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아름다움의 출발점이자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자라나는 곳?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출발점이자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자라나는 곳, 목욕탕과 미용실. K-뷰티의 역사는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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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최신 뷰티 트렌드는 늘 동네 목욕탕에서 나왔다. 보들보들한 피부를 만드는 때 마사지, 오이와 요플레 등을 이용한 신상 천연 팩부터 기가 막히게 살이 쭉쭉 빠지는 법, 건강한 먹거리 정보까지. 뿌연 수증기 속 벌거 벗은 아줌마들의 수다는 피부와 몸매 관리에서 시작해 아이들과 남편에 대한 이야기로 흐르다 오늘 저녁의 반찬 걱정으로 끝나곤 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대중목욕탕은 단순히 ‘씻는 공간’이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목욕탕은 만남의 장소였고, 특별한 날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찾는 상징적인 곳이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여가 공간이자, 동네 사람들이 오가는 작은 커뮤니티 역할도 했다. 특히 때밀이는 단순한 청결 행위를 넘어 주기적으로 ‘집중 관리’하는 문화였다. 때를 밀고,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목욕탕에서 피부를 가꾸던 루틴은 지금의 K-뷰티가 지향하는 여러 단계의 스킨케어 방법과도 무관하지 않다.
목욕은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위생 행위이지만, 혼자만의 사적인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목욕탕은 단순히 때를 미는 장소에서 나아가 근대 도시의 형성과 함께 태어난 새로운 공공 문화의 상징이다. 수도와 온수시설, 공간 분리와 같은 인프라가 갖추어진 곳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함께 몸을 씻는다는 것은 이전 시대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 시대까지 사람들은 강가에서 멱을 감거나 집 안에서 간단히 목욕을 했다. ‘목욕’이라기엔 ‘목간’ 혹은 ‘멱감기’에 유사했고, 그것은 신체의 청결이라기보다 질병 예방이나 더위 해소를 위한 필요의 행위에 가까웠다. 하지만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공중목욕탕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가 달라졌다.
현존하는 문헌 기록상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인 온양온천. 아산시 온천동에 위치하며 온천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조선 시대 세종, 세조 등 왕들이 온천을 위해 방문해 온양이라는 지역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1924년 평양에, 1925년 서울에 각각 대중목욕탕이 생겼고, 이후 해방을 지나 산업화 시기로 접어들며 그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지방도 마찬가지. 전남 진도 지역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문화목욕탕, 로얄대중목욕탕,프린스목욕탕 등이 문을 열었고, 일부는 30년 넘게 영업을 지속하며 지역 주민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었다. 동작구의 경우 1963년 노량진동의 용봉탕과 백노탕을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20개 남짓한 목욕탕이 생겼다. 이는 단순한 인프라 확장이 아니라 ‘공적 위생’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인식 변화의 반영이었다. 특히 1980~1990년대에는 사우나, 한증막, 노천탕, 냉탕 등이 복합적으로 갖춰진 목욕탕이 늘어나면서, 단순한 위생을 넘어 ‘건강’과 ‘여가’라는 새로운 가치가 목욕 행위에 덧입혀졌다. 2025년, 이토록 북적이던 대중목욕탕의 전성기도 이젠 옛이야기가 되고 있다. 시설은 낡아가고, 집집이 욕조를 두면서 반드시 밖에서 목욕해야 할 이유도 사라졌다. 결정적으로 코로나19가 큰 타격이었다. 거리두기와 방역 규제 속에서 문을 닫는 목욕탕이 속출했고, 서울만 해도 불과 몇 년 사이 240개 넘는 대중목욕탕이 사라졌다.
위_1971년 문을 연 서대문구 마을탕은 인왕산 자락에서 동네 사람들의 쉼터로 자리해온 전통 목욕탕이다. 아래_강서구 산호탕은 1980년대 서울 목욕 문화의 정취를 잘 간직한 공간으로, 가족과 이웃이 모이던 일상의 중심이었다. 두 목욕탕은 서울의 오래된 골목과 함께 몸과 마음을 데우던 공동체적 풍경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 박현성
<무한도전> 촬영지로 유명했던 원삼탕조차 결국 폐업이 결정됐다. 누군가에게 추억이었던 공간들이 통째로 사라진 셈이다. 대신 몇몇 탕은 리모델링을 거쳐 감성 카페로 바뀌기도 하고, 프라이빗 사우나나 테마 찜질방 같은 장소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대중목욕탕이 예전처럼 생활의 일부는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쉬어가는 곳’ ‘피로를 푸는 곳’으로서 또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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