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약-
종이에 손을 베였습니다. 깜짝 놀라 손가락을 보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어요. 감각기관이 전하는 통증이 뇌로 전해지면서 피부에 작은 균열이 선명해집니다. 깊은 상처는 아니지만 유독 쓰라려요. '에이 이 종이 한 장에서 손을 베일 줄이야'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그랬을까요?
숨을 내뱉고 들이마시듯이 삶 속에는 상처가 나고 새살이 돋기를 반복합니다. 상처가 크고 깊을수록 통증도 길게 지속돼요. 큰 상처일 경우가 흉으로 남기도 하지만, 다행인 건 그 흉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흐릿해집니다.
내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하루의 순간과 많은 사건들 사이에는 여러 균열이 생깁니다. 일, 사랑,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심해 도저히 주변을 바라보지 못하기도 해요. 영원의 아가리를 벌리고 저를 집어삼켜 심해 깊은 곳까지 저를 끌어 들기도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을까' 스스로를 더욱 괴롭혀요.
날씨 좋은 날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를 띄우면 호수도 아름답지만 하늘도 아름답다는 것과 다를 게 없어. 그런 식으로 고민하지 마. 놔둬도 만사는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받을 땐 어쩔 수 없어. 상처를 받게 마련이야.
<상실의 시대> 中 -무라카미 하루키-
가끔 괘 그렇게 아침이 먼지. 주변에 자리한 어둠이 걷히는데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침은 찾아와요. 상처는 아물기 마련입니다. 다만 상처를 방치해서 더 크게 곪지 않게 해야겟죠. 삶 속에 필연으로 존재하는 상처들입니다. 그런 보통날들에게 잘 위로해 주면 돼요. 저같이 마음의 문이 좁은 사람도, 상처에 대한 흔적이 크게 남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를 받을 땐 어쩔 수 없지요. 삶의 호흡 사이에 있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