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스토너를 읽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여러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앤드루포터의 소설집이다.
그의 글은 처음 읽어보는데 역시 이 책을 몇 년 전부터 많은 사람에게 추천받았던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롤러코스터를 타고 높은 곳에서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듯 황당하게 나를 몰아치는 사고나 사건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
살다 보니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명을 잃게 되는 한 꼬마의 이야기에 대한 단편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너무나 평온한 듯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사고는 일어난다.
가정을 등한시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동료와 사랑에 빠진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아들,
사춘기 시절의 너무나 폭력적인 가족의 행동을 비밀로 간직한 기억, 자식이 없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겪는 경험들, 이기적인 아버지의 병을 겪으며 우연히 목격한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의 동성애 사랑....
다 겪을 수도 없고 겪어서도 안 되는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인생은 어쩌면 기쁨도 있지만 상처들로 점철된 기억들의 집합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 살면서 무슨 일이든 일어나지만 모두가 다른 경험을 한다. 그래서 겪지 않은 일에 대하여는 그만큼 공감할 수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하여는 아마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할 것이다.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한편 한편 섬세하게 그린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피어나는 내 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었다.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을 겪게 되는데 어떤 이는 그 일로 인하여 인생에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갑작스러운 사랑을 겪으며 마음속 갈등을 외면하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품고 살아간다. 성장기에 폭력을 당한 누군가는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또 누군가는 밝힐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긴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타인에게 보여 주고 싶은 모습과 감추고 싶은 모습이 공존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 소설을 보며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조차 비밀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며 양파껍질을 까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비밀이 밝혀지고 게다가 밝혀지는 비밀의 수준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고 거짓말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그 영화를 보며 헛웃음을 웃은 적이 있다. 그런 이중성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모두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인간은 실수도, 고통도, 아픔도 모두 감내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이 들어있는 문학작품이라고 인생에 대하여 말하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성작가가 이렇게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무엇보다 단편 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란 작품이 개인적으로 아련하게 다가왔다.
주인공 헤더는 30살이나 많은 노교수의 물리 과목 시험에서 모두들 백지를 내고 나가는데 혼자 답안지를 작성해서 제출한다. 이 일을 계기로 주인공 헤더는 노교수의 집에 초대를 받고 그와 개인적 친밀 관계를 가지게 된다. 의사이고 젊고 미래를 약속한 멋진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그에게는 밝히지 못하고 노교수를 만나게 된다. 물론 육체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서로 대화가 통하는 정신적인 사랑을 느꼈던 것일까? 스스로 노교수의 집에 찾아가 옷을 벗고 누워서 노교수를 기다리지만 재회하지 못하고 그렇게 아련하게 끝나는 이야기.... 앤드루포터의 소설은 구체적이지 않아서 독자로 하여금 여백을 준다.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는 묘한 매력과 아련함을 준다.
그런 미련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라면 남자친구와 결혼하지는 않았을 텐데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적어도 결혼을 선택할 때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결혼을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나만 그런가?
스토너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 스토너가 정상적이지 않은 부인과 불행한 결혼생활 중 만난 이상형의 여강사와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빛과 물질에 대한 이론이 아련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스토너는 여강사와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실현한다. 불륜에 빠진 것이다. 그것도 교수가....
교수가 불륜에 빠진다고 문학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사랑을 실현하는 부분이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고 교수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스토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지 않고 교수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가정을 선택하는 스토리였다면 훨씬 아련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고 스토너라는 작품을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좋아하는 독자가 많은 소설임에도 나는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부분 때문에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임).
하지만.... 걸작으로 인정받는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도 불륜을 이야기했고 안나카레니나도 불륜을 이야기했는데 불륜을 이야기하면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논리이다.
문학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다양한 인물을 표현하는 것인데... 그러면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실수하고 본능에 충실한 것도 인간인데....
소설 속에는 반드시 바람직한 인간만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스스로의 모순을 발견한 순간이다.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문학작품에서도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되었는가??
아마 불륜에 대한 혐오가 나에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몇 년 전 민사사건 소장을 검토하다가 높은 비율로 접수되는 불륜과 관련한 손해배상 사건들을 보면서 아마 원고인 피해 배우자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나 보다.
왜 이렇게 상간자소송이 많은지 ,,, 이혼을 전제하지 않은 상간자 소송도 이렇게 많은데 이혼을 전제로 하는 소송은 또 얼마나 많을지...
이성적으로 절제하지 못하면서 왜 결혼을 하는 것인가?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므로 교통사고처럼 사랑이란 감정은 불시에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이성이 있기에 다들 본능을 실현하지 않고 참고 사는 것이며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음에도 차마 아이들을 생각해서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아서 용서하고 함께 사는 부부들도 많이 있는 현실을 본다. 하지만 용서했다고 하더라도 신뢰가 무너진 부부관계가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피해 배우자에게는 지옥 같은 현실일 수 있다. 배우자의 바람은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임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낀다.
누군가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누군가는 한없이 배우자를 원망하며 불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상처가 아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에게 문학을 읽으면서까지 내가 판단하는 권한을 지닌 판사나 당사자 일방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은 이런 직업병이 아닌가 싶다. 20년 넘게 법과 관련한 일을 해오면서 부당한 사건, 누군가에게 상처나 아픔을 주는 일등 불합리한 주장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정의감이 생겨버린 것이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이렇게 딱딱한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온 나에게 과연 조금이라도 창작의 씨앗이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너무 써보고 싶은데... 써보기도 전에 한계에 부딪치는 것이 아닐까?
문학을 대하고 쓰는 사람일 때는 이런 직업으로 인해 생긴 의식들이 방해가 된다.
좀 더 열린 사고이고 싶고 자유롭고 싶은 사람인데도.... 결국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인 것이다.
나는 결코 내가 해 온 일과 공부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인 것이다.
나의 한계인가.... 카라바조에 대한 미술사강의를 들으며 그의 천채성을 보며 감탄하다가 결론적으로 그가 결국에는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예술가는 도덕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의견은 다양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독 예술가에게도 도덕성이 엄격하게 요구된다.
예술가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자유로운 사고가 아님에도.... 적어도 중죄를 저지른 사람의 작품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마음이다.
예술작품을 보면서도 작가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나를 보며 느낀다.
나의 정체성은 법과 공존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마음에 썩 드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겠나... 이런 나의 모습도 괜찮다며 스스로 위로해 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 알게 해주는 문학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