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언니를 만났다.
태국 음식을 배 터지게 먹고, 라오도 몇 잔이나 마셨다.
밥과 차나 하자던 우린, 어느새 적당한 바나 맥주집을 찾고 있었다.
한산한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우린, 성공한 기분을 운운했다.
대리석 테이블과 진열장의 술은 조명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젊은 바텐더는 지나치게 친절했다.
언니는 어린 나이에 유명 스타트업에서 높은 직책을 맡았고, 그게 결론적으론 실패의 경험일 수도 있다 말했다. 성공과 실패 또한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겠냐고.
그녀가 이룬 것은 분명 성공의 경험일 거라 말했다. 나는 돈을 벌고는 있지만 작은 성공조차 해본 적이 없었고, 그런 기분이 무엇인지 알 리 없었다.
언니와는 대학시절에 알게 됐다. 자주 어울리게 된 건 6년 전부터였다.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녀는 승진을 했고, 이직을 했다. 나는 이직을 했고, 그녀도 이직을 했다.
아니, 그보다 우리는 술을 더 적게 마셨다. 우린 성숙했고 감정은 보다 안정됐다. 과거의 고민을 해결하고는, 지금의 고민을 껴안고 있었다. 답 없는 고민에 빠지기보다는 답을 낼 수 있는 문제와 ‘어떻게’에 집중했다. 상황과 사람을 보고 처신하는 유두리도 생기고 있었다.
아니, 우린 예전처럼 자주 보지 않았다. 만취해 어깨동무를 하며 비틀거리지 않았다. 좋은 음악이나 영화를 공유하지 않게 됐다. 아니, 예전보다는 덜 솔직해졌다. 예전보다는 더 적은 마음만을 나눴다.
나는 예전처럼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보다 외로웠다.
우연히 귀에 들어온 음악은, 대학 시절 즐겨 듣던 곡이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도 대학 도서관이었다. 나는 그녀 무리에게 다가가 ‘함께 하고 싶다.’ 말했다. 그렇게 팀의 일원이 됐고, 함께 행사를 열었다.
그 무렵, 나는 운이 나를 밀어내는 대로 살았다. 그날 그 시간, 도서관에 간 것도, 그녀의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것도, 말을 건넨 것도, 그 연으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그녀와 알고 지낸 것도 다 운이었다.
그 운은 내가 나고 자란 환경을 말했다. 내가 가진 재능을 말했다. 크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었던 것,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것을 말했다. 그리고 나의 부모와 친척이 원했던 길을 말했다.
택시비 얼마를 아끼자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바에서 되찾은 노래를 듣고는, 같은 앨범에 있던 더 좋아하던 노래들까지 몽땅 듣고 있었다. 그 무렵의 일들과, 사람과, 생각이 그리고 감정이 밀려온다.
대학 생활 끝무렵의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운이 가리키는 방향을 처음으로 거부하고는, 세상으로 나오려 했다. 운의 흐름과 정반대 방향에 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그때를 기억할 수 있을까 해서 찾아본 옛 사진 속의 얼굴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방황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눈빛은 투명했고, 미소는 건전했다. 그 확신에 찬 눈이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깨끗한 두 눈을 바라보는 게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처음의 얼굴은 마치 그 뒤에 숨은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듯한 자조적인 웃음을 짓거나, 상대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한쪽 눈을 찡그리지 않았다. 몸을 사리고, 겁을 내고, 비겁하며 자조적인 냉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그런 것들은 다 상관없다는 듯, 처음의 얼굴은 진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운의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