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만 되었어도 로미오네는 해피엔딩인데...
불 타는 사랑을 우리는 종종 꿈꾸며 산다.
로미오와 줄리엣, 마지막 콘서트, 남자의 향기
풀잎처럼 눕다 등등 여러 영화와 소설을 보며
저마다 다른 사랑을 상상했다.
집안 반대를 이겨내려한 로미오 커플은 끝끝내
카톡이 안되어 안타깝게 젊은 날 생을 마쳤고,
스텔라는 띠동갑도 더 되는 리차드에 푹 빠져
사랑을 하다 피아노 선율과 함께 눈을 감았다.
소년 혁수가 꼬마 은혜를 만나 설레임과 절제의
갈등에도 끝끝내 그녀를 지키고자 했던 순정도,
청년 도협이 순수하기만 한 여대생 은지를 만나
수많은 사건을 겪으며 사랑을 나눈 그 이야기도
결국 사랑의 끝에는 이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불타는 사랑은 주로 새디엔딩이였고
함께 또는 누가 돌아올 수 없는 그곳으로 떠나는
스토리였다.
그래서 덩그러니 남은 한 사람이 끝내 보낸 이를
회상하는 씬에서 대게 페이드 아웃 되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덥거나 스크린을 떠날 때마다
우리는 먹먹해진 자신을 만나곤 했었다.
그 안타까운 이별들은 엄밀히 사별 스토리였다. 작별하지 않은, 아니 헤어질 누군가조차도 없는
우리들은 불 타는 청춘을 웃으며 보아도
그 애절한 사랑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상상 속에 저마다의 사랑을 키워왔다.
그래서 독서다 영화다 연극이다 드라마다 해서
다양한 연인을 본 그들이 오히려 꿈을 더 꾸었다.
사랑을 하며 그 환상으로 정작 상대의 포근함을
느낄 수 없다면 치명적인 불행이다.
갈대 밭에 불꽃 튀어 처음엔 찬찬히 번지다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 넘실거리는 불꽃의 향연을 넋을 잃고 보다
불씨 하나 남지 않고 실 연기마저 사라 졌을 때
비로소 강렬한 불놀이 끝에 마주하는 아쉬움과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이별 후에야 그것이 불타는 사랑이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취한 이가 취했다 말하진 않았다.
슬픈 건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랑인 줄 모르는 거고
더 슬픈 것은 '불 사'만 꿈꿔 서로 지극히 자연스런
사랑을 나누면서도 목 말라하는 것이다.
그 환상을 서로에게 채워주는 게 사랑이 아니라
그런 애잔한 영화를 함께 보는 게 사랑이였다.
언젠가부터 보졸레 누보가 유행하고, 인스턴트
식품이 생활 깊숙히 들어오고, 적당히 익은 김치
보다 종종 겉저리가 입에 맞고, 나이트의 원나잇
만남들이 생겨났다. 애인은 있는 듯 한데 언제나
외로와 보이는 썸타족도 급증했다.
사랑도 숙성이 되려면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그 가벼움과 쾌속으로 인연을 대하는 썸타족은
'불 사'를 꿈꾸며 산다. 짝퉁을 들고 걷는 그들이
진짜 명품을 갈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랑이 수동태이고 애써 이기심 가득한 그들이
더 꿈만 찾는다.
갈대밭이 수십년 탈 수 없듯이 열정적인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다. 나지막한 산길 오르다 가파른
고갯길을 손 잡고 같이 넘어 산자락 바위 위에서
함께 야호를 외치는 것, 또 고개를 지나 정상에서
이마에 잔뜩 솟은 그녀 땀 방울을 벅찬 가슴으로
정성껏 딱아주는 것. 그것이 바로 '불 사' 다.
늘 한껏 타오를 수, 항상 정상에만 있을 수 없듯이
사랑은 흐르는 강물이였다. 때론 격렬하고 자주
잔잔하게 넘실거리는,
불타는 사랑을 우리는 어쩌다 꿈꾸며 살았다.
어떤 이들은 항상 그런 사랑을 했노라 말했다.
그들은 사랑은 줄 때 비로소 행복하다 생각했고
교감과 배려에 시간을 담아 숙성시키는 과정이
진실된 사랑에 필수라 믿었다.
그들은 애써 꿈꾸지 않았고 포근한 사랑을 찾아
기꺼이 먼저 손을 따스하게 내밀었다.
그들은 실연의 아픔도 불꽃의 환희가 남겨 놓은
실 연기마저 사라진 갈대밭의 향기라 믿었다.
그들은 산뜻한 보졸레 누보 보다는 은은하게
다가오는 화이트 와인을 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불 사'만 꿈꾸는 이들과는 달리
짙은 어둠이 내려도 먼 길을 웃으며 달려 갔고
아쉬움 못내 남아도 한껏 타올랐던 그 불꽂을
또렷이 기억해 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불타는 사랑만을 했다.
삶에 몇번 없는 고귀한 선물이 사랑이란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