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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 Jan 12. 2024

나에게 두 가지만 주소서

사진 : 두 가지 by pixabay

치기 어린 스무 살.

술과 담배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다는 합법적 자유를 통해 자신감이 가득한 때였다. 친구들과 모은 한두 장의 지폐를 모아 술과 안주를 시킨다. 안주는 가급적이면 물을 넣고 재탕을 우려낼 수 있는 것으로 주문한다. 김치찌개보다는 알탕이 좋다. 알에서 맑은 계곡물이 나올 때까지 재탕이다. 여유가 조금 있다면 계란말이도 추가한다. 아끼고 아끼다가 늘 식은 계란말이를 먹었지만, 그런 낭만이 있었다. 그때는.


사회인이 됐다. 돈을 번다. 사회에 진출하기 전 삼삼오오 모여 지갑을 털어 나온 몇 장의 지폐를 모으던 학생은 이제 앱을 통해 편리하게 계산되는 1/N 방식이 익숙하다. 선배가 되고, 승진급을 하고 나니 간혹 밥을 사야 할 때도 있다. 크게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신용카드의 힘을 빌린다.


수입산 냉동 대패삼겹살이 참 맛있었다. 최근 대패 삼겹살을 납품하는 세상의 모든 사장님이 바뀐 것인지 그때의 그 맛이 잘 나지 않는다. 사장님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한 탓이겠지. 대신 소고기를 파는 식당에 간다. 기름이 많아 몸에 좋지 않을수록 더 높은 값을 지불해야 하는 곳이다.


건더기를 남겨가며 재탕, 삼탕으로 끓이던 알탕 집의 모임은 정갈한 오마카세 식당으로 옮겨진다. 한 잔의 소주로 감사하던 젊은이는 와인바에도 가보고, 싱글 몰트나 코냑을 마셔보기도 한다. 그런데 문득 그때의 낭만이 그립기도 하다. 여유가 조금 생기니 이제 낭만이 덜하다. 수확에 대한 즐거움이 줄어들었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은 예외가 없다.


큰 사고 없이 무난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노력한 사간의 대가로 집의 거주 형태가 바꿨다. 내 명의로 된 자동차를 구입하기도 한다. 첫 차의 운전석에 앉아 시동버튼을 누를 때의 진동, 차체에서 전해지는 자동차의 동력이 짜릿함을 선사한다. 앉아 있는 시트가 가죽인지, 티라미스 치즈케이크..인지 모르겠다. 너무 부드럽다.


그런데 지금 주위를 돌아보면 주위에는 온통 이쁜 자동차 투성이다. 탐이 나는 자동차 투성이다. 소유가 늘어나면서 욕심은 커진 탓이다. 분명 가질 수 없던 것들을 하나씩 수확하고 있는데, 자꾸 주변을 둘러본다.


잃어버린 낭만의 자리를 숙성된 멋과 여유가 자리하면 좋겠는데, 딱히 그렇지가 않다. 마음은 더 조급해질 뿐이다. 우월함 그리고 열등감. 상반된 이 두 녀석이 나도 모르게 제 각각의 덩치를 키우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오직 두 가지만 주소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인내를
바꿀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나에게 오직 두 가지만 주소서
나보다 약한 자 앞에서는 겸손할 수 있는 여유를
나보다 강한 자 앞에서는 당당할 수 있는 깊이를
나에게 오직 한 가지만 주소서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삶에 뿌리박은
깨끗한 이 마음 하나만을

-박노해, <나에게 오직 두 가지만 주소서>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음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게 대하는 제 멋대로의 기준을 바꿔야겠다. 타인의 험담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듯 타인을 보려고 노력해야겠다.


나에게 오직 두 가지만 주소서.

늘 그 기준을 바꾸며 고개를 쳐드는 비열한 열등감을 이겨낼 용기를 주소서. 타인의 노력과 행운을 축하할 수 있는 당당한 감사와 겸손을 주소서.


알탕과 한 잔의 소주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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