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IFESTYLE

아주 보통의 하루

새해라고 특별할 거 없다. 2025년에도 꾸준할 아주 보통의 하루들.

by Singles싱글즈

아주 보통의 하루

*제목을 클릭하고 싱글즈 웹사이트 본문 확인!



영국 작가 제임스 하우얼은 말했다.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잡초로 가득 찬 정원 같다.


송년 파티를 거하게 즐긴 어제와 오늘, 속이 더부룩한 숙취와 온몸 마디마디마다 무성하게 방치된 잡초들과 함께 오늘도 잠에서 깬다. 어제 끝내지 못한 일, 지키지 못한 약속, 이루지 못한 사랑, 꿈의 문턱에서 낙오된 경험들의 잔해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그런데 불현듯 새해의 여명이 밝아온다. 더 나은 버전의 자신으로 업데이트하기 위해 가열차게 신년 다짐을 하는 이들 사이,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 땅거미처럼 엄습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나는 잘못 살고 있을까?



800785937_840x580.png 이미지 출처 : 셔터스톡


새해 다짐의 순기능은 분명 있다. 새해를 기점으로 몸과 정신이 다시금 환기되고, 지금의 내 위치와 상관없이 다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그런 착각은 동기부여의 훌륭한 연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해 다짐을 못 지켰다고 해서 스스로를 낙오자 취급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오늘의 연속이지 1년 단위로 점수가 매겨지는 시험이 아니다. 오늘 하지 못한 건 내일도, 모레도, 내년 1월에도 하기 어렵다. 정원은 1년마다가 아닌 그때그때 솎아주고 관리해주어야 하는 대상이다. 아무리 잘 가꾼 정원이라도 이념이나 방향이 잘못됐다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나오는 아우슈비츠의 꽃이 만발한 정원과 다를 게 없다.


중요한 건 삶의 방향성이다.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했다면 느리든, 빠르든 일단 가면 된다. 새해라고 특별할 거 없다. 내가 설정한 삶의 방향이 썩 마음에 든다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나의 원대한 다짐이자 목표가 될 수 있다. 늘 이어오던 루틴을 변함없이 지켜내는 것만큼 대단한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마시는 물 한 잔과 영양제 두 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칸 지하철에 올라 듣는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오후 12시면 선배들과 머리를 싸매고 고르는 점심 메뉴, 집에 가면 매일 밤 뜨거울 정도로 김이 펄펄 나는 샤워를 마친 후 오렌지 향이 가득한 보디로션을 온몸에 바른 후 섬유유연제 냄새가 폴폴 나는 수면잠옷에 코를 콕 박고 한참 동안 느껴보는 집 냄새까지. 이런 사소한 보통의 하루를 오늘도 무사히 잘 지켜냈다면, 스스로를 충분히 대견해해도 괜찮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찻주전자에 홍차 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 잔씩 마시기. 한강 작가는 이 세 가지 루틴을 지키며 꾸준히 글을 썼다. 작가는 루틴을 공유하며 옥색 찻잔을 노벨상 수상자 기증행사에서 기증 물품으로 내놓았다.

“이 찻잔은 나에게 굉장히 친밀한 사물이었다. 거창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루틴, 나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기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이며 “단순하고 그런 것. 그런 게 좋다”고 말했다.


“아주 보통의 하루.” 아주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무난한 일상에 가치를 두는 태도를 말한다. 이를 줄여 2025년에는 ‘아보하’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저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를 말하기도 하는 ‘아보하’는 행복의 과시로 변질된 ‘소확행’에 대한 피로이자 반발이기도 하다. 처음 ‘소확행’이 트렌드로 떠올랐을 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랍 안에 반듯하게 개켜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다는 것,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이 인생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작더라도 확실하게 행복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과시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 소확행이 오히려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로 변질됐다. 사실 진짜 행복은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누구에게도 과시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행복은, 아주 보통의 일상은 나의 삶과 원대한 꿈을 지지해주는 잔근육이다. 일상의 소중함은 평범한 일상이 위협받거나 균열이 생겼을 때 비로소 체감된다. 우리는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미 알고 있다.





무언가를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우리들의 ‘아보하’


유지혜 작가

편지 쓰기와 목욕. 요즘 밤마다 습관 삼은 일들이다. 반신욕을 하면서 나는 책 한 권을 한 호흡에 끝낸다는 목표를 세운다. 릴스에 절여진 뇌를 조금이나마 회복하고 나면 다음 일과는 편지 쓰기다. 편지는 일기와 비슷하면서도 더 멀리 간다는 장점이 있다. 수신인을 상상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글을 못 쓰는 날도, 편지는 쓴다. 편지는 정성을 연습하게 하고, 종일 혼자였던 나와 세상을 연결해준다. 무엇보다 이 두 가지 행위를 할 때의 나를 나는 좋아한다. 완벽한 하루 만들기에 ‘또 실패한 나’를 모면하게 하는 일들. 사실 그건 거의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렇게 내 하루는 굴러가고 또 굴러간다.


