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된 것은 2022년 2월 즈음이었다. 책을 놓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우연찮은 기회로 다시 독서를 취미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독서를 하다 보면 읽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이걸 쓰는 건 얼마나 더 힘들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좋아하는 작가는 딱히 없지만 고마운 사람을 뽑으라면 단연 베르나르 베르베르다. 나에게 독서라는 취미를 가져다준 사람이니까. '개미'를 읽던 동안에는 유튜브에서 개미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고 '꿀벌의 예언'을 읽던 동안에는 유튜브에서 양봉, 말벌 퇴치영상을 흥미롭게 보곤 했다. 이 작가는 '개미'라는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전 조사와 공부를 했을까. 소설책에서 나오는 고증은 다큐멘터리와 차이점이 크게 없었다. 치밀하게 묘사하여 독자가 상상력을 펼치게 만들었고 상상했던 장면이 다큐멘터리에서 얼추 비슷한 그림으로 나올 때에는 작가에 대한 경외가 느껴졌다.
그런 연유로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자서전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라는 책을 집었다. 작가가 개미 초판을 내기 위해 몇 번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는지, 출판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노력했는지가 여실히 나와있었다. 오롯이 글을 쓰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여 이루어낸 결과물을 보노라면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몰입할 능력도 자신감도 없다. 그렇다면 짧은 글이라도 써보면 좋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당장 블로그를 만들고자 했다. 비록 비루한 낙서장이 될지라도 시간이 지난 뒤 꺼내어 보면서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더라도 한 페이지라도 써보리라.
어떤 플랫폼에서 블로그를 해야 좋을지 알아보던 와중 브런치 스토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호기롭게 글을 쓰고자 브런치 스토리에 가입하고 서랍을 열었다. 커서는 계속 깜빡깜빡 움직이지만 아직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조차 캄캄했다. 마음은 호기로웠으나 한 발짝 뗄 힘도 없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글을 하나 완성했다. 주제는 퇴사하고 떠났던 배낭여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곧 잘 글짓기 상도 받았던 터라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내가 썼던 글을 읽어보니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한테 나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일방적으로 하는 글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침을 팍팍 튀겨가며 말이다.
물론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때는 인정하지 못했다. 내 글이 창피했고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건 불가능했다.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서 그럴 것이다라는 것으로 치부하고 하나의 글을 더 썼다. 하지만 더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신경을 쓰면 쓸수록 더 글은 기괴해져만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작가신청을 도전도 하지 못하고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정확히 1년이 더 지나고 2023년 2월, 나는 결혼을 했고 책을 읽는 것은 완전히 내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철학도 없고 목적도 없었지만 그저 읽었던 책이 늘어나고 서점에 갔을 때 내가 읽은 책이 있는 것이 뿌듯했다. 그러던 와중 또 책 한 권이 내 눈에 들어왔다.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이 책은 나를 위한 책 같았다.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프롤로그부터 두근거렸다. '커피가 직장인의 생명수라면 글쓰기는 직장인의 생명줄이니까' 책의 내용은 완전한 내 이야기였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이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는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았다. 소재를 찾는 방법부터 제목 짓는 법, 글을 쓸 때 주의해야 할 점을 편안하게 제시해 주었다. 그 응원을 받아 브런치스토리의 서랍을 다시 열었다.
서랍을 여니 반겨주는 건 내 부끄러운 2편의 습작이다. 하지만 차마 지우진 못했다. 오늘 그 부끄러운 습작 위에 하나를 더 얹을 예정이다. 용기를 얻기 위해 다 읽은 책을 옆에 두고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 글의 주제는 내가 푹 빠져있는 취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응원을 받은 덕일까. 작년에 쓴 글에 비해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작가신청 버튼을 누르진 못했다. 누군가 나의 글을 보는 것이 겁이 났다. 우연찮게 내 글을 본 누군가가 피식 웃을까 봐. 단지 그 이유였다. 역시나 창피함이 더 컸기 때문일까. 지금은 이미 2부작으로 재밌게 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탁구, 영업하러 왔습니다'의 습작이 되었지만은 그때는 조악한 내용으로 재밌다고 하라고 강요하는 글정도였다.
