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 Jan 24. 2024

오늘은 브런치 글 올려야지

업무시간에

아 깜짝야.

눈을 좌우로 돌리며 키보드를 치는데 모니터 아래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제가 저 대문사진 표정을 하고 있네요.


형과 전 모두 월급쟁이에요. 직원 수가 많은 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는 그게 그렇게 좋으신가 봐요. 아들들이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것이요. 나이가 들수록 자식 자랑 하는 맛이 그렇게 꿀맛이라는데, 엄마는 늘 말씀을 아끼십니다. 행여 어디 가서 자랑이라도 하면 그 복이 달아날까 싶어서요.


평생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하시던 아낌없이 주는 엄마 나무에게 이제 그늘을 만들어줄 이파리는 없어요. 여전히 힘들면 쉬어가라고, 언제고 자리를 내어주겠다며 웃고 계실 뿐이지요.


시대의 빈곤에 따른 보편함으로 배움이 짧을 수밖에 없었던 월급쟁이 아빠와 전업주부 엄마의 교육아래에서 자란 형제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월급쟁이가 되었지요.

경제활동은 곧 취업이라는 프레임 속에서는 고민도, 갈림길도 없었습니다. 대학 졸업 전 취업을 하고, 매 달 급여를 받는 ‘평범한 삶’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물론 지금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평범한 삶‘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란 것을.


나중에는 선택의 범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기도 했어요. 직장생활이 힘든 것은 일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느낄 때면 유독 그 아쉬움이 더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그의 말에 수긍하는 삶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참 많거든요. 로버트 기요사키를 원망했어요. 책 출판 좀 서두를 것이지 하구요.


월급쟁이로써의 선택을 돌이키기에는 이제 늦었습니다. 사실 돌이킬 마음도 없습니다. 사회적 기준으로 높은 급여를 받고 있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거든요.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제게 “넌 해고야. 당장 이 사무실에서 나가. “라고 말할 수 없으니 저는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정년을 채울 수도 있습니다. 직장인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분명한 여러 장점들이 있지요. 능력 있는 많은 취준생 후배들을 보자면, 직장인의 애환 같은 배부른 소리는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될 것도 같습니다.


최소 비용을 통한 최대효과를 원하는 것은 회사나 직원이나 똑같습니다. 계속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지요. 회사를 오래 다녀보니 줄다리기의 성패가 정권의 성향에 영향을 받는 것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결코 노동자에게 유리한 정권이 아닌 탓에 업무 강도가 많이 올라가고 있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정치와 사회 경제와 관련한 논평이 아니라, 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아무튼 보통의 직장인들은 조금 방심하고 나면 평일의 시간 대부분을 오롯이 회사가 가져갑니다.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서 근무시간을 세어 보자니 내 개인적인 일정은 하루에 한두 시간이 되질 못해요. 일, 주, 월 단위의 시간들이 회사의 업무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정말이지 직원들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달려든다면 대한민국 통일도 머지않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다니요. 도대체 왜 통일이 안 되는 걸까요?


저는 조금만 꼼수를 부리겠습니다. 하루 한두 시간만요. 한 주에, 한 달에, 한 해에 남는 것이 회사 프로젝트뿐이라면 너무 억울합니다. 지금의 업무로 더 높은 곳에 승진하고, 책상의 길이가 조금 더 넓어진다고 하더라도, 저는 사양합니다. 앞으로는 하루에 한 가지씩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 보려구요. 그것이 글쓰기가 될 수도 있고, 책 100페이지 읽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팝송을 몰래 외워보고도 싶구요. 뭐가 됐든요.  


업무 일정을 관리하듯이, 제 개인적인 일정을 우선하여 시간을 관리할 거예요.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 이 번주는 무엇을 할 것인지. 그래서 이번 달에는 무엇을 할 건지 정해 보려고 합니다.


결과물을 만들어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에요. 완벽한 오늘을 살고 싶은 노력입니다.


그렇게 저의 오늘을 지켜야, 상당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업무시간도 더 의미가 있을 거 같습니다. 저의 꿈인 백수가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아직은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미래 같은 거 생각 안 해. 도착해야 할 미래의 이정표를 너무 먼 곳에다가 세워놓으니까, 현재가 전부 미래를 위한 재료가 되더라고. 자세 하나 고치는 거, 그 자체가 목표야. 그다음? 그런 거 없어. 그냥 하나라도 온전하게 끝까지 싶어."

-손원평, <튜브>중에서-


현재가 미래의 재료가 될 순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래를 위해 오늘 전부를 밀어 넣을 필요는 없어요. 너무 거창한 목표와 미래를 위한 나머지 현재의 소중함과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간과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오늘로써 가지는 의미로도 충분합니다.


하루가 너무 거창할 필요도 없어요. 수많은 조각들의 하루가 모여 기억과 미래를 만들어 줄 겁니다. 그 조각들이 모두 회사와 관련이라면. 그건 너무 노잼이네요.


5년 전 회사에서 받았던 최우수평가.

10년 전 처음 해 본 전국 1등.

친구나 예전 동료들을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제게 더 이상 감흥이 없고, 무엇보다 그때의 기억이 즐거운 조각으로 남아있지도 않아요.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기억에 감정이 배지 않습니다.


5년 전 송년회 자리에서 취한 친구의 못생긴 사진.  

10년 전 우연히 들어갔던 조그만 횟집에서 먹었던 기가 막힌 고등어조림과 한 잔의 소주는 지금도 종종 얘기하곤 합니다. 친구의 붉은 얼굴에 묻은 못생김과 비린내를 압도하는 매콤하고 달짝한 맛. 이런 것들이 기억에 짙게 스며들어 있거든요.


매일 오늘.

새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습니다.


사진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소금에 절인 미숫가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