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수용은 감정적 문제가 아니다.

by HOoOng

다른 나라에 거쳐 우리나라까지.
이미 유럽의 난민 문제를 목격한 바 있는 우리는 제주 난민이 들어올 때 부터 위협 배제와 인도주의 관점의 대립이 있었다. 수용 찬성 입장을 가진 배우는 욕을 먹기도, 지지를 받기도 했다.

나 또한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으로 인도주의적 관점을 갖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생각이 복잡해졌다. 제주도에 난민 신청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평소에 수용 찬성이었지만 막상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하니 마냥 찬성하기 힘들었다. 우리의 문제가 되는 순간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SNS와 뉴스, 다양한 매체에서 보여주는 난민에 대한 다양한 프레임은 나와 사람들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위협적이라느니, 오히려 도움을 줬다느니...

여하튼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 판단의 근거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반대 입장의 대표적 키워드는 ‘위협’이다. 이 단어는 두려움의 감정으로 연결되는데, 이것 자체가 전염성을 내포하고 있다.

당장 여러 매체를 보아도 난민에 대한 부정적 글이 많아 보인다. 자극적인 글이 더 많이 공유된다는 특징이 있어서 그런 글이 많이 올라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소비하는 시민들 입장에서 보면 난민 혐오 콘텐츠에 더 많이 노출되면서 이미 난민은 위협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로부터 오는 괴리감, 일자리문제, 복지 수혜 문제로부터 오는 경제적 위협 같은 것 말이다.

우리 나라의 문화를 무시하고 그들이 폭력적으로 나오면 어떡하지. 일자리를 뺏기면 어떡하지. 기여한 바도 없는데 지원금을 받아가네? 등의 난민에 대한 다양한 감정은 고정관념이 되고 쉽사리 벗겨내기 힘들다.



실제로는 2013년 유럽지역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내는 세금이 지원받는 금액보다 더 많다는 점, 수요 증가로 인한 경기 활성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은 조명되지 않는 것도 이미 난민에 대한 프레임이 부정적으로 씌워진 탓일 것이다.(물론 실제 저숙련 일자리에 대한 위협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미 저숙련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이주자들은 낮은 임금으로 쉽게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두뇌유입’이라는 인재들의 유입도 볼 수 있긴 하다.)

더 난민의 현실을 들여다 보면,
97%의 사람들은 태어난 나라에서 생을 마감하기 때문에 저소득 국가의 사람들은 아무리 소득이 많아도 미국의 저소득층 보다 소득이 적다. 그러니 대부분의 저소득 국가 사람들은 빈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이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국제원조나 민주주의 혁명이 아닌 이주정책이다.

이주정책은 가장 빠르게 사회적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고소득 국가의 일원만 될 수 있다면 소득이 본 국가에서 버는 수준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삶의 질 개선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수단은 결국 소득아닌가) 문제는 수용국가 내부의 합의가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난민을 대거 수용했던 고소득 국가가 겪고 있는 사회적 혼란은 다른 고소득 국가에 보도되어 많은 국가들이 이주민 장벽을 세우고 있다.



어찌보면 이주문제는 세계화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기업은 글로벌하게 움직이며 탈세도피구를 찾는데 왜 개인(노동자)은 그럴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 이주자는 해당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프레임이 커서 그런 것 같다.

위협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해의 프레임은 대상의 여러면 중에 하나의 면만 조명함으로써 완성된다. ‘협소화’라고 하는데 개인의 특징, 불행, 약점은 모두 무시하고 그들의 표상만 보며 상상하는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지는 않고 다양한 매체에서 본 자극적인 사건을 보며 위협적(또는 수혜만 받는 빈대의 존재)인 존재로 인식한다. 문제는 이런 시각이 결국 그들에 대한 가능성, 다양성을 차단하고 폭력을 정당화 시켜준다는 것이다. 이주민이 잘못되었다는 관점이 심어지는 순간, 그들은 ‘우리’가 아니라 ‘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부모로부터 교육, 사회로부터 교육된다. 그럼으로써 (객관적으로는) 위협적이지 않아 보이는 존재를 보아도 해당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이는 사람이라면 위협적 존재라 느낀다. 제도적인 인종 차별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유산을 통해 번져 나가는 혐오 현상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민국가 단위에서 태어나 생을 마감하므로 국가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속한 가장 큰 집단이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들을 똘똘 뭉치게 한다. 이때 적이 만약 지속적으로 교육되어온 혐오와 위협의 존재인 ‘이주민’이 된다면,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사회적으로 배제된다. 그러나 그들이(제주난민) 정말 위협적인가 대해서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즉, 우리는 일단 이런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고나서 다시 봐도 늦지 않는다.
난민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를 찾아 온 것이고, 세계적인 이 문제를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인도주의적으로 받아들여야 해!라는 관점의 약점은 난민은 ‘빈대’라는 관점이 존재하고

위협이라는 관점에서는 ‘혐오’의 감정이 존재한다.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이주자에 대한 이런 감정. 이것을 벗겨내야 남은 문제를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따뜻한 시선이 아닌, 그저 위협적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닌.
문화적 차이는 어떻게 인정해주고 해결해 나갈지, 경제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자국민의 이익과 이주자의 이익 모두 가져올 수 있을지, 처음엔 부분 차별적 대우를 통해 지위를 인정하다가 점점 동등한 대우를 해줄 것인지.. 등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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