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들의 든든한 파트너이자 또 한 명의 선수, 스포츠 통역사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이야기할 때 우수한 번역가의 조력을 빼놓을 수 없다. 프로 스포츠 또한 마찬가지다. 엔트리엔 없지만, 늘 덕아웃에 있는 존재. 없으면 경기 운영에 큰 차질을 빚지만 등번호는 없다. HIDDEN PLAYER, 전력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들의 든든한 파트너이자 또 한 명의 선수, 스포츠 통역사들의 이야기.
⬆️싱글즈 웹사이트에서 기사 본문을 만나보세요⬆️
‘역시 믿고 맡기는 윤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저와 동행했던 선수들에게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통역사로 기억되고 싶어요.
하고 싶은 등번호는
10 통역사로 일한 지 10번의 시즌이 지났기도 했고, 배구에서 10번은 활약이 좋은 선수가 주로 사용하는 번호라, 지금의 나에게 주고 싶은 번호다.
한창 2024-2025 V-리그 시즌 중이라 바쁘게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시즌을 치르는 프로배구 통역사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말씀 주신 것처럼 정말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프로배구 리그는 총 6라운드에 걸쳐 리그를 진행하고, 순위가 결정되는데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지금은 4라운드가 시작되는 시기예요. 이제 새로운 반이 남았으니, 훈련에 동행하고, 게임 스케줄을 진행하면서 최종 목표를 향해 바쁘게 지낼 것 같아요.
배구 통역사로 커리어를 쌓은 지 10번의 시즌이 흘렀어요. 스스로가 생각하는 배구 통역사만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지만, 배구는 혼자서는 점수를 거의 낼 수 없어요. 서브를 제외하고요. 그 1점을 내기 위해서는 코트 위에 있는 선수들의 터치가 하나둘씩 모여야 해요. 누구 한 명이 수비를 해주면 누구 한 명이 연결을 해주곤 하죠. 쉽게 내는 1점이 없어요. 그처럼 선수들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종목인데, 제가 담당하는 외국인 선수와 다른 선수들이 형성해야 하는 그 케미를 저도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아주 단순한 매력을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배구는 실내 스포츠잖아요. 그래서 더울 때는 시원하게, 추울 때는 따듯하게 일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예요.(웃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다른 종목의 스포츠 통역사와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가장 꿈꾸는 순간은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으로 고민 없이 ‘우승’이라는 단어가 나오더라고요. 그런 우승을 바로 작년에 맛봤죠. 담당하고 있는 모마 선수는 MVP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몇 개월 지나지 않았는데 또 치열하게 시즌을 치르다 보니 오래전 이야기 같아요. 이 질문을 받고 다시 우승의 순간을 꺼내 봤는데, 정말 쉽게 얻은 점수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너무 조마조마한 상황이 반복되는 경기 상황에서 제가 담당하는 모마가 자신의 역할을 너무 잘해줬어요. 다시 보니 ‘저렇게까지 잘했었다고?’ 싶을 정도로요. 물론 지금도 잘해주고 있지만요.
여전히 굉장한 퍼포먼스를 내는 모마 선수를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사실 선수의 기록을 저의 기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선수 자체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선수가 자신의 몫을 온전히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외에 다른 부분은 신경을 덜 써도 괜찮다는 말이고, 그 말은 그 외의 것들은 서포트가 잘되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런 부분에서는 제가 제 역할을 잘 하고 있구나 하는 그 정도의 뿌듯함은 있는 것 같아요.
프로배구단 통역사로 근무하고 계시지만,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통역사로도 근무하신 적이 있잖아요. 어떤 과정을 거쳐 발탁되셨는지도 궁금해요.
소식을 듣고 엄청 놀랐어요. 저도 대표팀에선 통역 경험이 없다 보니까 저에게 그 기회가 찾아올 줄을 몰랐거든요. 제가 체육학과를 나왔어요. 그 당시에 전 제가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체육이 좋아서 막연히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죠. 주변에서 체육학과를 다닌다고 하면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할 건데?’ 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당시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나 정확히 어떤 일을 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올림픽에서 일하고 있을 것 같아”라고 대답했어요. 시간이 흘러 배구단 통역사가 되었고, 일을 하면서 올림픽에서 일할 기회가 올 줄은 몰랐는데 너무 꿈같이 저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어요. 정말 신기하죠.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는 꿈이어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또 말하면 그런 쪽으로 에너지가 가잖아요.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도 할 거고요.
면접은 어떻게 진행됐을지도 궁금해요.
먼저 구단을 통해서 제안이 와서 면접을 진행한 거다 보니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시더라고요.(웃음) 그때 제가 통역을 담당했던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님은 이탈리아 분이셔서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하시는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지가 중요 과제 중 하나였어요. 어떤 영상을 트시더니 무슨 말을 하는지 통역을 시키시더라고요. 조금 당황했지만 잘 마무리했던 기억이 나요.
국가대표팀 통역사, 11년 차 통역사가 생각하는 통역사가 가져야 하는 자질은 무엇일까요?
스포츠 통역사라는 직업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외국인 선수와 함께해야 해요. 경기 중에 와서 잠깐 통역하고 가는 것이 아닌 그 선수에게 주어진 스케줄에 모두 동행하죠. 그 말은 통역사도 30여 명이 넘는 스태프, 선수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언어적인 능력도 능력이지만, 사회성과 적응력은 필수예요. 또 그 많은 사람들을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선수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협력해야 해요. 그래서 협동력도 중요하고 마지막으로는 능동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내 할 일이 끝났으니 나는 쉬겠다’는 식의 태도는 좋지 않아요. 팀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려면 다 너무 바쁘거든요. 내가 도움을 줄 여력이 있다면 도움을 주겠다는 자세를 갖추면 좋을 것 같아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11년 차가 된 지금, 경험이 쌓여오면서 업무적인 부분에서 변화한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했어요. 정말 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요. 주어진 일을 최대한 잘하고 싶었고 책임감이 컸거든요.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성향이기도 하고요. 사실 외국인 선수들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을 가친 이들이 많아요. 그런 데이터가 쌓이면서, 여전히 세심하게 지켜보려고 하지만 독립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지켜주는 방향으로 접근법이 바꿨어요. 예전에는 음식 배달을 시켜줬다면, 이제는 배달을 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향으로요. 사소한 부분이지만 한국에서 본인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인식하면 조금 더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더라고요.
통역사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선수들에게 어떤 통역사로 남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역시 믿고 맡기는 윤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모든 부분을 공유하는 사람인 거잖아요. 또 최근에 담당했던 선수들은 저보다 동생들이 많기도 하고요. 저와 동행했던 선수들에게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통역사로 기억되고 싶어요.
*아래 콘텐츠 클릭하고 싱글즈 웹사이트 본문 확인!
▶ 스포츠 통역사의 이야기 1 - KT 위즈 통역사 이연준
요즘 비혼인들이 비혼에 대한 생각, 그리고 바람
▶ 그저 평범한 비혼인들의 이야기
▶ #국민곰돌이 배구 선수 김희진이 기억하는 추억의 놀이와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