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 Jan 17. 2024

오늘도 자주 행복해야지

형 사랑해

내겐 형이 있다. 두 살 터울로 늘 함께 어울렸다. 성향이 선하고 마음이 넉넉하던 형은 동생을 참 잘 챙기기도, 참 많이 놀리기도 했다. 형이 입대를 하기 전까지니까 22년을 함께 자랐다.


형에게는 항상 만져질 것 같은 호기심과 풍부한 에너지가 있어서 그와 노는 시간은 참 즐거웠다. 입 안에 넣은 블루베리 풍선껌의 달콤한 맛과 같은 즐거움이었다. 작은 입술을 모아 큰 풍선을 만들 기대감에 턱을 바쁘게 움직이듯 동생은 늘 바쁘게 형을 쫓아다녔다. 나에게 형은 새로운 놀이와 운동을 알려주는 코치이기도 했고, 엄마에게 혼날만한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영악한 꼬마 악마이기도 했다.


먹고, 자며 함께 22년을 살았는데 지금의 형과 난 참 다르다. 생김새와 키가 조금 비슷할 뿐 성격도 성향도 다르다. 덥수룩하게 컬을 넣은 펌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형은 주말이면 운동보다는 책을 읽는 것을 선호한다. 자극보다는 안정적인 균형을 좋아하고, 토론보다는 먼저 이해하는 쪽을 선택한다. 유교사상에 바탕을 두고,인의예지는 삶의 필수조건이라 생각한다.


까불이 꼬마 형이 중학생이 되고 덩치가 커지더니 덩달아 그의 말 수가 적어졌다. 그것이 막내라면 알 수 없을 장남의 책무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중학생 형은 장남이 가져야 할 책임감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형과 단 둘이 소주를 마셨다. 첫 술자리였다. 이제 엄마 아버지께 효도를 하고 싶다고 술에 취해 떠드는 동생과 달리 형은 그저 듣고만 있다. 떠드는 재미가 시들해진 동생이 뭐라 말 좀 하라고 타박하자 형은 그제야 한 마디를 한다.

"많이 컸네."


삶이 진행되면서 어른이 된 형과 나에겐 더이상 흰색은 없다. 단색이 덧칠해진다. 성향은 더욱 짙어지고,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도 조금씩 차이를 둔다. 모난 부분이 깎이면서 둥굴 해지는 모습이지만, 내면에 가지고 있는 기준은 더욱 확고하게 자리한다.


다만 한 가지 여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고, 지금껏 살아오며 쌓아온 형과 나의 사랑이다. 삶의 반을 형과 살았고, 반은 떨어져 살았지만 다행히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표현의 방식과 빈도다. 답답할 정도로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형은 문제의 해결에서도 한결같다. 형의 모습을 통해 토론의 수단을 통해서만 갈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반드시 승패를 나눠야 한다면 본인이 패자를 자처하기도 하고,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때때로 갈등을 그냥 묵혀두기도 한다. 그런 형이 조금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형의 방식을 존중한다. 형의 지혜를 존중한다.


다만 좋은 감정은 드러냈으면 좋겠다. 입 밖으로 표현했으면 좋겠다. 마음속으로 제 아무리 고마워해봤자 본인이 아니고서야 그 속을 알 수 없지 않은가? 사랑한다고 계속 말하다 보면 그 말이 상투적으로 들릴까? 설사 그것이 연인들이 하는 인사말 같은 것이라고 해도. 물론 고맙다는 말조차 아끼는 형에게 감히 사랑표현을 강요할 순 없다. 옛날로 돌아가 한 대 쥐어 박힐 게 뻔하니까. 아니 형은 그냥 또 한마디 하겠지.

"알았어."


표현하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니다. 나는 고백하고 표현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사랑의 방식이고, 책임감이고, 믿음이니까.


죽음의 경계 앞에서

"지금에서야 고백하는데. 사실 정말 사랑했어.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사랑해."

라고 말하는 영화의 올드스쿨 장면은 이제는 너무 예스러워 감동적이지도 않다. 사랑했으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실제로 한국인의 유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사랑해'라고는 하지만. 굳이 그 말을 유언장까지 아낄 필요는 없다.


또 모르지. 사랑해라고 말하면 더 사랑하게 될지도.


벽 공기를 가르며  나르는 새들의 날갯죽지 위에
첫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
바람 속을 달려 나가는 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사랑해요라고 쓴다.

-시인과 촌장 <사랑일기> 중에서-


아름다운 가사다. 참 아름다운 글이다. 훌륭한 시각과 글이 만나 이토록 아름다운 노랫말이 만들어지듯,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과 표현이 만나 아름다운 삶을 만든다.


노래 가사처럼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빈도로 만드는 강도가 행복이다. 오늘 하루도 많이 표현해야지.

형 사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