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도시의 밤

by 싱글맘

나는 한동안 차가운 도시에 머물렀다.


차가운 도시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차가운 도시에는 새하얀 개울과 앙상한 가지와 연갈색의 잔디가 있었다. 차가운 도시의 빌딩들은 높았고, 도시의 구석구석은 그림자가 졌다. 차가운 도시의 명암은 사람들의 얼굴에도 드리웠다. 차가운 도시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기는 어려웠다. 그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을 거다.


일찍 끝나는 날이면, 새하얀 개울을 따라 차가운 도시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빌딩 숲을 헤매고는 머무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기도 했다.


차가운 도시에서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집에서 가져온 전기장판은 고장 났고, 등이 시렸다. 잠들지 못하는 것은 추위 때문은 아니었다. 도시에선 종종 밤 비행이 있었다. 시끄러운 비행 소리 때문만도 아니었다. 나는 과거에 사로잡혀 울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억울해하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싫어했다.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혐오하고 증오했다. 나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잠들지 못한 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커튼을 열고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차가운 도시의 밤은 적막했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TV를 켜고는 시끄러운 소리에 TV를 끄고, 방 안을 걷고, 화장실에 가고, 잠이 오는 차를 마시고, 다시 누웠다 일어나서 잠이 오는 약을 먹었다.


나는 잠이 덜 깬 흐릿한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 곳에나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떠들고, 즐거워했다. 사람들이 술기운에 싸우고 화를 냈다. 연인들은 손을 잡고 걸었고, 친구들은 어깨동무를 했다. 나의 연인과 친구와 가족은, 나의 집은 머나먼 곳에 있었다.


불면증을 겪는 것은 살면서 두 번째였다. 사실 알고 있었다. 지금이 인생의 위기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진짜 위기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게 중요했다. 사방에는 온통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뿐이었다. 사방에는 온통 차가운 사람들뿐이었다


헐레벌떡 뛰어서 도착한 차가운 도시의 쇼핑센터는 마감 시각이었다. 주린 배를 쥐고 도시를 한동안 걸었지만, 들어갈 곳은 없었다. 뭘로 배를 채워야 할지 몰라, 결국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들고 돌아온다.


한참을 뒤척이다 시계를 보면 1시였고, 또다시 한참을 뒤척이다 시계를 보면 2시였다. 또다시 시계를 보면 2시 40분. 3시 20분. 4시 30분. 한바탕 시간과 줄다리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아침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헐레벌떡 뛰어 쇼핑센터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극장에 앉았다. 이번 시즌의 영화는 거의 다 본 듯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싸늘함이 몰려왔다. 영화는 현실의 프레임을 은연중에 재생산했다. 그래서 지금의 세상은 영원히 바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허구였고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마음을 가진 차가운 도시의 사람들은, 영화 속 거짓 온기에 위안을 받았고 차가운 마음으로 번 돈을 지불했다. 차가운 마음을 가진 영화사 사람들은, 거짓 온기를 만들어내고, 그 거짓 온기로 흥행을 하고, 차가운 돈을 벌었다.


잠들 뻔한 순간에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벌떡 일어나 현관문이 잠겼는지 확인했다. 오늘 밤도 시간과의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이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문 생각이 또다시 꿈틀거리며 새로운 환영을 만들고, 환영이 몽상으로 몽상이 슬픔으로 슬픔이 회한으로 회한은 질타로 바뀌었다. 나는 생각을 멈추는 법을 알지 못했다.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뭐든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늘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은데도, 삶은 늘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쉼 없이 달려가고 있는데도, 뭐 하나를 해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삶은 늘 박하게 굴었고, 그 힘듦을 다 견디고 나서야 원하는 것의 반의 반만을 쥐어줄 뿐이었다. 그러면 나는 너무나도 기뻐하면서, 그 기쁨을 잠시 누리다가, 다시 삶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차가운 도시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고,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어두컴컴한 열 평 남짓의 방 안에서 얼어붙은 손으로 차가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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