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는 말보다 중요한 것
아이와 함께 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찜통처럼 더운 날씨 탓에 아이가 긴 머리를 감는 걸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단발로 싹둑 자르고 펌도 해줬다 남자 머리는 1~2만 원이면 끝날 일이지만 역시 여자아이는 다르다 시간도, 비용도 훨씬 더 많이 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용실에 앉아 있는 걸 힘들어하더니, 올해는 꽤 얌전하게 잘 참는다 3시간 가까이 걸린 시술이었는데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지켜보며 방긋방긋 웃는다 아마 방학 전에 친구들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었을 테다 선생님께도 친구들에게도
월요일 학교를 다녀온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어때, 선생님이 예쁘다고 하셨어?”
“응, 예쁘대요.”
“기분 좋았겠다.”
“근데 친구들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조금은 서운했던 걸까. 말끝을 흐리는 아이의 표정이 살짝 아쉬워 보였다 나는 그 마음을 꼭 집어 물을 순 없었지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아 그래서 우리 공주는 서운했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해 줬다
“공주야 ‘예쁘다’는 건 아주 주관적인 거야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준으로 예쁘다고 느끼진 않아 어떤 사람에겐 예쁘고 어떤 사람에겐 아닐 수도 있어 그럼 중요한 건 뭘까?”
아이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깜빡거린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잘 살고 있고 잘하고 있고 예쁘고 괜찮은 사람이야 그렇게 스스로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하더라 물론 그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선 안 돼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니까 하지만 내 마음은 내가 채워야 하니까 내 자존감은 내가 지켜줘야 하니까.”
“응.”
조용히 대답한 아이가 내게 안긴다.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나는 장난처럼 한마디를 더 얹었다
“이렇게 예쁜데 친구들이 눈이 삐었나 보다.”
아이는 방긋 웃는다
저녁을 대충 차려 먹고 간식을 나눠 먹으며 TV를 본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 우리 부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많지는 않다 그냥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맛있는 걸 먹고 희희낙락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그렇게 이 여름이 조용히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그거만 한 게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