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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ULTURE

읽고, 맛보고, 음미하라 1

읽기의 나른함과 날카로운 감각에 대하여.

by Singles싱글즈

읽고, 맛보고, 음미하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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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TASTE, SAV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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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이유로 읽기를 멈추지 않는 노년내과 교수 정희원과 작가 허명욱에게

그들을 채워준 책과 독서의 풍미를 더하는 취향에 대해 물었습니다.




읽기의 감각

1106658609_24-286.jpg 안경은 젠틀몬스터.


누구는 얻고 누구는 비운다.

누구는 구원받고 반대편의 누구는 복잡해진다.

누군가는 해방이라고 하며, 누군가는 구속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읽기로 말미암아, 읽기로부터 비롯한다. 잎사귀가 익어가는 단내가 사락사락 책장을 넘길 때 손에 스미는 냄새와 비슷해서일까, 눅눅한 공기가 한 꺼풀 걷히는 이맘때면 여지없이 책장에 꽂힌 모서리들을 쓰다듬으며 없는 것들이 없는 자리의 새삼스러움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공허한 마음을 더듬는 일은 간간이 쓰고 또 달콤하다. 비로소 많은 것에 심드렁해졌다고 스스로 대견해졌다가도 계절의 미묘한 변화에는 여전히 예리하게 깨어 있고 싶다. 그렇게 여름이 접히고 구시월 갈바람이 보푸라기처럼 일어나면 활자를 두 눈으로 꾹꾹 눌러가며 에센스를 짜내고 싶다. 목욕탕 물이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속도와 압력으로 번뜩이는 지적 매혹에 진창 빠져들고 싶다. 외딴 세계에 단숨에 흡입되고 싶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뽀득뽀득 깨끗해지고 싶다. 비누냄새 나는 머리칼을 말리며 하염없는 행간을 서성이고 싶다. 머리로 밑줄을 그으며 바닥 짚고 헤엄치기를 하고 싶다. 읽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물수제비 뜨듯 듬성듬성 삽화라도 훑고 싶다. 그것도 아니면 예쁜 책을 책장에 하나 더 꽂아두고 싶다. 이야기의 조류에 이끌리고 선득한 마계의 문장에 파도처럼 떠밀려나고 싶은 순전한 바람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읽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채워준 책과 독서에 풍미를 더하는 취향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책이 있는 풍경을 조각했다. 글자, 문장, 읽기의 가치와 풍요로움만이 아니라 감각과 관능이 흐르는 물질적 효용을 지닌 책을.


이건 책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다.







정희원(노년내과 교수)

<채근담>, 홍자성 | 두유 라테

983791728_24-287.jpg 티아수스의 정원 머그는 딥티크.


‘저속 노화’라는 키워드를 세상에 전파한 정희원 교수.

그가 고심 끝에 추천해준 책 역시 ‘저속 노화’라는 누구에게는 익숙한, 또 누구에게는 생소한 단어와 결이 다르지 않다. 바쁜 일정, 쉴 새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의 알람, 지옥이 되어버린 도로. 정신이 팽팽 돌 때마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문인인 홍자성의 <채근담>을 떠올린다는 그. ‘병든 뒤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어지러운 세상에 처한 뒤에야 평화로운 세상의 행복함을 아는 것은 선견지명이 아니다. 요행으로 복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 재앙의 근본임을 미리 알고, 불로장생을 희구하는 것이 죽음의 원인임을 앞서 아는 것이야말로 탁월한 식견이다’라는 구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그는 틈날 때마다 이 책을 꺼내 든다. 삶의 비기를 담은 <채근담>에 곁들이는 취향은 원액 99.9%의 무첨가 두유와 에스프레소 원액 두 가지를 섞어 완성한 두유 라테. 두유 라테가 든 컵의 묵직하고 믿음직한 무게를 느끼며 방문을 닫는다. 온전한 고요와 평화 속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다양한 학문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정신적 모델을 사용하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찰리 토머스 멍거의 ‘정신적 모델의 격자’ 개념에 따라, 질서정연한 글자와 문단 사이를 와유하며 머릿속에 생각의 격자를 긋는다.






허명욱(작가)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 커피와 디저트

759742344_24-288.jpg 검정 도자기 플레이트는 허명욱 작가 작품. 그 아래 플레이트는 아르켓.


제목에 답이 있다. 태도는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작품이 되기도 하고 그저 그런 태도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박보나 작가의 미술 에세이인 <태도가 작품이 될 때>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의심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의 태도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관찰하는 허명욱 작가에게 이 책은 자기 작품을 대할 때 내내 익숙해지지 않고 새롭게 깨어 있게 해주는 존재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책 제목을 상기하며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허명욱 작가에게 읽기란 ‘쉼’ 그 자체에 가깝다. 커피콩의 고소한 향이 공간 전체에 퍼질 때부터 시작되는 그의 탐독에는 루틴이 있다. 책을 읽기 전,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디저트나 샐러드를 예쁜 접시에 정연하게 올린다. 다음으로 책 읽을 때 앉을 의자와 조명의 위치를 가다듬으면 온전한 쉼을 가지기 위한 준비는 끝난다. 작가는 책을 읽는 이유를 정신을 수양하거나, 지적 탐구를 멈추지 않기 위함이라 힘주어 말하지 않는다. 모든 생물이 자고 먹고 일하고 살 듯, 그에게 읽기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가 읽기를 대하는 태도야말로 하나의 작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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