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곱 시 삼십 분쯤 일어나 빵에 잼을 하나 발라 먹고 우유를 홀짝 거리다가 창밖을 본다, 모처럼 주말에 날씨가 좋은 것 같아 블라인드를 다 걷어 보니 햇살이 한가득 베란다로 들어온다 화분에 물을 주고 햄스터에게 아침밥을 챙겨주고 나니 여덟 시 반이 넘는다, 아이를 깨울까 하다가 주말이라 좀 더 자게 놔둔다, 평일에 잠이 부족한 편이니 주말이라도 더 자게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좋은 날씨에 오늘 뭐할지 계획을 좀 세워본다 한동안 안 다녔던 낚시를 가볼까 해서 바람을 검색해보니 풍속이 10이 넘는다(낚시는 3~4일 때가 무난하게 하기 좋다) 낚시는 못하겠고 요즘은 못 갔던 근교로 나가볼까 생각을 한다 국수도 좋아하고 아이랑 물가를 따라 산책도 하고 산책로 끝에 놀이터도 있으니까 아침 먹고 출발해 점심 먹고 돌아오는 코스로 하기로 마음먹는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까지 아이랑 찍었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남들에게 보여줄 건 아니고 나와 아이 혹은 부모님이 보고 싶어 하시면 보여드리려고 짬짬이 올리고 있다 (웹하드를 결제를 하긴 했는데, 용량도 부족하고 비용도 너무 비싸다) 일일 한도까지 영상을 올리니 아이가 일어나서 안긴다 어제 뽑기를 하고 싶다 그랬는데 안 시켜 줘서 인지 입이 댓 발 나와있다
"어제 뽑기 안 시켜줘서 저 삐졌어요."
"어제 현금이 없었잖아요, 다음에 가면 해요 공주님 가방에 천 원짜리 한두 장 꼭 챙겨두세요."
"그래도 아빠 미워요."
볼때기를 한번 꼬집어 주고 씻으라고 화장실로 톡톡 밀어 넣는다, 아이가 씻는 동안 빵과, 핫도그를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우유도 한잔 따라 놓는다 아이가 나오자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주고 식탁에 앉혀 입에 빵을 넣어준다
"그럼 얼른 먹어요 뽑기 하고, 우리 시외에 놀러 가게요."
"정말요?"
"얼른 먹고 이 닦고, 옷 갈아입고 출발할게요."
"네!"
아이가 먹고 준비하는 동안 청소기를 한번 돌리고, 집 정리를 간단하게 한다 가방에 지갑과, 위생용품, 아이 겉옷, 물을 챙겨놓는다, 바람이 불어서 카디건을 챙기긴 했는데 혹여나 춥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이가 준비가 끝나자 부엌으로 가 가스가 꺼져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집 밖으로 나섰다
"날씨가 좋긴 한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부내요?"
"날아가면 어떻게 해요?"
"아빠가 꼭 잡고 있을게요."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 근처에 있는 뽑기 가게로 간다, 동전을 교환하고 조그만 보석 뽑기와 머리끈을 하나씩 뽑는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딸을 보조석에 태우고 뽑기로 뽑은 머리끈으로 대충 묶어준다, 그리고 30여분 정도 걸려서 근교 시외에 도착을 한다 날씨가 좋아서 인지 가는 길이 살짝 막힌다 교외로 가는 차들이 원래는 많지 않은 구간인데 차들이 많다, 대충 시계를 보는데 11시 30여분 정도 되었다 점심시간 까진 아직 이르지만 아침밥이 부실한 편이었으니 밥부터 먹자고 생각하고 자주 가던 국숫집부터 들른다
젓가락을 놓고 포크를 드신 공주님
"공주님 밥부터 먹고 가요."
"뭐 먹어요?"
"국수 먹게요."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근처 공영주차장까지 가서 내리고 차에서 킥보드를 꺼내 준다 아이는 킥보드를 타고 앞서 가고 나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간다, 국숫집은 이미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어서 서성이다가 자전거를 타고 오신 아저씨 한분이 일어나시자마자 얼른 가서 앉았다 아르바이트하는 청년이 그릇들을 치워주자 주문을 했다
"멸치 국수 하나, 비빔국수 하나, 달걀 이랑, 사이다 주세요."
"네."
