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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Nov 08. 2023

29년의 기다림

8 day - 한국시리즈 1차전

일곱 살에 아빠가 가입시켜 주신 야구 어린이 회원으로 지금까지 LG 트윈스팬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 중이다. 29년 무관의 희망고문 속에서 라이벌 팀들은 몇 번씩 트로피를 들고 축포를 터뜨렸다.


지금은 한화_죄송합니다_팬들 덕에 다소 잊히긴 했지만, 트윈스의 극 암울기 시대에는 소개팅에 나오는 남자가 트윈스 팬이라면 우선 몇 번은 만나보라는 말도 있었다. 트윈스 팬이라면 일단 사람 속은 좋을 거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2013년 암흑기를 탈출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팬들은 우승이라는 갈증을 느끼고 있다.


이쯤 되면 팬덤을 위한 우승을 바라는 것인지.

청춘 또는 반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괴로워한 스스로의 보상을 위함인지.

그것도 아님. 한국인 특유의 한이 맺힌 것인지.

잘 모르겠다.


드디어 11월 7일.

Be the one이라는 통합우승의 염원을 담아 엄청난 기대화 흥분 긴장 속에 한국시리즈 1차전이 시작됐다. 아이유 콘서트보다 어려웠다는 대기를 뚫은 1만 2천 명의 관객들 중에 원정 팬은 500명이 채 안 되는 규모로 보였다.


일본리그의 한신이 39년 만에 우승을 했다며, 저 신문을 부적 삼아 가져온 팬도 있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의 응원이 그랬다.

폴란드전이 그랬고. 박지성의 1대 0 포르투갈 전 승리가 그랬고.

이탈리아전의 미친 분위기.

모두의 염원을 담은 4강 스페인전이 그랬다.

그리고 어제 잠실에 분위기가 그랬다. 미쳤다.


근데.....트윈스는 졌다.

게다가 야구의 흐름상 절대 질 수가 없는 호수비 퍼레이드를 펼치고도 졌다.

졌다.

매댜홈;ㅣㅏㅇ호;미ㅏㄷ해ㅑㅗㅁㅇ호ㅑㅁ재댜호매냑호맺댝ㅎㅏㅓ라ㅓㅗ라ㅓㅗ라.....

졌다. 휴


인생은 늘 원하는 모습의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왜 야구에서까지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

잠시 후 다시 한번 2차전을 방문한다. 기대와 흥분은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한국시리즈 분위기를 즐기려고 한다. 1차전 만에 기대를 내려놓는다.


야구는 늘 그렇다. 선수는 열심히 뛴다.

스트레스는 팬들의 몫이다.

그래도 트윈스를 응원한다.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왜 저 스트라이프 줄무늬를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지.

모르겠다. 뭐든.

좋은 데 이유가 있냐. 사랑하는 데 이유가 있냐.

그냥 너이기 때문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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