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시간]
밤 10시가 다 된 시간, 아들이 그림노트를 사러 가겠다고 한다.
"지금 문 연 곳이 없을 텐데..."
"요 앞에 문방구 있잖아"
그러고는
"문 닫았을까? 내일갈까.." 잠시 고민하더니
"그냥 나가자. 생각하지 말고.." 하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딸아이가 이미지가 바뀌는
어플로 사진을 같이 찍자며 다가왔다.
나는 한껏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V자를 그리고
”뀨~~“소리까지 내가며 열심히 예쁜 척을 했다.
아들이 "엄마~ 안 힘들어?" 한마디 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지금 중학생 앞에서 무슨 짓을..
난 애써 태연한 척하며
"엄만 괜찮은데 왜~ 네가 힘드니?" 하고 물으니
장난스럽게 웃으며 "응~" 하고 대답한다.
얼마 전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책은
라는 부제로 단번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중학생 아들을 둔 중학교 선생님이 쓴 책이라 하니 표지에서부터 공감과 신뢰가 팍팍 느껴졌다.
[겉모습은 성인과 유사하지만 뇌구조와 마음씀씀이는 영락없는 어린아이 그 자체다.
그래서 이들을 다섯 살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른스러운 말과 생각으로 가끔 나를 놀라게 하는 아들.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가도,
지금 내 앞에서 수건을 양옆으로 휘두르며
"아뵤~" 소리를 내며 까불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과연 그 말이 정답이구나 싶다.
아침부터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표정이 굳어진다.
기분이 안 좋으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나를 보며 아들이 묻는다.
"엄마 기분 안 좋아?"
난 누가 들어도 안 좋은 목소리로 "아니야" 하고 대답하자
아들은 "아니긴~누가 봐도 기분이 안 좋은 표정인데.." 하며 뾰로퉁해진다.
"너 진짜 핸드폰 너무 본다고 생각 안 하니?"
난 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 날이 선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 나의 모습은 평소와 많이 다른 모습이다.
나는 아침의 기분이 그날 하루를 좌우한다고 믿는 사람이라
하루를 여는 아침만큼은 늘 밝은 얼굴과 목소리로 아이들을 배웅해 왔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 불편하지만
"다녀올게요~" 하며 인사를 하는 아들과
"응~" 하며 얼굴도 보지 않고 대답하는 엄마 사이에 어색함이 감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친구들이 가득하다.
평소와 같이 "엄마~왔어~" 하고 인사하니 "네~" 한다.
아침 일은 잊은 건지 잊은 척하는 건지 둘 다 따로 꺼내지는 않는다.
저녁 시간,
제목부터 강렬한 책 한 권을 아들 앞에 슬쩍 들어 보인다.
"엄마~요새 이 책 봐~ 우리 아들을 좀 더 이해해 보려고...
책 제목에 빗대어
장난치듯 얘기하니 씩~하고 웃는다.
말로는 쉽게 닿지 않았던 마음이
책 한 권을 사이에 두니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사춘기 아들과의 일상에서
독서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아이들 문제에 있어 비교적 관대한 편인 내가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시간 약속이다.
아들은 약속한 7시 반을 훌쩍 넘겨 8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왔고
들어오자마자 핸드폰을 보느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성후야~뭐 하니?"로 시작한 나의 말은 어느새 잔소리가 되었고 결국 큰소리로 번졌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반찬도 없이 밥만 퍼먹던 아들은 다 먹기가 무섭게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난 나는 그릇을 일부러 소리 나게 치우며 요란하게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평소와 같이 집 앞 공원을 산책하러 나왔다.
마음을 비우려고 나왔는데 걷다 보니 아들 얼굴이 더욱 또렷해진다.
자식과의 갈등은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는데
오늘 또 감정 조절을 못했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집에 돌아와 회사 동료에게 선물 받은 책을 꺼내 들었다.
"아이에게 사과하는 건 지는 게 아니에요"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그 한 문장이 눈에 훅 들어왔다.
그래, 생각은 그만하고 마음을 표현하자.
"아까는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꽉 쥐고 있던 마음을 꺼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아무 말 없이 웃을 수도 있고, 괜히 딴청을 피울 수도 있고
아들 성격을 생각하면 이미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반응이건 오늘 나는 사과를 미루지 않았고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한 뼘 더 성장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