직원이 사라지자 주변을 둘러본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친구들과 온 사람들도 가족이나 연인들, 혹은 모임 사람들과 온 사람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로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나온 듯했다 시끌벅적한 기운들이 곧곧에 넘쳐났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아이한테는 좀 추울 것 같아서 바람을 몸으로 막아주며 손을 비벼 따듯하게 해 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두꺼운 것을 가져올걸 그랬다
달걀이 먼저 나와서 하나를 까서 아이 입에 넣어주고 나도 하나 먹는다, 볼이 빵빵하게 크게 한입 문 아이가 꼭 햄스터 같다.
"국수는 언제 나와요?"
"계란 나왔으니까 금방 나올 거예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국수가 나온다, 아이 그릇을 하나 따로 챙겨 따듯한 국수를 옮겨준다. 아직 어른 젓가락으로는 조금 힘들어 하긴 하지만 음식에 대한 욕망은 공주님을 멈추게 할 수 없다 따듯한 국물과 함께 국수를 먹기 시작한다, 나도 비빔국수를 잘 섞어 콩나물이나, 단무지를 하나 얹어서 야무지게 먹는다 전에는 아내와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왔었는데 얼마 만에 오는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부지런히 먹고 계산을 하고 강가를 따라 놀이터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길의 끝에 운동장과 놀이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카페도 있어서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게 하면서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으로 받아와 보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오랜만에 와서인지 많은 게 바뀐 듯하다 원래는 전동자전거와 일반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곳도 있었는데 없어졌다, 사고가 좀 있어서 그런 건지, 차량이 들어올 수 있게 바리케이드도 치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바리케이드가 끝까지 채워져 있다. 어쨌든 한적해져서 좋다, 아이 뒤를 천천히 따라간다 기분 좋은 햇살과 바람이 불어온다 친구인 듯 한 아가씨 두 명이 앞서가며 사진을 찍는다 '꺄르륵' 소리가 멀리서도 들린다 행복해 보인다 아이는 중간중간 뒤를 보며 나에게 손을 흔든다 같이 손을 흔들어 주면 방긋 웃으면 또 킥보드를 타고 앞으로 쭉쭉 달려간다
"아빠 놀이터가 없어졌어요."
아이의 말에 앞을 보니 공사 중 표시와 함께 회색 빛의 철판이 박혀서 벽을 만들고 있었다, 운동장 트랙 옆에 화장실과 샤워장 탈의실 건물도 있었는데 건물도 철거되고 덩그러니 달리기 트랙만 남아있다 아쉬워하는 아이를 달래 본다
"놀이터가 공사하나 봐요, 다음에 와야겠어요."
"히잉 그럼 어디서 놀아요?"
"옆에 카페 있으니까 그쪽 가볼까요?"
"그래요."
옆 카페로 들어간다, 주말에는 전자 오르골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항상 만석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사람이 별로 없다 매번 올 때마다 자리가 없어서 구경도 못하고 밖으로 나가야 했었는데 오늘은 아이와 천천히 있다가 나가기로 한다
"아이스티 한잔이랑, 카페모카 휘핑크림 빼고 따듯하게 한 잔 주세요."
고작 커피 두 잔인데 점심 값만큼 나온다, 그래도 아이랑 보내는 시간이니 아깝지 않다, 아이와 편한 자리로 잡고 앉는다 아이는 미술관 같은 카페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한다 올 때마다 신기한 듯하다 책꽂이에서 책을 빼서 보기도 하고, 카페 앞에 있는 잔디밭에 가서 뛰어 놀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 좋다가도, 혼자가 아니라 엄마나, 동생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쿠키를 쪼개 입에 넣어준다 그러면 또 나가서 놀고 다시 들어오면 음료수 한 모금과 과자 한 조각을 입에 넣어준다 무난하고 조용한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참 길었다, 힘들다기 보단, 버틴다 같은 느낌이다 곰곰이 돌아보면 그냥 별일 없던 하루 들이었는데 왜 이렇게 긴장을 하며 일주일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회사 컴퓨터 바탕화면을 아이 사진으로 바꿔놨다, 혹여 힘든 일이 있으면 그거 보면서 이겨내 보려고 말이다, 아이가 옆에 와 안긴다 나는 또 그게 좋아 무릎 위에 앉혀 꼭 하고 안아 준다
"공주님 오늘 나와서 이렇게 노니까 행복해요?"
"네!"
"아빠도 행복해요 우리 월요일부터 또 힘내요."
"알겠습니다 대장님!"
또 쪼르르 품에서 빠져나가 밖으로 달려 나가는 아이에게 천천히 가라고 소리친다, 아이는 방긋 웃으면 카페 앞마당에서 킥보드를 타고 씽씽 달린다 봄이다, 봄이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