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321)

올 한 해 동안 무엇을 했을까?

by 시우
ChatGPT Image 2025년 12월 22일 오후 09_46_09.png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올해를 돌아보면 무엇을 이루었는지보다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가 먼저 떠오른다 솔직히 말하면 올해는 잘 살았다고 말하기 어려운 해였다 독자분들도 아시다시피 버티는 날이 많았고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너무 잦았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정말 여기까지 해야 할까 조금은 내려놓아도 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나는 계속 같은 쪽을 선택했다 조금 더 불편한 쪽, 조금 더 오래 걸리는 쪽, 그리고 혼자라도 가야 하는 쪽을


분기마다 한부모 가정에 기부를 했다 대단한 금액도 아니었고 누군가 알아주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 사회에서 받기만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사람들도 돕고 싶었다 사실 나 역시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 더 가까웠다 어려웠던 시간이 더 길었고 마음이 무너질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 선택을 멈추지 않은 건 내가 힘들 때에도 누군가는 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나를 버티게 하는 방식이었다


MBC 인터뷰를 했을 때 카메라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계속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이게 정말 도움이 될까?’

‘과연 무엇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의심이 들면서도 나는 말했다 남성 한부모 가정도 존재한다고 우리는 예외가 아니라고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
제도 안에서 보호받아야 할 하나의 가족 형태라고


그 말을 꺼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방송이 나간 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말을 했다는 사실보다 혹시 이 이야기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컸다


국민제안도 올렸다 남성 한부모 가정 입소시설에 대해 왜 없는지 왜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안 되는지 그리고 왜 “수요가 적다”는 말이 왜 같은 한부모 가정임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지 대해서도 말이다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다 분노처럼 보이지 않게 감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게 항상 약자는 차분해야만 설득력을 얻는다


양육비 이행명령은 기각되었다 서류는 충분했고 사정도 명확했지만 결과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소액이어서 혹은 지급 의지가 있다는 이유로 그래서 다시 재산조회를 진행 중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그 사이에도 생활은 계속된다 법은 너무 느리고 아이의 성장은 너무 빠르다


딸아이는 학교 지원으로 언어·심리 발달 센터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날 아이보다 내가 더 긴장했었다 혹시 내가 부족해서 이 아이가 이렇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수업을 거듭하며 아이의 어휘는 늘었고 행동도 훨씬 풍부해졌다


선생님은 말했다 그동안 부족했던 게 아니라 그저 그럴 때가 아니었을 뿐이라고 그 말을 들으며 깨달았다 아이는 이미 충분히 잘 자라고 있었고 다만 옆에서 조금 도와줄 어른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걸


그래서 나도 나를 돕기로 했다 비폭력 대화 수업을 들었다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날카로워졌는지 아이에게 내 감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브런치 글은 어느새 300회를 넘겼다 기록은 언제나 나를 살렸다 말하지 못한 날에도 쓰는 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아빠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숨 쉴 수 있었다


올해 4월, 나는 실직을 했다 다섯 달 동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기분으로 살았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세 달째다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오늘 하루를 설명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안정이었다


요즘은 AI 프롬프트와 이미지 생성을 혼자 공부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확실한 보장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지금보다 나은 선택지를 하나 더 만들고 싶어서다


아이에게 “아빠도 배우는 중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올해를 정리하면 성공은 많지 않았고 패배처럼 느껴진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도망치지 않았고, 침묵하지 않았고, 아이 앞에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끝까지 애썼다


아마 내년에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여전히 설명해야 하고 여전히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이렇게 살아온 시간들이 언젠가 아이에게 “아빠는 그때도 도망치지 않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거라는 걸


올해의 나는 잘 산 사람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끝까지 버텨온 사람이었다



올 한해도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떻게든 버티긴 했내요 뭔가 상황을 좀더 좋은쪽으로 바꾸는건 참 어렵다고 느껴지는 한해였습니다 내년에도 버티고 살아남아서 좀 더 지금보다는 한걸음 나아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운날씨에 건강들 챙기시고 한 해를 잘 마무리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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