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돌보는 시간]
그동안 3년 가까이 일기를 써 오면서 카카오톡에 일기장을 공개해 왔다.
혹시나 하루 이틀 쓰고 흐지부지될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다이어트 공개, 금연 공개처럼 나의 기록을 공개함으로써
꾸준히 이어가고자 한 나와의 약속이었다.
처음에는 오직 나의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쓴 기록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기를 보고 힘을 얻었다는 동료도 있었고
왜 그 아까운 기록을 책으로 만들지 않느냐고 타박하는 친구도 있었고
글도 글이지만 글씨를 정말 잘 쓴다는 다수의 평이 있었다.
살면서 글씨 잘 쓴다는 소리는 제법 많이 들어왔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 내가 쓴 글씨에 내가 감탄해서 혼자 뿌듯해하는 날도 많았다.
얼마 전 아들이 슬며시 다가와
내 일기장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엄마가 글씨를 이렇게 쓰나~"
"갑자기 왜~ 엄마 글씨 잘 쓰는 것 같아?"
"응~ 잘 써.. 그래서 어떻게 쓰나 보려고..."
장난 삼아 한마디 던졌는데 예상외의 진지한 답변에
우리는 함께 일기장을 바라보며 본격적으로 글씨 분석에 들어갔다.
"이응을 크게 쓰고 아~ 자음을 크게 쓰네..."
큼직하고 시원시원한 글씨체라며 특히나 어르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중학생 아들한테까지 잘 쓴다는 소리를 들으니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이거 한 번 해 보자!!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해 봐야겠다고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던 차에
때마침 집 앞 도서관에서 캘리그래피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나에게 내가 모르는 숨겨진 재능이 있을지도 몰라...
나의 인생 제2막은 붓글씨로 화려하게 여는 거야...
붓펜으로 멋지게 글씨를 써 내려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성공적인 일타 강사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설렘을 가득 안고 첫 수업을 들은 그날,
나는 깨달아 버렸다.
수업을 시작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아~이건 전혀 다른 영역이구나...
캘리그래피는 내 기준으로 말하자면 글씨라기보다 차라리 그림에 가까운 세계였다.
글씨를 그림처럼 꾸며 쓰는 영역...
글씨를 "잘 쓰는 것"이 아닌 "잘 그리는 것"의 영역...
한자도 영어도 반듯반듯하게만 써 오던 나는 이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열등생이었다.
글씨는 잘 쓰지만 그림은 못 그리는 내가 "행복"이란 단어를 그리고 있으니...
수업 10분 만에 알게 된 나의 한계...
재능도 없고... 재미도 없고...
재능과 재미가 없으니 하기도 싫고...
잠만 잔다던 아들의 학교 생활을 잠깐이지만 십분 공감하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상상 속 화려한 모습의 나는 단 10분 만에 조용히 사라졌다.
솔직히 말하면 난 캘리그래피 정도는 아주 무난하게 할 줄 알았다.
심지어 누구보다 잘할 줄 알았다.
상상 속의 나는 이미 전시회까지 열고 있는데
현실의 나는 '행복'이란 한 단어를 1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깨달았다.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어떠한 삶도,
어떠한 인생도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잘할 줄 알았던 일은 생각보다 낯설 수 있고
자신이 없던 일은 의외로 내 곁에 오래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예를 들면 러닝 같은 것....)
그래서 이제는 결과보다는 시도에 더 의미를 두기로 했다.
누구보다 잘하리라 생각했던 그것이
실은 글씨가 아닌 그림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해 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 돈 1만 원으로 나의 한계를 알았다면
그 또한 꽤나 싸게 치른 수업료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