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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Aug 21. 2024

자주 별 헤는 밤. 쫌.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별 헤는 밤을 겪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지요. 밤하늘에 별을 찾는 것보다는 영화나 게임, 장난감이 더욱 친근했고, 재미있었습니다. 보고 싶은 홍콩 르느와르 영화가 18세 이상이라서 마음껏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던 어린이였으니까요. 꼬마에게 별은 시시했어요.


일 년에 두 번, 방학 때면 꼭 외가에 놀러 갔습니다. 방학숙제에서 벗어날 꿍꿍이였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와 일주일은 있을 수 있다며 엄마에게 큰 소리를 쳤어요. 일주일을 모두 채워서 있었던 적은 없었지만요. 이틀이 지나면 꼬마는 시무룩해졌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었거든요.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고, 신나게 동네를 뛰어다녀 보지만 그것도 잠깐입니다. 할머니집의 화장실도 문제였지요. 세상에서 사장 무서운 곳이었어요. 빠르게 찾아오는 시골의 밤은 깊어질수록 어둠의 기운이 또렷해집니다. 밤이 다가오는 소리는 되려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꼬마는 집이 그리워져요. 두 살 위 형이 동생을 위로해 줬습니다.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밤하늘에 뜬 별을 보고 그리움을 세어 본 것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랑 덕에 일 년에 며칠 정도는 시골의 정겨움을 느꼈습니다. 여름이면 늘 할아버지는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셨어요. 어린 꼬마 녀석이 힘을 다해 활시위를 먹여 활을 쏘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곤 했지요. 참새를 잡겠다고 할아버지에게 큰소리를 쳤는데, 사실은 '진짜로 참새가 잡히면 어쩌나?', '참새가 불쌍해서 어쩌지?'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웃기지요? 누가 누굴 잡아요? 참새한테 안 잡힌 게 다행이지요.


5학년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북두칠성 관측이라는 숙제를 내줬어요. 꼬마 녀석은 또다시 머리를 굴립니다. 소꿉친구의 집에서 함께 숙제를 하기로 한 것이지요. 마침 옥상에 올라갈 수 있는 집이 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 세 놈과 작전을 짜고 각자 엄마를 설득하기로 했지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준비하고 엄마 앞에 섰습니다. 숙제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토로하는 5학년 꼬마가 얼마나 귀여웠을까요? 작전대로 엄마의 설득(?)에 성공한 꼬마 녀석은 우쭐합니다. 다행히 다른 녀석들도 성공했어요.


거사 당일. 드디어 5학년 꼬마 셋이 모여 자정을 기다립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날씨가 맑고 조금은 쌀쌀한 저녁이었어요. 북두칠성을 찾아본다는 설렘과 기대에 들떠 있었지요. 모두 잠들어 버렸지만요. 아주 푹이요.


거사 당일은 실패했지만, 이후 우연한 기회에 북두칠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 월례행사였던 새벽 등산길이었지요. 엄마 손을 잡고 우연찮게 올려 본 새벽녘이었어요. 북두칠성을 찾아보겠다고, 교과서를 계속해서 봤던 것이 머리에 각인됐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당시 유행했던 <북두의 권> 만화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토록 거대하고, 아름답다니요. 넋을 읽고 얼마나 서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의 위대함, 신비 같은 걸 느꼈던 거 같아요. 이후로도 어두운 밤이면 하늘을 올려 보고 별자리를 찾아요. 북두칠성 별자리를 보고 있으면 늘 마음이 편해집니다.


안타깝게도 별은 도시를 떠나갔습니다. 별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빼곡하게 자리한 건물들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 보다는 내일을, 비움보다는 채움을 원합니다. 오늘이라는 별과 비움이라는 별은 이제 설자리가 없어요. 찾은 이가 없으니 도시를 떠나야 했겠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흔이 넘으니 별의 그리움이 짙어져요. 그런데 이미 도시를 떠난 별은 제가 사는 마을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죠. 이제 제가 별을 찾아 나섭니다. 높은 건물의 빛이 세상을 밝히지 않는 곳을 찾아요. 주말이면 시간을 내어 여기저기 곳곳을 찾습니다. 그래봐야 고작 한 달에 며칠뿐이네요. 일을 해야 하는 평일에 제 몸은 늘 건물들 사이에 있어야 하니까요.


도시를 떠나게 한 별들에게 사과합니다.

"미안. 핑계로 들리겠지만 조금 바빴어. 조금 더 나아져야 했거든. 그게  사회가 만든 평가라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필요했어. 계속해서 내일을 준비해야 했고, 또다시 새로운 걸 채워야 했거든. 아무튼 미안해."


이제 별을 찾는 건 제 몫입니다. 이곳에도 다시 별을 그리워하며, 별을 찾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렸으니까,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겠습니다. 시간은 좀 더 필요하겠지만요.


이제 오늘이라는 별과, 비움이라는 별을 자주 만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가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음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뜬다

<어떤 마을> -도종환 지음-




오늘 우리 마을에도 별들이 많이 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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