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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대신 붓질 하는 제주 할망들과 소녀

똘, 어멍, 할망 그리고 기막힌 신들의 세계.

by Singles싱글즈

똘, 어멍, 할망 그리고 기막힌 신들의 세계.

옛날 먼 옛날 아름다운 섬 제주에는 풀꽃과 말, 여린 것들의 마음을 돌보는 여신들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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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대신 붓질 하는 제주 할망들과 소녀


지금 제주 선흘리에는 호미 대신 붓을 들고, 물질 대신 붓질을 하는 신들(할망들)이 산다. 헤아릴 수 없는 삶과 지혜의 색이 온 세상에 스며든다. 산천초목에 깃들어 살던 작은 정령 하나가 망아지처럼 할망들의 놀이터로 뛰어들었다. 자연과 공생하는 시간 속 각자의 기막힌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할망들의 온기와 소녀의 웃음이 섞여 흐른다.




257477978_1202-15.jpg 핑크 코트는 가격 미정 Prada, 데님 팬츠는 18만9천원 Levi’s, 스니커즈는 7만9천원 Converse, 티셔츠는 에디터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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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와 처음 맞이한 집의 말, 병든 아이를 살려준 말에 대한 고마운 기억. 할망에게 말은 삶과 생명의 벗이다. © 우영팟할망 김옥순, <이 몽생이가 잘 키우면 부자가 될 거야>, 2025, 캔버스 위에 아크릴, 53×45.5cm


제주 선흘리에는 나이 팔십이 넘어 노년의 봄을 살아가는 할망들이 있다. 그들은 호미 대신 붓을 들고, 물질이 아닌 붓질을 하는 ‘작가’다. 선한 사람들이 사는 제주 마을로 이사 온 최소연 예술감독은 흙 묻은 도구들이 들어찬 할망의 공간을 예술 창고로 탈바꿈시켰다. 대안학교인 볍씨학교 제주학사 학생들과 그림을 아카이빙하는 수업을 했던 최 감독은 “무시거(이게 뭐야)” 하며 다가온 초록할망(홍태옥)과의 1:1 수업을 시작으로 소막할망(강희선), 신나는 할망(오가자), 우라차차 할망(조수용) 등 계속해서 인연을 엮어가며 흥미로운 작업들을 이어오고 있다.


2022년 할망들의 집에는 화실이 생겼고, 그해부터 매년 할망들의 전시가 열렸다. 최소연 감독은 할망들의 일생을 두고 ‘기막힌 삶’이라 표현한다. 일제강점기 혹은 제주 4·3 사건이 라는 암흑 같은 시대를 겪느라, 자식과 남편을 위해 헌신 하느라 ‘나’를 온전히 돌보지 못한 여인들. 그럼에도 “살암 시민(살다 보면) 살아진다”고 덤덤히 소회를 뱉는 어른들. 2024년 12월 이 모든 세월을 품어 예술로 승화시킨 전시 《똘, 어멍, 할망 그리고 기막힌 신들의 세계》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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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할망과 혼자인 말,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자화상 같은 공생의 순간이 담겼다. © 무지개할망 고순자, <뒤돌아 보는 말>, 2025, 나무조각에 아크릴, 7.4×17×24.7cm 스카프는 가격 미정 Hermès, 카디건은 4백만원대 Fendi.



351110597_1202-19.jpg 프린트 스웨터는 72만8천원 MSGM, 안에 입은 원피스는 35만8천원 Viaplain


‘할망’ 앞에 별칭이 붙은 것도 이때부터. (제주도 신화에는 수많은 신이 있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여신들을 할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4·3 사건으로 집이 불타고 남은 돌무더기에 좁씨를 심어 초록 싹을 낸 홍태옥 할망의 신화 같은 기억은 초록할망이라는 별칭을 탄생시켰다. 우영(텃밭)이 창작의 원천인 김옥순 할망은 그렇게 우영팟할망이 됐고, 한평생 일군 귤밭 한쪽에서 자란 무화과 나무의 열매 맛에 감탄한 박인수 할망은 <무화과> 시리즈를 지으며 무화과할망으로 거듭났다.


이 11명의 작가는 별칭으로부터 출발한 본풀이(본本을 푼다는 뜻으로, 신의 일대기나 근본에 대한 풀이를 이르는 말)를 그림으로, 또 그 위에 글로 펼쳤다. 인구 1000명 남짓의 작은 마을이 들썩였고, 할망들의 알록달록한 그림을 보기 위해 제주 건너에서 1000명 이상의 관객이 선흘리 그림 공간을 두드렸다.


