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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박영숙

지난 10월 6일, 세상을 떠난 박영숙의 작품들을 기리며.

by Singles싱글즈

지난 10월 6일, 세상을 떠난 박영숙의 작품들을 기리며. 여성의 삶을 렌즈로 포착한 박영숙의 사진은 시대를 꿰뚫는 조용한 증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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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박영숙


109933478_1202-25.jpg 박영숙, <장면 38 Scene 38>, 1966, Gelatin silver print, 20×16inch, 50.8×40.6cm



944752242_1202-26.jpg © 박영숙, <장면 6 Scene 6>, 1963, Gelatin silver print, 20×16inch, 50.8×40.6cm



669304496_1202-27.jpg © 박영숙, <장면 2 Scene 2>, 1963, Gelatin silver print, 20×16inch, 50.8×40cm



215702908_1202-28.jpg © 박영숙, <장면 7 Scene 7>, 1963, Gelatin silver print, 16×20inch, 40.6×50.8cm



지난 10월 6일, 사진가 박영숙이 세상을 떠났다. 한 세기 가까운 삶을 여성으로, 예술가로 꿋꿋이 살아낸 박영숙의 부재는 예술계를 넘어 더 넓은 의미의 공백을 남긴다. 그가 포착한 수천 장의 사진 속 여성들은 여전히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걸어온다.

박영숙(1941~2025)은 한국의 1세대 여성 사진가이자 선구적인 페미니스트 예술가였다.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숙명여자대학교 역사학과 재학 시절, 사진 동아리 ‘숙미회’를 창립하며 본격적인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1966년 서울 중앙공보관에서 연 첫 개인전은 한국 여성 사진가로서 매우 이례적이었으며, 이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궤적으로 이어졌다. 그의 예술적 감각은 유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자연스럽게 길러졌다. 토목 일을 하던 아버지는 어린 딸이 사진기나 측량 도구를 만지는 것을 막지 않고, 오히려 해체하고 조작해보도록 격려했다. 그렇게 사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감각은 작가의 사진 세계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박영숙이 여성이자 사진가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일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사진기자로 일하던 시절, 잡지사 운영진으로부터 한 집안의 가장인 남성 부장 대신 권고사직을 권유받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직장 내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실감하게 했고,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사진 작업을 이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작가는 스물 일곱 살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작품 활동 대신 육아에 집중했다.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시기였지만, 그 경계를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시선을 구축해갔다.




박영숙의 1960년대 사진 연작은 서울의 거리와 여성들의 삶을 포착한 이미지로, 시대의 면면을 기록했다. 한국적 경험을 세계적 언어로 번역한 작업은 젠더, 사회, 역사라는 보편 주제를 다룬 사진이 국경을 초월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512226708_1202-29.jpg © 박영숙, <장면 26 Scene 26>, 1965, Gelatin silver print, 20×16inch, 50.8×40.6cm



268285841_1202-210.jpg 박영숙, <장면 25 Scene 25>, 1965, Gelatin silver print, 20×16inch, 50.8×40.6cm


1975년 UN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해’ 기념 전시에 참여한 박영숙은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시각적 언어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다. 1992년에는 ‘여성미술연구회’에 가입했고, 1998년에는 ‘한국여성사진가협회’를 만든 후 초대 회장을 맡아 여성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과 권리 향상에 기여했다. 박영숙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여성의 신체와 일상을 중심으로 구성한 이미지들은 억압받고 지워졌던 개인의 목소리를 복원해낸다. 특히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한 ‘미친년 프로젝트’는 한국 여성주의 사진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 작업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심리적 억압, 사회적 강요, 가사 노동의 고단함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드러낸다. 윤석남, 이혜경 등 여성 동료 예술가들과 협업한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시리즈를 넘어 여성 집단 서사의 집약으로 평가받는다. 박영숙은 이를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시대를 미친 척이라도 하며 살아낸 여자들의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마흔을 앞두고 작가는 유방암 수술을 하며 인생의 또 다른 변곡점을 마주한다. 육체적 상실은 곧 여성성과 정체성에 대한 집요한 물음으로 이어졌고, 박영숙은 이 고통의 시간을 예술적 전환점으로 삼았다. 작가는 자존감의 회복을 위해 렌즈 너머 사람들을 더 깊이 바라보며 스스로를 비춰보았다. “내가 여전히 여성으로 존재 한다는 것을 사진으로 증명하고 싶었다”라는 회고의 말은 예술이 곧 자기 구원의 도구였음을 짐작케 한다. 이후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깊은 슬픔을 겪으며 삶과 죽음, 늙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두고 왔을 리가 없다> 연작이다. 이는 1980~1990대 여성 7인의 방과 목소리를 담은 사진과 인터뷰 설치 작업으로, 일생을 감당해낸 여성들의 존엄한 서사에 대한 기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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