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채워준 책과 독서의 풍미를 더하는 취향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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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게 보내는 <싱글즈>의 러브레터.
래퍼 창모, 파괴연구소 PD 김소정, 문학평론가 박혜진, 북큐레이터 조성은에게 그들을 채워준 책과 독서의 풍미를 더하는 취향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건이 아니라 생각을 기술하는 미쉘 드 몽테뉴의 <에세>. ‘에세’는 나를 향한 탐닉, 나를 향한 음미에서 비롯된 ‘에세이’라는 장르의 시작이기도 하다. 실제로 만나기는 어려운,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혜로운 사람들의 혜안을 구하려 책을 읽는다는 창모의 말은 어쩐지 창모와 에세와의 조합에 설득력을 더한다. 창모에게 <에세>는 세상에 대한 인정 욕구가 솟구칠 때 찾게 되는 책. 혼자인 시간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고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친구는 역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들게 해준다. 그의 독서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건 바로 제임슨 같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위스키 한 잔이다. 세상과 연결될 만한 모든 걸 차단하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읽는 한 권의 책, 거기다 풍미를 더하는 위스키 한 잔의 조합은 꽤나 어울린다. 나무에서 비롯한 책과 나무가 머금고 있다 뱉은 호박 보석 색의 액체, 식도를 타고 흐르는 달큰한 액체는 이내 손가락 혈관까지 흘러 책을 넘기는 손끝을 둔하게 만들고 문장은 더욱 예리하게 감각하게 만든다. 몸은 나른해지고 감각은 어느 때보다 또렷해진 상태로 창모도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건네겠지. ‘내가 무엇을 아는가?(Que sais je?)’
1990년대생들에게 유튜브 채널 ‘사내뷰공업’ 속 황은정은 가상의 캐릭터가 아니다. 그 시절의 나, 너 그리고 우리다. 이러한 평가를 얻으며 그 스스로도 ‘명예 인류학자’라고 명명하는 김소정 PD는 자신이 체득한 세상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의식적으로 복기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가 연례행사처럼 매년 집어 드는 책은 바로 <피로사회>.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는 문장으로 긍정성의 과잉에서 오는 현 시대의 피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 책은 마냥 좋은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기준을 뒤엎고, 그에게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사이에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깨우치게 했다. 크리에이터이자 PD, ‘사내뷰공업’ 채널의 세계관을 관장하는 유일한 존재이자, 코어 캐릭터인 그에게 탐독은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운동을 마치고 개운하게 샤워를 한 뒤 애정하는 플레이리스트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곁에 두고 책장을 펼치면 준비는 끝. 세상에서 제일 평온한 세계로의 접속이 시작된다.
박혜진은 책을 읽을 때 제일 살아 있다고 느낀다. 어떤 책이든, 두 번 다시 이 작가의 책을 읽지 않겠다 결심하는 순간조차 그렇다. 읽지 않을 때에도 살아 있단 사실은 변함없지만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다고 자각하는 것은 다르다. 이렇듯 책은 그 심오하고도 복잡한 다름의 시간을 선물하는 존재다. 스웨덴의 베스트셀러 작가 헤닝 만켈의 장편소설 <이탈리아 구두>의 마지막은 이 문장으로 끝난다. “더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 책은 인생에 실패한 사람의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책 속에 나오는 인물처럼 별다른 악의를 품고 살지 않아도 벌을 받고 유폐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묘미는 벌을 안 받고 사는 게 아니라 벌을 받은 다음에도 더 가보는 것에 있다. 그녀는 이 책을 읽으며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체념이라는 걸 배웠다. 이제 그는 체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의 입구로 들어갈 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몰입이다.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적절한 향이 있다면 글자를 따라가는 눈길에도 힘이 실린다. 그러다 보면 음악을 연주하듯, 책과 눈과 향이 어느덧 협주하는 무위의 순간도 만나게 된다.
일본 최고의 디자인 이론가이자 교육자인 무카이 슈타로가 퇴임 전 무사시노에서 했던 강의를 엮은 <디자인학>은 슈타로의 디자인 철학을 집대성한 책이다. 북큐레이터는 양적, 질적으로 풍부하게 책을 만나는 직업이다. 조성은은 작가의 의도와 설계 과정이 담긴 한 권의 책은 독자로 하여금 언제나 새로운 설계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말한다. 온라인의 무한대 하이퍼텍스트는 시작과 끝이 없어 좌표를 찾기 쉽지 않지만 치밀한 설계로 엮어진 책 한 권이 가진 완결성을 경험하는 건 어떤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수단 중에 가장 도달률이 높은 방법이라고. <디자인학>은 조성은이 새로운 기획이나 디자인에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마다 매번 그의 막힌 혈을 뚫어주는 구원 같은 책이다. 그녀가 책과 함께 곁에 두는 건 펜.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거나 페이지에 느낌이나 아이디어를 끄적이며 문장과 감응하는 건 그녀의 오래된 탐독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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