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day - 사과를 할 줄도, 받을 줄도 알아야겠다
사실이 그러해서 욕을 먹으면 그것은 사실이니 성낼 것 없고, 사실이 아닌데도 욕을 먹으면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때나 분노하지 않는다.
<잡보장경>중에서
손해사정사 업무를 하면서 참 많은 민원인을 만났다. 사고 건들마다 피해자의 보상급수와 직업이 모두 다르다 보니 그 경우가 참 다양하다. 게다가 손해사정 결과에 따라 보상금이 결정되다 보니 그 과정에 얼마나 첨예한 의견차이가 있겠는가.
부서 민원건의 최종 담당을 맡은 적이 있다. 부서 팀장이 해야 될 업무였지만, 내 담당이 되었다. 부서에서 사망사고와 중상사고를 담당할 때였는데 내가 업무 지식이 많고, 외모적(?)으로도 적임자라는 선배들의 압도적 지지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민원인을 피하고 싶은 선배들의 일관된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것이었는데, 부서의 막내급이었던 내가 그 업무를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다들 억울하다. 담당자도, 민원인도 모두 억울할 뿐이다.
주제와는 무관한 트집을 잡는 사람들부터, 목소리 성량으로 보험금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예전 글에도 적었지만 나에게 부적을 쓴 무당도 있었다.
민원인과의 대화라는 것이 월드컵 결승전과 같은 승패를 결정하는 종류의 시합이 아닌데, 대화를 하다 보면 너무 치열하게 이어질 때가 많다. 특히 대화를 시작하기 전 비장함으로 물든 전운을 느낄 때마다 참 당혹스럽다.
민원인과의 대화는 참으로 치열하다.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긴박함과 조급함. 100m 달리기의 출발 총성이 울리자마자 뛰어 나가는 우사인볼트의 탄력과 쉬지 않고 발을 내디뎌야 하는 근육의 강인함이 모두 녹아있다. 치열한 감정 배틀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모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만 하기에 급급하다.
간혹 오해가 있거나, 사실에 대한 인지부족으로 화를 내시는 분들이 있다. 본인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그 즉시 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 될 일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사실을 감추는 것에 급급해진다. 업무실수를 한 담당자도, 사소한 오해를 한 민원인도 모두 자신의 잘못이 들통날까 봐 감추려 든다. 보통은 상대방이 하는 말을 중간에 자르고, 목소리를 높이는 방법을 택한다. 배는 산으로 간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탓이다. 악다구니를 치고 욕을 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저주한다. 본질은 잊고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대다수의 민원 건이 주제는 다르지만 과정은 흡사하다. 민원 업무를 처리할 때는 절대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면 안 된다. 논리적으로 설득해서도 안 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사실은 설명을 해야겠지만, 민원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다는 식의 흐름을 가져가게 되면 이내 더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될 뿐이다.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없다.
이는 민원 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화를 낸다. 소리를 높이고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사실이 아닌 근거의 비판이라면 오히려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대응이 되는데, 상대방이 팩트-그것도 내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느끼는-를 가지고 나를 지적할 때에는 오히려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자기 합리화로 포장한 판도라의 상자에 넣어둔 불편한 사실을 타인이 자꾸 꺼내려고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인정과 사과. 이 두 가지가 참 어렵다.
내 잘못을 숨기지 않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가 쉽지가 않다. 내가 항상 옳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메타인지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자의 말씀처럼 호연지기를 키워 내면의 그릇을 키운다면 좀 나아지려나.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나의 승리가 아니다. 포용성 있는 상대방의 행동이라 여기고 그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될 뿐이다. 사과의 색과 모양을 두고 새로운 설전을 추가할 필요는 없다. 빨간색 홍옥도 사과고, 연두색 아오리도 사과다. 16기 영숙이가 한 것도 사과다.
사과를 할 줄도 알아야겠고, 사과를 받을 줄도 알아야겠다. 노력해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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