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En attendant: 기다리며》 미리 보기.
30년을 숯 하나로 버텨온 작가가 뮤지엄 산에서 근원을 묻는다. 전시 《En attendant: 기다리며》 미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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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이배는 파리로 갔다. 경북 청도, 농부의 아들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는 프랑스 문화예술 훈장을 받은 작가이고, 뉴욕 록펠러센터와 베니스비엔날레를 거친 작가다. 2026년 봄, 원주 해발 275m 산자락에 서 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는 "수도원 같다"고 생각했다. 전시장이라기보다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곳. 그 공간 안에서 그는 자꾸 같은 질문으로 돌아갔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40년을 떠돌다 다시 땅 앞에 선 사람의 질문이었다.
뮤지엄 산이 개관 이래 처음으로 기획한 국내 작가 개인전, 3년 전 제안을 받아들인 이배는 2년 동안 수십 번 이 공간을 오갔다. 계획을 세우고 허물기를 반복했다. 농부가 땅을 파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전시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 이상도 아니었다고. 전시 제목은 《En attendant: 기다리며》다.
기다림은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라, 생성이 축적되는 시간이다. ‘숯’이라는 단일한 물질로 존재와 순환을 탐구해온 이배가 뮤지엄 산 전관을 무대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 보인다. 《En attendant: 기다리며》는 30여 년 작업을 바탕으로 자연과 건축, 신체와 시간의 관계를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한다. 안도 다다오의 공간 위에 놓인 숯의 물성은 비움과 축적, 생성과 소멸의 감각을 교차시키며 관람객을 그 흐름 속으로 끌어들인다.
미술관 입구부터 전시장 내부, 야외 정원까지 이어지는 동선 속에서 작품은 개별적으로 놓이기보다 서로를 통과하며 연결된다. 관객은 작품을 ‘보는’ 대신 작품 속에서 걷고 머무르며 자신의 감각으로 통과하게 된다.
본관 입구에서는 높이 8미터, 무게 7톤의 거대한 기둥, 〈불로부터(Issu du feu)〉가 관객을 먼저 맞이한다. 숯은 전통적으로 정화와 치유를 상징하는 물질로, 전시는 이 물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시작된다. 이어지는 청조갤러리 1 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공간으로, 흰색은 색이 아니라 순수함과 비움, 아직 그려지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벽과 바닥을 흰 종이로 덮은 뒤 작가는 3만 5천 개의 스테이플러를 직접 박아 작품을 남겼다. 가까이에서야 드러나는 이 물성은 멀어질수록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하며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이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드러내기 위한 선택으로, 이배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물러남으로써 공간을 활성화한다. 이어지는 청조갤러리 2 에서는 바닥과 벽을 가로지르는 붓질과 숯 덩어리가 서로 이어지며 강과 산처럼 펼쳐진다.
이배에게 숯은 재료가 아니라 시간이다. 나무였던 시간, 불타는 순간, 그리고 남겨진 이후까지를 함께 품은 상태로서 존재한다. 그는 지금도 고향 청도의 숯가마에서 직접 숯을 굽고,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밀도와 색을 작업에 끌어들인다. 참나무, 소나무, 버드나무에서 나온 숯은 각기 다른 검정을 만들어내며, 물질은 곧 풍경이 된다. 검정은 더 이상 색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가 눌어붙은 표면이다. 이번 전시는 회화와 설치, 영상, 퍼포먼스를 아우르며 순백의 공간에서 시작해, 숯이 쌓이고, 타고, 다시 생성되는 풍경을 지나,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시간의 층위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사진 Museum 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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