그렇게 1년이 또 지나고 이사를 하고 투룸에서 지내던 우리 부부는 방이 세 칸에다가 거실이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나는 꿈에 그리던 나만의 서재방을 얻을 수 있었고 아주 미니멀하게 꾸몄다. 하지만 내 서재에는 한동안 손님이 없었다. 책은 거금을 들여서 신중하게 고른 소파나 너른 침대에 누워 보는 것이 일상이었고 현관 바로 앞에 있는 내 서재의 문은 열리는 날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오전, 와이프와 근처의 카페에 나와 책을 읽으며 여유로움을 만끽하던 와중 옆테이블에서 심각하게 얼굴로 키패드를 치시는 여성분을 보았다. 얼마나 미간을 찌푸렸던지 눈썹은 팔자가 되었고 얼굴은 태블릿으로 들어갈 기세였다. 바람 쐬러 나가는 척하고 슬쩍 보았을 때 브런치 스토리라는 글자를 보고야 말았다.
내가 동경했던 작가의 오롯한 몰입 그 자체였다. 진짜 작가님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분을 작가님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도전해 보고자 마음이 샘솟았다. 그 몰입감을 나도 온전히 맛보고 싶었다. 그렇게 서재에 들어가 나의 부끄러운 서랍을 열어 글을 하나 꺼냈다. 이번에는 이 글들을 부끄럽다 외면하지 않고 조금 더 나은 글로 바꿔볼 요량이었다.
카페에서 집에 오는 길에 집 앞 팬시점에서 연습장을 하나 샀다. 이번에는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목적과 이야기의 순서와 맥락의 뼈대를 잡아놓고 시작하겠다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카페에서 본 작가님의 테이블에는 태블릿 말고 하나가 더 있었다. 연습장에 낙서하듯이 적어놓은 글과 동그라미, 그리고 선. 이것은 필시 글을 쓰기 전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이야기의 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 대략적인 구도를 잡고 쓰시는 것 같았다. 나도 따라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굵은 뼈대로 정리를 했고 거기다가 살을 붙여가는 식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차분히 써 내려갔다. 그 뼈대에 살을 다 붙이고 다시 읽어보았을 땐 조금은 작가신청 버튼을 누를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2년 동안 실패했던 일이 바로 될리는 없다.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나서 여전히 부끄럽고 불안하지만 차라리 떨어뜨려주십사 하며 작가신청 버튼을 눌렀다.
생각보다 결과는 빨리 나왔다. 다음 날에 바로 알람이 왔던 것 같다. 브런치 스토리에서 나를 작가님이라 불러주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나? 원래 아무나 다 시켜주는 것인가?
어찌 됐든 간에 나는 통과했고 브런치에서 나를 작가님이라 부른다. 이상하게 왼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렇게 묘한 흥분감에 휩싸인 상태로 2개 남은 습작 중 하나를 꺼냈다. 다시 이야기를 정리하고 제목을 수정하고 정리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 제목을 정하고 나니 콘셉트도 생각이 났다. 방문판매원처럼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 글을 썼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글이 점점 늘어날수록 자신감이 늘어나고 응원하는 라이킷이 하나, 둘씩 모이면서 창피함과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원래 나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기대를 하는 사람도 있지 않다. 그저 나의 과대망상이었을 뿐. 그렇게 내려놓고 나니 소재에 대한 강박도 사라졌다. 그저 나의 이야기를 하리라.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잊어버리기 전에 서랍에다가 간단히 요약한다. 글 쓰는 시간이 되면 서재에 앉아 서랍을 열어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이야기를 시작한다.
또한 나는 글쓰기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것을 얻었다. 그저 내 이야기를 할 뿐이었지 누군가가 이야기를 읽어주는 기쁨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공감을 얻는 것은커녕 두렵기만 했었다. 그저 내가 즐겁자고, 생산적인 일은 하자고 시작한 것이 누군가가 읽어주고 대답해 주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있다.
물론 이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기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읽어 주신 분들도 많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실시간 인기글에도, 에디터 픽에도 내 글이 올라가다니 작가신청 버튼을 누르기가 두려워 거의 3년을 머뭇거린 사람에게는 감개무량한 일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꾸준히 글을 쓸 것이다. 비록 괴발개발 쓰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글쓰기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을 때까지, 의도적으로 적막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