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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Jan 15. 2024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일부러 더 울자는 말은 아니지만.

인사 발령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대 속에, 또 어떤 사람은 절망 어린 인사 발령을 받고 새롭게 일할 부서로 배치됐다. 승진급이라는 커리어 관리를 위해 발령이라는 찬스를 쓴 이도 있고, 지금껏 맡은 업무가 싫어 발령이라는 탈출구를 찾은 이도 있다.


인사 발령은 럭비공과 같다.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연초의 정기 발령이 예측대로 이루어진 적은 결코 없다. 회사의 인사규정이 존재하지만 발령자체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윗선의 입김이 작용한다. 인사규정이라는 귀걸이를 코걸이로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명절 때가 되면 아버지와 1대 1로 보드게임을 즐긴다. 이기고 있는 사람이 갈지, 멈출지를 정하는 게임인데, 하나의 카드를 두 가지 기능으로 쓸 수 있다. 나는 가급적 9피를 열 자리보다는 쌍피로 쓴다.


인사 발령은 9피 같다. 발령을 받는 사람이 아닌, 발령을 내는 사람의 쓰임새를 위해 만들어졌다.


전략이 필요하다. 출근 시간 지옥철에 탑승할 전략, 놀이공원에서의 다양한 어트랙션을 이용하기 위한 동선전략 같은 능동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 희생당하지 않는다.


인사발령은 모두가 만족할 수 없다. 수백 명, 수천 명이 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상당한 양의 경우의 수를 조합해야 하는데, 한두 개의 조합이 어긋나 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다시 처음부터 퍼즐을 조합해야 한다. 그러니 적당히 인성 좋고, 목소리가 크지 않을 직원을 찾아야 한다. 조금은 불합리한 발령을 당하더라도 참고 인내할 직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직원이 업무까지 훌륭하게 소화하는 캐릭터라면 더욱 금상첨화다. 퍼즐을 마무리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다. 어디까지나 보안은 필수다. 마지막 카드가 누구인지 알려지면 안 된다. 부서 이동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직원이 수도 없이 나오게 될 테니까.


업무에 충실하는 로열티, 정치에 소질이 없어 라인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주성, 여전히 나보다는 팀을 생각하는 동질감 따위의 낭만, 무리한 업무라 할지라도 어쨌든 묵묵히 해내고야 마는 책임감.


인사 발령의 희생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은 성향이다. 회사에서는 없어서 안 될 소중한 자산이겠지만, 그 자산이 내가 된다는 것은 냉정하게 짚어볼 일이다. 더 이상 회사에 소모당할 필요는 없으니까. 묵묵히 내 일을 다한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조금 다른 결말을 가져오더라. 묵묵히 해내는 것보다는 과대포장이 좋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는 일을 잘 맡는 것이 중요하다. 옛말이 틀린 게 없다. 나는 상당히 혐오하는 말이긴 하지만 이건 국룰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최근 옆 부서로 지O씨가 발령이 났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후배인데 마지막 카드로 활용을 당한 경험이 있는 직원이다. 원래가 묵묵히 일을 잘하는 데다가 밝고 이타적인 성격이라 주위에서 좋아할 수밖에 없다. 다만 본인은 피곤하고 힘들 뿐이다. 다행히 이번 발령은 사내 공모를 통한 능동적 선택이라 마지막 카드로 쓰이진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어려운 보직을 맡는 모양새다. 발령 일주일 동안 어려워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다. 적절한 인수인계가 없다. 부서에서는 금메달 리스트 김연아 선수가 왔으니 이제 됐다고 마음을 놓는 것 같다. 근데 그 부서는 피겨스케이팅과는 거리가 먼 역도판 같은 곳이다. 김연아 선수가 120kg을 어떻게 드나.


힘내!!
안 그래도 매일매일 힘내서 사는 사람한테 또 힘내라고 말하니까 되게 미안한데 그래도 힘내야지.
그래야 또 살아가지.

- <낭만사부 김사부3> 중에서 -


한석규 배우의 깊은 목소리를 빌려 전한다.


오늘 하루도 우리 힘내자. 누가 뭐라고 해도, 늘 해 오던 대로의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힘내 보자. 이 또한 지나가겠지.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에서 조금 벗어나길 바라. 그것도 다 회사가 만든 프레임이야. 떡 하나 더 먹으려고 일부러 울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너무 조용하게 있으면 것도 좋지는 않더라. 떡 사 오라고 오히려 심부름을 시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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