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식사 중 상사의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여자들이 원래 수학이나 과학적인 것에 약하잖아.”
그 날은 이직한 회사에서 처음으로 여성 비하 발언을 들은 날이었다.
그런 류의 발언은, 안 좋은 기억으로 점철된 첫 직장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반박했고, 같은 자리에 있던 상사들은 요즘엔 그런 발언이 적합하지 않다며 나의 편을 들어주었다. 원래 꼰대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것에 놀랐다.
그 또한 내가 ‘그런 과’였다며,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앞으론 내 앞에서 조심해야겠다며.
누군가는 나의 이런 성향을 알고 난 후, 나를 놀리기 위해 그런 발언들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정색하며 반박을 했고, 그런 나의 반응은 상대로 하여금 더욱 나를 찔러보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여성을 차별하면 안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화를 낼 일인지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 오히려 여성이 남성보다 살기 편한 세상이 되지 않았냐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그 사람들은 면접을 볼 때, 남자 친구가 있는지, 그 남자 친구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하면 일을 그만둘 건지를 묻는 질문은 듣지 않았을 것이었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 만난 선배가 너는 나를 매번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거냐며, 사실은 너를 좋아한다며 집적거리는 일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철에서 화장을 한다고 욕을 먹거나, 술 취한 행인이 다가와 한 시간에 8만 원이라며 손을 잡으려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나는 이 커리어를 지속하기 위해 힘든 시간들을 견뎠다. 어쩌면 커리어는 지난 30년간 나를 다그치며 살아왔던 결과였다. 끊이지 않는 시험을 위해, 입시를 위해, 취업을 위해 나는 하루 종일 앉아 있고, 끼니를 거르고, 밤을 새웠다. 그리고 지금은 일을 하며 하루 종일 앉아 있고, 끼니를 거르고, 밤을 새운다.
그래서 이 커리어에서 실패한다는 것, 낙오된다는 것은 마치 지나온 삶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밤을 새우거나 늦은 시간까지 일한 다음 날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회의를 하거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 힘들고 화가 나도 욕 한 번, 술 한 잔에 털어 버는 것, 우르르 몰려가 담배를 피울 때 쫓아가 이런저런 대화에 끼는 것들이.
밀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노력했고, 노력했다. 그 노력은 늘 벅찼다. 노력 후에도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난 사실 여성들을 위해서가 아닌, 불쌍한 나 자신을 위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못한다거나, 못할 거란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든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가 생존 능력이 없는 사람이란 걸 들킬까 봐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정말로 내가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기보다는 이성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사는 게 더 적합한 사람일까 봐.
나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성별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나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지 못하고, 여성이란 핑계를 대고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