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욕심부리지 마세요
3년 반년 전,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그렸던 그림이에요.
이사 후 잠깐 집에 들르신 주인집 어르신이 물어보시더라고요. 이 그림의 의미는 무엇인지.
저는 사실 제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에,
그림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는지 보는 분들에게 먼저 물어보거든요.
저는 '글쎄요.. 보는 분들에 따라 해석이 달라서, 아주머님은 어떻게 보이세요?'라고 되 물었어요.
그림이 좀 난해하죠. 한참을 들여다보신 후에,
뭔가 말 못 하는 억압된 것을 느끼신데요.
모든 분들이 다 예술가이신 거 같아요.
내면에 있는 감정이 그림에 이입되고, 그 스토리가 나오거든요.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듣는 게 그림을 그리는 저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그림을 그릴 때,
뭔가 활활 타오르는 불같은 느낌을 그리고 싶었어요.
황망하게 어둡지도 않고,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현실에서
내 발목을 잡는 무엇인가를 뒤로하고
그냥 활활 타오르는 감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거친 아이보리 블랙과 흰색을 섞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현실을 그레이컬러로 표현하고,
여러 장애물과 같은 느낌의 컬러를 조합했어요.
그렇게 이 그림은 거기에서 멈추었습니다.
완성된 척하는 미완성의 작품이었죠.
그리고 오늘, 저는 카메라 각도를 잡고 그림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흰색꽃을 그려 넣으려고 합니다.
처음에 의도한 꽃은 흰색으로 실루엣을 가진 꽃이에요.
그 꽃을 보는 사람들은 이게 뭘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꽃을 그리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저 흰색으로 칠해진 오브제를 볼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어요.
현실을 부정하지만, 현실에 어쩔 수 없이 투영시켜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꽃을 그리게 되었죠.
자신이 속한 현실이 싫지만,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자신의 모습,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한 송이 꽃이 되고자 하는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이 미완성으로 마무리된 이 그림에 영감을 준 것은 제 남자친구예요.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중요한 현실보다
내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신세계에 더 큰 관심이 있는 순수한 40대 중년의 남성이죠.
순수한 그는 완벽주의자입니다.
그러니 더 살기 힘들어요.
그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완벽해야 하거든요.
조금 내려 놓으세요.
저는 늘 말하죠.
완벽하지 않아도,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은 건
앞으로도 우리는
완벽하게, 혹은
완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요.
아니 완벽할 수가 없어요.
지금은 완벽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완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아무생각 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너무 오랫만에 그림과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많이 기다려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댓글로 소통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