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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상한 선배

왜요는 일본 담요고 인마.

by SinkiN

대학 1학년 2학기를 시작하고 랩실에 가니 안면이 없던 사람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외형 상 복학한 선배가 틀림없는 것 같은데 인사를 드리니 똑같이 존대로 인사를 합니다. 어색해서 그러신가 보다 하고 멀찌감치 앉아 과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랩실의 지박령처럼 갈 때마다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엇을 하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보아 과제나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는 멀찌감치 앉아 인터넷 서핑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자리를 비우시는 순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무엇을 하시나 선배가 앉고 있던 자리에 가서 모니터를 슬쩍 보고야 말았습니다.


하고 계신 것은 대항해시대였습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이 아닌 대항해시대4였습니다. 이것은 예전 놀러 갔던 사촌 형이 밤을 지새우며 하는 것을 봤었더랬죠. 지금 게임을 검색해 보니 1999년에 출시된 게임이네요. 왜 이 게임을 하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으나 게임을 하시느라 밤늦게까지 랩실에 있다 가셨습니다. 그냥 특이한 선배님인가 보다 했습니다.

112.png 대항해시대 게임 인트로

다른 선배들에게 그 특이한 선배님에 대한 정보를 물었습니다. 같은 학번인 선배들만 그 선배의 정보를 알고 있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4살이 많고 학과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유쾌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았는데 모르고 두 개를 뽑고 말았습니다. 하나는 나중에 먹어야겠다 싶어 랩실로 들고 올라갔습니다. 오늘도 그 선배는 골똘한 표정을 지으며 대항해시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용기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쭈뼛쭈뼛 가서 음료수를 하나 건넸습니다. 선배는 한사코 거절하다가 고맙다면서 가져갔습니다.


그날이 있고 다시 랩실에 갔을 때 선배는 한참을 모니터를 보다가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드렸던 것과 똑같은 음료수 하나를 건넵니다. 전에 잘 마셨다면서 책상에 놓아주는데 젠틀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계산이 확실한 사람이라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시간은 흘러 2학기 말이 되었습니다. 담당 교수님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신설된 학술동호회를 가입했습니다. 군대도 가기 싫은 와중에 한 학기 더 하면서 이 방탕한 생활을 더 즐기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지도교수님은 철없는 1학년을, 아니 2학년을 놓아줄 생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지금 제가 밥이라도 벌어먹고 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학술동호회에는 그 특이한 선배도 있었습니다. 2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 때 동고동락하면서 굉장히 가까워졌습니다.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이었고 생각보다 계산 없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흠이 있다면 몇 번 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거리를 둔다고 할까요. 인간관계에 대한 선이 확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고 시간이 흘러 한여름이 되었을 때 저는 입대를 했습니다. 휴가를 나오면 선배들에게 연락을 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연락하여 약속을 잡기 바빴습니다. 황금 같은 휴가에 선배들을 만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상병 말쯤 되었을까요. 페이스북에 휴가일정을 올려놓은 것을 보셨는지 연락이 왔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반년동안 학교에서 동고동락했고 입대하기 전 잘 다녀오라고 조언도 많이 해주고 격려도 많이 받았는데 이 배은망덕한 후배에게 손수 다시 연락을 했습니다. 집 주소를 물어보고는 한참 답장이 없다가 전화가 왔습니다.


"나와. 집 앞이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집 밖을 나와보니 차가 한 대 서있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차를 타고 한적한 호숫가로 갔습니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고 앉아서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러고는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습니다.


전역했을 때의 고민을 한참 하던 시기였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의 대학 전공이 과연 쓸모가 있을지, 생각보다 군인이 적성에 맞는데 부사관을 할지 여러 고민을 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학술동호회 인원들 근황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휴가가 끝이 나고 자대에 복귀를 하고 병장이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앞으로 택배가 한 상자 왔습니다. 이제 과자나 생필품들을 받을 짬밥도 아니거니와 발신자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선배가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편지 보내는 주소를 알음알음 알아내 택배를 보냈습니다. 그 안에는 전공책과 안드로이드 관련 바이블이 몇 권 있었습니다.


사실 쓸모는 없습니다. 실습하지 않는 바이블은 그냥 불쏘시개로 써도 무방합니다. 사실 2010년도에 입대를 해 스마트폰 과도기에 저는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문자 대신 카카오톡을 쓰고 있었고 동영상이나 인터넷 웹서핑을 무제한으로 해도 천정부지의 요금이 부과되지 않는 사실에 놀라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공책 사이에 끼어있던 안드로이드 책이 흥미로웠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다니. 교수님만을 위한 exe파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쓸모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이 사용하게끔 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사지방을 가지 않고 침상에 앉아 바이블을 뒤적거리는 것이 일과가 끝나고 매일 저녁의 루틴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제 말년의 고민은 없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전역하고 바로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학기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었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방탕한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군대에서 했던 다짐과 각오는 온데간데 없어져버렸고 그저 노는데만 정신이 팔려버렸습니다.


개강 첫 주가 지나고 주말이었습니다. 학기가 시작되고 찬란한 복학생의 대학생활에 들떠있었습니다. 이미 졸업을 한 선배는 다시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전역하고는 종종 같이 술도 마시고 했지만 이미 졸업을 했기 때문에 학교에 찾아올지는 몰랐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근로장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학교 전산실에 근로장학생 자리가 있는데 거기에 이미 제 이름으로 신청했다고 합니다. 곧 전화가 올 건데 엄한 곳에 정신팔지 말고 거기 가서 이것저것 많이 보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습니다.


이외에도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나머지 대학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엉뚱한 길로 빠질 것 같을 때마다 귀신같이 찾아와서 별말 없이 다시 잡아주고 떠났습니다. 첫 회사에서 힘들어할 때에도 도망칠 용기를 줬습니다.


철없던 시절, 선배들한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왜요?"였습니다. 그럴 때면 다른 선배는 욕바가지를 쏟아부었지만 항상 그 선배는 "왜요는 일본 담요고 인마."라는 답이 날아왔습니다. 항상 하고 듣는 말이지만, 이제는 재밌지도 않지만 같이 낄낄대고 있습니다. 물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뭔가 인간관계에 대해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한 말들을 많이 하며 기억에 남습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친절하거든, 항상 의심해라."

"이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내가 누구를 챙기리."

"내가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궁금해야 하나?"


이런 말들을 곱씹어보고 있자면 그때 건네어준 음료수 한 캔이 시발점이 되었는지, 학술동호회에서의 인연으로부터 인지 이 사람과 어떻게 친해졌는지부터가 의문이기도 합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것 같으면서도 지극히 따뜻한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어제 퇴근길에 선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이야~ 해피 뉴어이다!"라는 말이 블루투스로 연결된 자동차의 스피커로 쩌렁쩌렁 울립니다. 저의 결혼식 이후로는 보지 못했으니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본가에 내려갔을 때 종종 보고는 했는데 이제는 본가에 내려가더라도 아내와 같이 있다 보니 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은인입니다. 이렇게 연락이 끊기지 않는 것으로도 좋습니다. 6개월의 인연이 10년이 넘어서도 유지되고 있다는 게 감사합니다. 왜 그렇게 잘해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낯간지러워서 물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저에게는 이상한 선배가 한 명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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