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돌보는 시간]
단지 하루 쉬는 날이라고 좋아했던 30대와는 다르게
40대의 건강검진은 그 전날 저녁부터 비장하다.
하루 전 간단하게 치킨 2조각 양배추샐러드로 저녁을 먹고
12시간 공복을 유지한 채 아침 일찍 검진센터를 찾았다.
초음파를 제외하고는 모든 검진이 일사천리로 끝났다.
작년부터 혈압이 높게 나와서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에
바쁜 의사선생님을 붙잡고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진다.
“제가 생활 습관이 좋거든요~
술, 담배 안 하고 일찍 자고 많이 자고
맵고 짠 것 안 먹고 야식 안 먹고 많이 걷고요~ 근데 왜 그럴까요?”
한껏 억울한 표정과 말투로 토로하니 “가족력이 있으신가요?” 묻는다.
“네~” 뭐 들어보나마나 답은 정해져 있다.
아무리 관리하고 노력해도 가족력이란 건 무섭다.
내 뱃속에서 나온 우리 아이들을 보면 신기하다.
결국 저 몸이 내 안에서 나왔으니 원래는 나와 한 몸이었던 것 아닌가...
그러니 가족력이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노력해도 소용없어..라는 결과지를 보면 꽤 씁쓸한 마음이 든다.
살다 보니 유전이 아닌 것이 없다.
우울증도 유전이라던데 하물며 몸에서 오는 질병은 말할 것도 없다.
애초부터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니 내려놓자~하면서도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심하지는 않으니 이대로 유지하기만 하면 되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직은 걱정할 것 없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그로부터 며칠 뒤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1년에 한 번씩 하는 심리상담이 있었다.
손가락에 골무 같은 것을 끼고 자율신경계 검사부터 스트레스와 혈관 나이까지 측정하는데
할 말이 많을 법한 결과와는 다르게
나의 바른 생활 습관을 들은 선생님은 차분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분명 무언가 있을거다 생각하면서..아마도..
“아침은 뭐 드세요?”
“샐러드, 삶은 계란, 고구마, 과일이요~”
“물은 많이 드시죠?“ ”1리터 이상은 마시는 것 같아요~"
“마그네슘 드시나요?” “당연하죠~오메가3도요~”
“운동은요?” “매일 걷고 뛰고 가끔 등산도 가요~”
“잠은 얼마나 주무세요?” “9시간은 자요~”
진심 이 대목에서 선생님은 대단하다는 듯 빵 터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대화가 무색하게
혈관 나이가 내 나이보다 많게 나왔고
선생님은 할 말을 잊으신 듯했다.
나는 이미 건강검진에서 뒤통수를 세게 맞은 터라
“나이죠 뭐~ 유전도 있겠고~”라며 덤덤한 표정으로 오히려 선생님을 안심(?)시켰다.
40분간의 상담이 끝나고 선생님은 “안 드실 것 같은데 견과류와 단백질바는 드세요~”하며
곱게 포장한 간식을 선물로 주셨다.
괜찮아요 선생님...선생님은 최선을 다하셨어요.
이렇게 해도 안 되는 건 안되더라구요.
혈관 나이의 원인이 결국은 무가당 요플레가 아니겠냐는 다소 아리송한 결론을 내리고
다음에는 올리브유를 뿌려 먹겠다는 애매한 답변을 끝으로
우리의 상담은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건강검진의 결과는요???
2주 전에 받은 마흔 둘, 건강검진의 결과는 처참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훑어주는 직장검진 덕분에
결과서는 거의 책 한 권이 되어서 도착했는데
정상이 대부분이었던 지난날과 다르게
첫 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경과 관찰이 후두둑 쏟아졌다.
하나씩 페이지를 넘겨 가며 제발 큰 질병만 아니기를 바라면서 꼼꼼하게 정독해갔지만
생활습관이 바른 것과는 별개로 내 몸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었고
그 증거로 안 보이던 각종 결절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우선 경과 관찰은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작년부터 빨간불이 들어왔던 유방쪽은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꽤 유명한 병원에 유명한 의사쌤의 예약이 바로 잡혀서
그나마 한시름 놓을 수가 있었다.
음.....잠깐 고민했다.
이놈의 몸뚱아리...그냥 삐뚤어질까 하고..
그러나 난 다시 한번 마음을 움켜쥐었다.
분명 나의 바른 습관 덕분에 이 정도에서 끝난것이라 확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