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내는 게 어렵지
사무실. 오후 3시. 가장 좋아하지 않는 조합이다. 퇴근시간은 아련하고 요원하다. 점심을 먹은 노곤함이 업무 집중도를 잡아먹는, 그렇지 않더라도 사실은 별 재미는 없는 업무시간.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좋다. 잠깐 시간을 내어 브런치 마을로 들어왔다. 블루 라이트를 방지하기 위해 모니터에 씌어둔 필름은 사실 사생활 방지 필름이다. 옆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얼굴은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브런치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참 길다. 그런데 한 달, 한 해는 짧다. 반복적인 하루를 허투루 보내면 안 되는 이유다. 일과 중 잠시라도 호흡을 가다듬어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려고 한다. 이른 새벽을 맞이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에 떠 밀려 살고 싶진 않다.
새해가 밝았다. 222라고 네이밍 한 나만의 새해 루틴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며칠 지났을 뿐이지만 다행히 작심삼일은 아니다. 한 해의 마지막 해를 넘기며 술을 마시지 않은 건 고등학생(?) 이후로 처음인 거 같다. 12월 31일. 해냈다는 만족감이 더해진 조금은 유의미한 해넘이였다.
성적 잘 받으려면? 공부해
살 빼려면? 운동해
대화하려면? 노력해
원래 방법은 뻔해. 해내는 게 어렵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에서-
TV속에서 어느 배우가 말했다. 여러 이유로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데, 우연하게 보게 된 방송이었다. 그 흔한 잘생긴 도깨비 아저씨도 안 봤고, 이국적인 얼굴이 매력적인 북한군이 한국의 재벌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도 보지 않았다.
그래도 요즘은 갓 담가 적당히 맛이 밴 김치 한 포기로 뺨을 때리진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너와 내가 사랑했는데 너는 학생이고 나는 선생이라며 회초리를 드는 선생님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반면 요즘 드라마 작가님들 참 대단하다. 어쩜 저런 글들을 탁탁 만들어 내시는 걸까? 일상에 대한 고민과 사색 없이는 쓸 수 없는 글이다. 쉬운 단어와 일상적인 문장. 그래. 방법은 뻔하다 해내는 게 어렵지. 방법을 몰라서 A 성적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이어트란 원래가 내일부터 하는 것이긴 하지만 살을 빼는 방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대화라는 것이 주고받는 것이라는 것을 몰라서 자녀들의 말은 듣지 않고 제 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방법은 참 뻔하다. 합리적 핑계를 대고 모른 척 할 뿐이지.
담배를 피우지 않은 지 10년째다. 흡연을 하면서도 내가 뿜는 그 냄새가 싫어 시작한 금연이었다. 꽤 여러 번 실패했다. '금연 하자. 담배를 끊자. 담배를 피우지 말자'라고 다짐을 하다 보니 오히려 머릿속에 담배 생각뿐이다. 헤어진 연인을 욕하면서 그를 그리워하는 꼴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불을 붙였다. 좋아했던 말OO 레드 한 가치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뿜으면서 뭐 이런 우스운 실패담이 있나 싶었다.
꽤 오래 운동을 하고 있다. 저녁 약속_특히 술 약속이 많았던 터라 운동은 가급적 아침 새벽시간으로 했다. 시작점이 그랬던 탓인지 지금도 운동은 아침에 하는 것이 편하다. 한 주에 세 번은 웨이트 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꽤 귀찮다. 여러 가지 합리적 핑계로 내일로 미루고 싶을 때가 많다. 운동을 마치고 몸이 펌핑됐을 때의 상쾌함과 즐거움이 분명 있지만 아침 운동이 결코 즐겁지만은 않다. 그때마다 예전 운동했던 피트니스 센터에서 본 문구를 떠올린다.
"아무 생각하지 마. 그냥 들어. 시작해."
너무 공감이 돼서 문구를 보고 혼자 킥킥대고 웃었다.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그 운동이 결코 즐겁지 않은 모양이다. 횟수와 세트에 대한 합리적 절충을 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다 잡는 문구.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라는 뜻이다. Just do it.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카피가 다 의미가 있는 거구나 하고 새삼 놀란다.
모든 일이 그렇다.
여러 글이나 명언에서 밝히는 마인드 셋 만큼이나 실행이 중요하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런 결과도 없는 것이 당연할 테니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라도 해야 한다. 사실 많은 실패와 포기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는 행하지 못했기 때문인 탓이다. 열심히 하고, 잘하고 하는 것은 둘째 문제다. 우선은 시작을 하자. 시작은 반이 아니고 시작일 뿐이지만, 확률 제로를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은 좀 뛰어야겠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뛰어야겠다. 러닝 방법은 잘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