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by 싱글맘

오랜만에 걸려온 그의 전화를 받은 나는 일부러 쌀쌀맞게 굴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를 알게 된 것은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와 전화로 헤어진 직후였다.

답답한 마음에 집 밖으로 나오다 작은 교통사고가 났다. 길을 건너다 워낙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탓에 간발의 차로 내 앞을 스쳐간 봉고의 옆면에 팔다리를 부딪쳤다. 나는 몇 달간 치료를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첫 모습은, 나의 문자 소리가 진료에 방해된다며 짜증을 내던 모습이었다.

그게 미안했는지, 그 후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곤 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등산에 간 것과 같은 소소한 얘기들이었다. 진료 시간은 조금씩 길어졌다.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제일 친한 동네 친구들 중 한 명의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한 동네에 있었던 탓에 친구 집으로 가기 전 병원에 들렸다.


그는 생일이라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말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병원 밖에서도 만났다.


그와의 첫 식사에서 나는 얼마 먹지 못했던 것 같다. 어색하고 긴장되던 탓이었다. 그는 맛있는 것을 사줘도 먹지 않는다며 툴툴거렸다.


우리는 종종 동네 어귀를 산책했다. 병원을 지나고 육교를 건너,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친구의 집 근처를 지나 우리 집 쪽으로 향했다. 주황색의 가로등 불빛 아래서 나는 젊은 날의 방황과 혼란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그가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는지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를 만나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그가 좋았다.


그런 탓에 힘든 일이 생기면, 문득문득 그가 떠오른 적도 많았다. 나는 그를 떠올렸고, 그와의 대화를 떠올렸고, 그가 해준 이야기들과 답들을 떠올렸다. 한 살 두 살 물들수록 그때는 이해하지 못한 그의 말들에 공감했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나의 차가운 목소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은 따뜻한 모습이었다. 해외 봉사활동을 가기 전, 그 나라에서는 구하기 힘들 법한 의료 용품들을 잔뜩 챙겨주던.


그때는 몰랐던 게 있다. 내가 그를 만나던 시절 방황하고 있었듯, 그 또한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나는 그때 그의 나이가 되었다. 병원은 그의 오랜 학업과 인턴 생활을 마친 후의 첫 직장이었다. 그가 이 동네로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역시 아픔을 겪은 후였다. 그의 아픔은 나의 것보다 슬프고 아린 것이었다. 그때는 나 자신의 고민과 혼란에 빠져 그 아픔을 보지 못했다. 내가 그랬듯, 그에게 필요한 건 사람의 온기였을 것이다. 내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에도.


나는 그의 온기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 달려가 도움을 청했지만 그의 단 한 번에는 차갑게 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