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님이 말씀하셨지
흰옷을 입고 흰색을 숭상한 오랜 전통에서 유래한 우리 민족의 별칭. 일명 백민(白民)이라고 약칭하기도 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배달의 민족, 일명 배민이라고 약칭하기도 하지만 원래 우리나라는 배민이 아니라 백민이었다.
아름다운 네 개의 계절과 맑고 푸른 강산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나라.
그런데 작다. 작아도 너무 작은데, 세습으로 권력을 이어가다 보니 그렇게 힘이 세지도 못했다. 하필이면 3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어 항구로 쓰임새가 좋아 바다 건너 나라들의 첫 공격지로 자주 지목됐고, 물리적 땅 크기로 따지면 그야말로 大國인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이국에 늘 조공을 받쳐야 했다. 바다에 잠길 것이 두려운 제국주의 섬나라는 침략이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이는 지금도 여전하다.
고등학교까지 학교에서는 분명히 찬란한 조선왕조 500년이라고 배웠는데, 시험지 밖 조선왕조는 건국의 시작이었던 위화도회군부터 중국의 눈치를 보기 바빴던 나라였고, 이후 일본에게는 아예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힘 없는 작은 나라에서 살아남아야 했을 백의민족의 생존본능은 참으로 치열했다. 권력을 이어나가려는 탐관오리의 폐쇄정책으로 인해 먹고살기도 어려울 노릇인데, 무능한 지도자가 이끄는 전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했으니.
나라를 수렁에서 끌어 올린 많은 위인과 성인들이 계셨지만, 이 나라의 백성들은 참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 땅의 유전자는 꽤 우월하지 않았을까? 이 작은 나라에서 못하는(?) 것이 없는 세계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지금의 경제와 과학기술, 문화를 보면 참 대단하다. 어려서부터 경쟁에 노출되어 알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하는 시스템 덕도 있겠지만, 무엇이든 개인의 치열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할 업적들이다.
5천만 명에서 뽑은 11명을 여전히 이기지 못하고 있는 중국 축구를 보면 이해가 된다. 아직도 조선시대인 줄 아는 건지 축구를 하는 중인데... 이 나라 선수들은 너무 과격하다. 중국전이 열리는 날이면 경기의 승리가 아닌 선수들의 부상을 걱정한다.
대한민국 검투사들이 유럽의 그들을 이기고 금메달을 따는 모습은 참 경이적이다. 얼음을 볼 수 있는 시간이 1년에 고작 세 달 남짓한 이곳에서 스케이팅과 스켈레톤 등의 동계스포츠 쪽에서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자메이카에서 봅슬레이에 도전하는 영화 <쿨러닝>을 현실로 구현해 버렸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반도체 기술과 조선업, IT, k-pop 등 과학과 문화 방면에서도 이미 세계의 중심이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이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런 대한민국이 행복하지는 않다. 2023년 3월 기준 OECD국가 38개국 중 행복지수의 순위는 35위고, 자살률은 여전히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자살률은 2위 국가에 두 배 차이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이 사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국영수를 좇기 위해서 인문학을 가까이할 여유는 없다. 시험 문제에 나오지 않을 가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다.
생존이 곧 경쟁이 되어버린 지금의 대한민국은 너무 빠르다. 스스로를 돌보고 스스로를 마주할 시간이. 대한민국에는 없다. 자의와 타의로 시작된 경쟁은 높이 올라 갈수록 속도를 더한다. 다람쥐 쳇바튀를 돌면서 이제는 빠져나올 수조차 없다. 마치 쳇바퀴가 멈추면 삶이 끝나버린다는 듯.
과연 삶에서 승리를 빼면 불행만 남을까?
오늘의 일을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중략..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시집 중에서
수많은 노력과 열정으로 꿈을 이룬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와 존경을 보냈으면 좋겠다. 너무 수고했고, 너무 잘했다며 순수한 경의와 축하를 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진심 어린 박수와 존경을 보냈으면 좋겠다.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고, 다른 사람과 조금 달라도 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다름이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
1층, 2층 없이 10층을 지을 수 없다. 사회를 받치고 지탱해 주는 많은 다수가 있어 상위의 소수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1층, 2층에 존재하는 다수들을 잊으면 안 되겠다. '잘한다'의 반대말이 '못한다'는 아니니까.
슈퍼맨이 크립톤 행성에서 돌아왔으면 좋겠다.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도 좀 나타났으면 하고 바란다. 빨강 망토를 휘두르며 날아와서는, 이제 너무 빠른 나머지 미쳐가고 있는 이 세상을 강제로라도 잠시 멈춰줬으면 좋겠다.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쳇바퀴를 두 손으로 탁 하고 잡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