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327)

아이와 가까운 지금이 언젠가 끝날까 봐 무섭다

by 시우
aed1dba5-8e67-4fe6-95eb-cd9e5311f81d.png AI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아이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부터 둘이 살기 시작했다 그때는 솔직히 정신이 없었다 아침에 아이를 깨우고 유치원 갈 준비를 시키고 나도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와 유치원 앞에 내려다 주면 그제야 잠깐 숨을 돌린다 그리고 나는 다시 서둘러 회사로 향한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저녁을 만들고 숙제를 봐주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나면 어느새 밤이 깊어 있다 아이가 씻고 침대에 들어가면 그때서야 집 안이 조금 조용해진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하루가 끝난다


그때는 아이가 얼마나 빨리 크고 있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저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의 손이 예전보다 커졌다는 것을 키도 부쩍 크고 안아 보면 전보다 훨씬 무거워졌다는 것을


예전에는 길을 걸으면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손이 작아서 내 손가락 하나만 붙잡아도 꽉 차던 그 손이 어느 순간부터는 제법 커져 있었다 여전히 내 손을 꽉 잡지만 이제는 제법 커진 손을 보며 벌써 이렇게 컸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묘하게 마음 한쪽이 허전해진다 사소한 변화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아빠에게 달려왔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와 놀다가 있었던 일 급식이 맛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정말 별것 아닌 것들도 전부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의 하루는 늘 내 이야기 속에 있었다


요즘도 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만 예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아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친구와 싸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떤 일 때문에 친구와 다툼이 있었고 서로 기분이 상해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속상하다는 말만 했을 텐데 이번에는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자기는 왜 화가 났는지 친구는 왜 그랬을 것 같은지까지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자기 생각이 꽤 생겼구나.'



어릴 때는 감정이 먼저였지만 이제는 상황을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특별한 조언을 해주기보다는 그냥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주말이 되었다 그날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아이와 싸웠던 그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엄마와 함께 집에 온다고 했다 친구의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화해시켜 보자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이는 그 친구와 학교도 같이 안 가려고 했었지만 놀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아이 친구들과 친구의 엄마들이 서 있었다


아이는 반가운 얼굴로 친구를 집 안으로 끌어당기듯 데리고 들어왔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차와 쿠키를 함께 먹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친구에게 말했다



"닌텐도 할래?"



그 말 한마디로 아이들은 바로 거실로 달려갔다 얼마 전까지 싸웠던 사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금방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닌텐도 게임을 켜자마자 누가 먼저 할지 정하고 서로 이기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웃고 있었다 거실에서는 계속 게임 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화해하고 다시 잘 놀았다 어른들이라면 괜히 어색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그런 걸 오래 끌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어른들보다 훨씬 단순하고 솔직한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엄마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같은 평범한 대화였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 시간 자체가 왠지 낯설면서도 편안했다


거실에서는 계속 아이들이 떠들고 있었다



"야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돼."

"아 내가 이겼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계속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놓였다 아이가 친구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다시 웃으며 놀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이제 아빠 말고도 친구라는 세상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친구가 생기고 학교라는 공간이 생기고 나중에는 또 다른 세상이 생길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세상 속에서 항상 중심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와 이렇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퇴근하면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고 TV를 보면서 이야기를 한다 별것 아닌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수도 있고 자기 방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부모와 떨어져 자기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결국 아이가 부모에게서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마음은 조금 다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일부러 아이 옆에 조금 더 앉아 있는다 TV를 보면서 괜히 말을 한 번 더 걸어보고 학교 이야기를 다시 물어보기도 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길게 하기도 한다 아이에게는 그냥 평소와 같은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시간이다


얼마 전 아이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 나중에 커도 같이 살 수 있어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그런데 그때는 네가 아빠랑 살기 싫을 수도 있어."



아이는 별생각 없이 물어본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잠깐 말문이 막혔다 아이에게는 먼 미래의 이야기겠지만 나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오게 될 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부모라는 사람들은 다 비슷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가 옆에 있으면 그 순간을 조금 더 오래 느끼려고 한다 괜히 말을 한 번 더 걸어보고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주고 같이 있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본다 지금은 아직 아이가 내 옆에 있으니까


그리고 아마도 지금 이 평범한 시간들이 나중에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 순간들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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