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깨달아 얻은 밝음.
대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 손에는 늘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대학생 커뮤니티 어플인 에브리타임에서 교수님에 대한 강의평가와 시험 기출문제들을 주워 담고,
인스타그램에선 오늘의 옷차림과 일상을 뽐내며,
페이스북과 네이버 카페에선 합격 후기와 스펙 인증이 끊이지 않았다.
나도 처음엔 자연스레 그 세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그저 편리했다.
누가 어떤 수업을 들으면 좋은지, 이번 축제 라인업이 뭔지,
단순히 흘려듣는 소문 대신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창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공간은 나를 옥죄는 거대한 저울이 되었다.
내가 화면을 스크롤하는 동안,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자격증을 땄다고 자랑했고,
다른 누군가는 교환학생 합격 메일을 인증했고,
또 다른 이는 연애 중인 사진을 올렸다.
나는 고작 도서관에 앉아 밀린 과제를 붙잡고 있었을 뿐인데,
그들의 하루는 늘 반짝였고 나의 하루는 늘 뒤처져 보였다.
혹시 당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휴대폰을 켰다가,
남들의 성취 앞에서 이유 모를 허무와 자책을 느껴본 적은 없는가.
전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감각일 것이다.
예전에는 명절날, 친척들 앞에서
“너는 몇 등 했니?”, “어디 취업했니?”라는 질문이 비교의 장치였다면,
지금은 손바닥만 한 화면 속에서
24시간 실시간으로 비교가 쏟아진다.
숨 쉴 틈조차 없었다.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얕아졌다.
말은 가벼워지고, 사고는 짧아지고,
자책은 깊어지고, 욕심은 끝이 없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그곳은 나와 맞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남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를 깎아내리는 일에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펜을 잡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습관이었다.
휴대폰에 일기 어플을 깔아
매일 하루를 빠짐없이 기록하던 버릇.
‘오늘은 친구와 싸워 속상했다.’
‘시험을 망쳐버려서 온종일 분노가 가시질 않았다.’
어쩌면 남들에게는 사소해 보일 일들이었지만,
그 작은 기록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군대 훈련소에 입소한 뒤에도 그 습관은 전혀 끊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집착했다.
낮에는 땀과 흙먼지로 얼룩지도록 훈련을 받다가도,
밤이 되면 불침번이 끝난 후 작은 수첩을 꺼냈다.
어둑한 화장실 조명 아래에서 글씨를 꾹꾹 눌러 적으며
그날의 나를 붙잡았다.
“오늘은 총기제식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옆에서 같이 뛰던 동기의 호흡 소리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 순간의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호흡이자 의식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 기록은 블로그로 옮겨졌다.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 재배열하며,
우울증, 강박, HSP라는 단어를 통해
흩어진 마음의 조각을 맞춰 나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자책하며 감추었던 내 모습 속에도
의외로 재능과 힘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술과 담배를 멀리한다.
단순히 취향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경험이 그렇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회피라 여겼지만, 지금은 다짐이다.
‘적어도 맨 정신으로 살아내자.’
물론 그 다짐조차 나를 옭아매고 갉아먹었지만,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나는 글을 붙잡았다.
처음 블로그에 올린 글은 아주 소박했다.
학교에서 겪은 일, 친구와의 작은 오해, 시험을 망친 날의 기록.
그런데 의외로 누군가가 댓글로 공감해 주었다.
“너 글이 생각보다 깊다.”
그 한마디가 내 안에서 오래 울렸다.
그때부터 글은 더 이상 혼자만의 기록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가능성이자,
내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처음 두 번은 탈락.
‘내가 부족한 건가, 재능이 없는 건가?’
끝없이 스스로를 추궁하며 흔들렸다.
그러다 무심코 제출한 세 번째 지원서가 덜컥 합격했다.
기쁨보다 당황이 앞섰다.
기대와 설렘이 몰려오자,
오히려 더 큰 불안과 실망이 함께 찾아왔다.
20대 초반의 내가,
세상을 오래 살아보지도 못한 내가,
과연 허무와 철학을 논할 자격이 있을까.
글을 멋지게 빚어내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 같은 미숙한 존재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쓰고, 또 쓴다.
과거의 흔적, 솔직한 경험, 숨기고 싶었던 트라우마.
그 모든 것을 글로 남기는 것만이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전환점이자 시작이다.
이제 브런치에서,
스스로 깨달아 얻은 밝음을 기록해 나가려 한다.
혹시 당신도 비교와 자책 속에서 흔들린 적이 있는가.
나의 기록이, 당신의 하루를 잠시라도 멈추게 하고
“괜찮다”는 숨 한 줄기를 건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글의 이유는 충분하다.
함께 걸어가자.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우리 그대로,
그래도 살아내려는 그 마음을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