하고 무난한 하루였으면 그것만큼 바랄 게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