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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gular Han 싱귤러한 May 04. 2024

산책 나갈까요?

우리는 situationship 입니다.

오늘은 그림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한동안은 1인기업을 운영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연재했는데, 이번엔 2017년부터 써 오던 본연의 싱귤러한 브런치인 그림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인기업을 운영하면서 매일 똑같은 날의 연속이고, 공모전에 출품하고 떨어지고, 싱귤러한이 오프라인 매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정부지원 사업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등 계속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어서 한동안은 마음을 다 잡기 힘들었어요. 혼자서 너무 열심히 했다 하면서도 심적으로는 조금 놓아버렸네요.


그동안 저는 지인의 집에 가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인과 얘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풀립니다. 집 앞 산책도 나가고, 강아지들이랑도 놀고, 지인과 그의 아들이 투탁거리는 것도 보면서, 사람 사는 것을 느끼고 집에 오면 살짝 생산적인 일을 못했다는 허탈한 아쉬움도 있지만, 마음은 한결 위안받았다는 기분에 평온합니다. 마음의 고민들이나 무거웠던 이야기들에 공감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유일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생명체인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집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로즈메리가 내 기분을 더 좋게 해 주죠.


 동서를 막론하고 전 세계의 모든 남자들은 자기 여자의 해결사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해결도 못하면서. 그들의 해결이란, 자기 여자가 뭘 잘못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해결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건 해결이 아닌 ‘불난 데 부채질’ 하는 것이라는 걸 다들 모르는 듯 해요.


근데 이상한 건요, 남자사람친구는 여자사람친구의 말을 잘 들어준단 말이죠. 그렇게 공감도 잘해주고, 그렇게 말도 잘 들어주고. 그래서 저는 이 소통이 불통인 남자에게 남자사람친구가 되는 건 어떻겠냐고 끊임없이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의 기대와 의무를 벗어버리면 좀 더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서로에게 좀 더 귀 기울여주지 않을까요?


요즘은 situation-ship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 하지만 이제 정의를 내려주는 단어가 생겼으니 더 이상 애매한 관계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연인이 되면 연인에게 바라는 것들이 많아져요. 반면 친구는 그런 기대감을 기대할 수 없죠.


 Situationship은 연인처럼 편하게 만나고, 평범한 연인처럼 행복한 시간을 갖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남자친구이니까 이런 것을 해야 해’ 혹은 ‘여자친구면 이 정도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하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혹시 이렇게 지독하게 의무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situationship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고 봐요.



저는 내가 싫어하는 남자 친구의 모습을 봤을 때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말하죠. ‘우리는 situationship이야’라고. 즉, 내 상관할 바 아냐, 왜냐하면 우리는 결혼을 할 관계도 아니고 그냥 이 순간만 여자친구 남자친구일 뿐이야. 그러면 저는 화가 나다가도  한결 기분이 가라앉습니다. 반면, 남자친구는 너무 싫어하죠.


만약 내 남자친구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해서 ‘relationship’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의무’의 올가미를 남자친구에게 씌우는 순간 그건 남자친구뿐만 아니라 나의 족쇄가 되어버려 내 마음에도 상처가 되죠. 저의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반면 여전히 'relationship'의 굴레 속 남자친구는 끊임없이 ‘너의 000한 점을 고치면 우리는 바로 결혼할 거야’ 합니다.  즉, 내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 나는 너와 결혼할거야 합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하죠.‘우린 situationship이라서 우리 사이에 결혼이라는 것은 없어’.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올가미이고, 그가 원하는 ‘변화’가 내가 변할 수 없는, 일명 ‘태생의 성격’이라면, 내가 변해서 하는 결혼이 과연 행복할까? 그가 원하는 '나의 변화'는 술을 먹거나, 예의 없이 행동을 하거나 하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나쁜 행위의 것들이 아니에요. 그가 원하는 것은 내가 관심 없는 것이라도 듣고,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관심도 없는데, 듣는 것도 힘든데, 질문까지 해야 합니다. 저에게는 참 힘들어요.


'아~ 그래' 하며 동조해 주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남자친구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듣다가 곧 지루해지면 핸드폰을 자연스럽게 드는 저를 못마땅해하죠.


 우리 둘의 관심사가 너무 다른 것도 문제예요. 저는 돈을 열심히 벌어 여행하는 것 등 속세에 관심이 많고, 남자친구는 천문학, 음모론, 철학에 관심이 많죠. 지구가 수성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안다고 해서 나한테 100원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니고, 백신에 나노봇이 있다고 하는 말에 걱정이 되면 안 맞으면 되고, 5G가 인체에 해롭다면 안 쓰면 되는 거고, 고환을 때려서 고통을 참는 수련으로 태생의 급하고 불같은 성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하는 게 저의 생각이니 진실탐구에 여념이 없는 그에게는 제 생각이 얼마나 심플, 무무미건조하겠어요.제가 관심없는 것에 '왜?"란 "시간낭비"일 뿐이거든요. 전 그것 말고도 할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서요.


하지만, Situationship이라고 해서 이 관계를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 점이 가장 중요해요.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다른 사람과 적절치 못한 관계를 가지는 open relationship도 아닙니다.


  Faithful 지조는 있지만 단지 의무를 지우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5년을 함께했지만, 저는 여전히 제 남자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겨서 티모시 살라메보다 더 잘생겼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리즈시절보다 더 잘생겼고, 그와 노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멀리서 그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설레고 저를 보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차는 걸 보면 그냥 좋아요. 그의 순수한 마음은 더 저를 설레게 하죠. 이게 때로는 너무 순수해서 저의 피가 거꾸로 솟을 때가 많을지라도, 그래도 저는 이 남자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은 없습니다. 남자친구가 ‘의무’를 저에게 씌우려고 하지 않을 때까지 이 situationship관계로 평생 살아도 될 것 같아요. 그때는 우리가 결혼을 하지 않을까요?


내가 변하지 않아서 슬픈 내 남자의 손을 꼭 잡고 저는 가까운 서울숲의 숲 속을 다시 걷고 싶어서 그렸습니다. 소통이 불통이라도 같이 있는 게 좋은 우리는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에 같이 산책하면서 또 툭탁거릴지라도 말이죠.



초록색은 컬러테라피에서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 칼라라고 합니다. 컬러리스트 기사 자격증을 따 놓고도 제대로 사용을 해 보지 못해서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만 하지만, 제 그림에는 충실하게 칼라테라피 효과를 주고 싶어 다양한 그린컬러로 그림을 그려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자마자 마주하는 그림으로 평온한 하루가 될 수 있게 침대 맞은편에 걸어봤습니다.


https://singular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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