“넷프루지? 아니~ 넷플리지!” 2025년에는 할망들에게 발음하기도 까다로운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팀이 작품 방영 전 그림 할망과의 협업을 제안한 것. 마음작업장에 모인 할망들은 자신의 고향을 녹인 드라마를 시청하며 관식이의 발차기에 웃기도 하고, 어멍이 보고 싶다며 눈물 짓기도 했다. 그렇게<폭싹 속았수다>의 스토리와 할망들의 추억이 교차하는 작품들이 바다를 건너 서울 전시장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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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가 유난히 큰 고양이 한 마리. 쫑긋 선 귀에는 무화과 열매가 매달려 있고, 털의 결은 자유로운 붓질로 살아 숨 쉰다. © 무화과할망 박인수, <내 집에 자꾸만 살러 오는 고양이>, 2025, 팝업 조각에 혼합 재료, 81.5×78cm 스카프는 6만8천원 Sin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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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_새 심장을 품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 할망, 힘이 세지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말의 형상으로 구현했다. © 무지개할망 고순자, <새심장 노아쭈 살아났쭈>, 2025, 혼합 재료, 9.6×11.7×18.7cm(심장오브제) 스카프는 가격 미정 Hermès, 모델이 입은 카디건은 44만원 Onitsuka Tiger, 스트라이프 니트는 1백33만원 Marni, 코듀로이 팬츠는 77만8천원 Lacoste. 아래_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공룡이 제주 4·3 사건으로 불타버린 집과 검은 총 위를 지나간다. 등에는 로즈메리 잎을 지고, 아침 이슬 속에서 향기를 퍼뜨린다. 작고 힘없는 무력한 존재에서 상상 속 거대한 힘으로 현실의 상처와 마주하는 순간, 할머니와 공룡의 긴밀한 관계가 드러난다. © 초록할망 홍태옥, <로즈마리를 등에 진 공룡>, 2025, 나무조각에 혼합 스카프는 6만8천원 Sinoon.



안개가 번진 11월 둘째 주, 제주 선흘 그림 작업장에서는 올해 9월부터 시작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막힌 신들의 변신과 공생》 전시 2부 준비가 한창이었다. 작업실에서 캔버스를 채우고 있던 고목낭할망(김인자), 동물의 눈이 될 동그란 조각에 반짝이를 얹고 있던 무화과할망(박인수), 기다란 탁자를 채색하며 사계절을 그리던 우영팟할망(김옥순), 가장 씩씩하게 작업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던 막내 불할망(허계생)까지, 작가이자 모델로 곧 카메라 앞에 설주인공들을 만나 서로 얼굴을 익혔다. 다음 날 2부 개막식에 맞춰 서울에서 온 외지인들이 할머니의 모습을 담으러 다시 한번 작업장을 찾았다.



36844075_1202-112.jpg 불할망 허계생이 입은 퍼 트리밍 베스트는 가격 미정 Valentino, 모델이 입은 프린트 스웨터는 72만8천원 MS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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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할망 박인수가 입은 도트 무늬 코트는 2백만원대 Markgong. © 고목낭할망 김인자, <버솟 개구리>, 2025, 나무 조각에 아크릴, 11x17.5x23cm 고목낭할망 김인자가 입은 플라워 퀼티드 재킷은 3백49만원 Burberry. 무지개할망 고순자가 입은 재킷은 28만8천원 Dew E Dew E. 우영팟할망 김옥순이 입은 플라워 재킷은 2백5만원 N°21.


낯을 익힌 4명의 할망과 단정히 스카프를 메고 온 무지개할망(고순자)은 생전 분칠 한번 제대로 못했다며 수줍어하면서도 곱게 단장하는 시간을 반겼다. 5명의 할망은 제주의 전령이 된 모델과 함께 카메라에 눈을 맞추다, 마이크를 들어 자기 소개를 하다, 곳곳에서 모인 관객들에게 직접 해 온 음식을 건넸다. 연출을 위해 못 그림을 마저 그려달라는 요청에 고목낭할망은 바로 꽃무늬 팔 토시를 차고 ‘김인자’라 적힌 팔레트와 붓을 들어 캔버스에 배경을 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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