박초은 시엔느 대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루틴처럼 만들어 일상 곳곳에 배치해둔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 후 마시는 티는 하루 중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첫 번째 일이다. 여름엔 감초와 민트향이 가득한 쿠퍼 바이오 허브티를 얼음을 가득 담은 유리잔에 우려 시원하게 마시고 겨울에는 검은색 캔에 든 마리아쥬프레르 카사블랑카 티백을 하나 꺼내 머그컵에 우려 뜨겁게 마신다. 주말 아침에는 평일에 누리지 못했던 여유를 즐긴다. 특히 토요일 아침에 맞는 따사로운 햇살을 좋아해 봄과 여름의 토요일에는 아침 일찍 단골 카페에 책 한 권을 들고 나가 아이스 라테를 마시고, 가을과 겨울의 토요일에는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상쾌한 산책을 마치고 단골 카페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이토록 계절과 요일과 하루 사이에 루틴화된 일상을 만들어두고 나만의 루틴을 지키며 행복을 느낀다. 2025년에 흘러갈 아주 보통의 하루도 변함없이 무엇을 마시는지에 따라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차갑고 또 따스한 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보내겠지.


안순천 리앤컴 IMC팀 선임

어쩌다 시작한 러닝은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30년 동안 살면서 제대로 해본 적 없던 거라 시작 전에는 잔뜩 겁을 먹었다. 그런데 막상 뛰어보니 별거 아니더라.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 이후로 나는 종종 뛰는 사람이 되었다. 러닝을 즐긴다고 말하기엔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달린다. 이마저 일이 바쁘면 바로 포기하기 일쑤지만 습관처럼 나가서 뛰려고 한다. 아직 러닝화도 한 켤레뿐인 초보 러너지만 뛰어야지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뿌듯함과 개운함에 다시 러닝 앱을 실행하게 된다. 거창하게 마라톤을 출전하려는 것도, 러닝 동호회에 가입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년에도 지금처럼 그럭저럭 달려볼 예정이다.


허희재 헤이데이 대표

쿠키를 굽기 전 오븐을 예열하는 것처럼 나는 음악으로 하루를 예열한다. 그렇게 음악을 연료 삼아 매일을 시작한다. 최근 사무실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로 이사했다. 덕분에 하루의 연료를 충전할 시간이 전보다 길어졌다. 일어나자마자 블루투스 스피커로 켄드릭 라마의 ‘Luther’를 재생한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내린다. 고소한 커피 한 모금 뒤에는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기를 가볍게 돌린 후 열어놓은 창문들 사이로 들어오는 찬 바람을 느끼며 소파에 올려둔 컵에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신다. 그때쯤이면 얼마 전 다녀온 두아 리파 공연에서 들었던 ‘Physical’이 스피커 사이로 흘러나온다. 리드미컬한 그의 음악이 끝나면 둠칫거리던 발재간과 고갯짓을 멈추고 한 손에 커피를 가득 채운 스탠리 텀블러를 쥐고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도 무사히 흘러가길 바라며. 그리고 2025년에도 아주 보통의 하루가 지켜지길 바라며.


박정민 러쉬코리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팀 과장

나의 ‘아보하’는 아주 오래된 취미로 이루어진다. 10년 전쯤 처음 도자기 수업을 들은 것을 시작으로 위빙, 민화, 와인 등 취미를 넓혀갔다.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꾸준히 취미활동을 이어온 덕에 지금은 집 한켠에 작업 공간도 마련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혹은 느긋한 주말 오후 작업실에 들어가 도자기를 만들고 주얼리를 빚는다. 또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는다. 가끔은 민화를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 테이블 위에 놓인 다양한 작업을 마주하다 보면 폭풍처럼 지나간 하루를 차분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새해라고 달라질 것은 없다. 아, 새로운 취미가 추가될 수도?(웃음)





2025 새해와 관련 콘텐츠를 더 많이 보고싶다면?

*아래 콘텐츠 클릭하고 싱글즈 웹사이트 본문 확인!

새해 좋은 기운을 불러올 푸른 뱀 아이템과 다이어리
스타벅스X해리포터부터 투바투까지?
▶새해를 맞아 더욱 강력해진 브랜드들의 콜라보
새해 첫날부터 핑크빛!
▶2025년을 사랑으로 문 연 스타들




KakaoTalk_20250108_114045774_01.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에쓰오일 공식 계정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