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빗속의 공중곡예사
아버지는 참 별난 사람이다. 스크루지나 자린고비쯤은 어퍼컷을 날릴 정도로 돈에 집착한다. 백 원이라도 손해를 본다 싶으면 아마 막무가내로 덤벼들 거다. 그럼 혹시 고등어를 천장에 매달아놓고 밥을 먹느냐고?
별난 게 그건 또 아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먹는 것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먹고 싶은 건 무조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랄까. 식성 또한 남달라서 고급스러운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 아버지에게 고기란 오로지 돼지고기, 그중에서도 비계 부위만을 의미한다. 참고로 라면도 자기 손가락처럼 퉁퉁 불려서만 먹는데 가끔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저게 맛있나?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화가 나면 창문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터프한 상 남자면서도 종종 마스크 팩을 하질 않나, 그렇게 피부 관리는 하면서도 배는 볼록하게 나왔지 않나. 잘 상상이 안 간다면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드워프의 체형을 생각하면 딱 맞겠다. 아무튼 유별난 걸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한마디로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그러나 동생이나 나나 호기심 유발자인 아버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도, 그 어떤 관심도, 흔한 추억거리도 없다. 온통 혼나고 매 맞은 기억뿐인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체벌도구를 꼽자면 공사현장에서 자재로 사용하는 고강도 철근이다.(심지어 초등학생 시절의 일이다) 물론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체벌로 훈육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덕분에 썬은 2년 일찍 수혜를 받은 셈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러면서부터 세 남자 사이가(정확히는 나와 썬 vs 아버지) 걷잡을 수 없이 어색해져 버렸다. 엄마라도 없는 날이면 온 집안이 숨 막힐 정도라 반드시 등에 산소통을 메고 생활해야만 한다.
서론이 길었는데 아무튼 이런 부자지간인 관계로 한집에서 남자 셋이서만 생활한다는 건 나와 썬에게 있어 결코 상상하기도 싫고 상상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부터는 그 나이트메어가 현실이 돼버린 2박 3일 동안의 짧은 에피소드를 얘기해보겠다. 미리 당부하는데 옆에 산소호흡기라도 준비해두고 읽기를 바란다.
알람 벨소리가 좁은 방안을 울린다. 나는 오후 2시임을 확인하고 핸드폰 타이머를 껐다. 또 비가 오는 건지 창밖은 벌써부터 어둡다.
“일어나. 오늘은 아버지가 일찍 퇴근하는 날이야.”
나는 곤히 잠든 썬을 흔들어 깨웠다. 녀석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킨다. 참고로 아버지는 낮잠 자는 꼴을 눈뜨고 못 보는 성격이다. 망나니 같은 큰아버지처럼 게을러 보인다나 뭐라나. 하지만 웃픈 사실은 그게 여름 방학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덜 깬 눈을 하고서 바닥에 깔린 이불을 접기 시작했다. 우리 손을 거치는 이불은 예외 없이 모서리각이 정확히 90도가 된다. 나는 정리된 이불을 벽 쪽으로 밀어두었다. 이불은 덜 마른빨래처럼 꿉꿉하다.
“근데 밖이 왜 이렇게 캄캄해. 설마 또 비 오나?”
썬이 혼잣말하며 낡은 목제 미닫이창을 열어보았다. 8월임에도 장맛비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 얼마나 멜랑콜리한 나날들인가. 더군다나 이런 뜨뜻한 비는 더위를 식히는데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아니, 장마가 끝났다고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비가 와! 이러다 개학해도 장마겠어.”
녀석은 불평만 늘어놓을 기세다.
“알겠으니까 일단은 방 청소부터 하자. 아니면 우린 분명 잔소리 듣게 될 거야.”
침대는커녕 콘솔 화장대와 미니 옷장이 전부인 파우더룸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얼마 전 집중호우로 내 옥탑방은 누전, 썬의 반 지하는 침수된 까닭에 우리 형제는 불가피하게 2층 부모님 집으로 대피해있는 상태다.
“청소해도 욕먹는 건 똑같을 걸? 제대로 안 했다고 말이야.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건 다 못마땅해하잖아. 대체 언제까지 같은 집에서 지내야 하는 거야?”
썬은 쉴 새 없이 투덜거린다.
“그러게. 게다가 너는 여기에 꽤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집이 거의 침수됐잖아.”
하나도 걱정스럽지 않은 말투로 내가 녀석을 걱정했다.
“당분간은 형 방에서 같이 지내야지 뭐. 단순 누전이라니까 옥탑방은 금방 고치겠지?”
썬은 넉살 좋게 떠들며 욕실로 향했다. 습기를 머금은 우중충한 바람이 창에 설치된 방충망으로 잘게 쪼개져서 들이친다. 나는 무선청소기를 돌리면서 모터 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근데 아버지 말로는 비가 그쳐야 수리를 시작한다는데 계속 비가 와서 큰일이네.”
빨아온 걸레로 크림색 장판을 닦다 말고 썬이 거의 우는 소리를 해댄다.
“하필 이럴 때 엄마도 외갓집에 가고 없으니… 앞으로 이박 삼일을 어떻게 지내냐고.”
그렇다. 바로 그것이 우리 형제가 봉착한 난관이었다. 엄마는 항상 이맘때쯤이면 집안 행사를 이유로 외갓집에 다녀온다. 엄마 혼자서만 친정에 가는 이유는 어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므로 또 패스. 그 순간, 고방 유리가 쾅 쾅하고 굉음을 냈다.
등줄기가 오싹해진 나는 번개 같은 속도로 현관문을 연다. 아버지가 굳은 얼굴로 바깥 복도에 서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언제나 저런 표정이다.
“다녀오셨어요.”
나와 썬은 주눅 든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버지는 오늘도 푹 젖어 있다. 장마가 이어지면서 근래에는 계속 이런 모습이다. 썬은 알아서 욕실 문을 활짝 열었다. 아버지는 까치발로 욕실에 직행한 다음 땀과 빗물에 절여진 근무복을 벗어던진다.
나는 그것들을 잽싸게 주워서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로 향했다. 짭조름한 물기가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아!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기 전에 귀중품이 섞여있지는 않은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다행히도 나는 망사 베스트 안에서 아버지의 핸드폰을 구출해냈다.
내가 부엌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썬이 가스레인지 물을 올린 뒤였다. 싱크대에 뜯어진 라면봉지를 보아하니 아버지의 심부름이 분명하다. 냄비에 담긴 물에서 부글거리던 기포가 하나둘씩 터지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 열릴지 모르는 지옥문, 아니 욕실 문을 주시하며 우드 슬랩 식탁에 걸터앉았다.
“형. 우리 구립도서관에라도 갈래? 거기는 공짜잖아.”
녀석이 입을 가리고 말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턱짓으로 가스레인지를 가리켰다. 냄비 뚜껑이 요란하게 들썩이고 있다. 썬이 수프와 면을 투입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속옷을 챙겨 와 욕실 문 앞에 놓아두었다. 실로 완벽한 분업체계의 가내수공업이지 않은가. 잠시 후에 열린 문틈으로 아버지의 거친 손이 속옷을 날름 채간다. 썬이 퉁퉁 불은 라면을 식탁에 올리고 큰소리로 보고했다.
“라면 다 됐습니다.”
아버지는 욕실을 나와 마저 옷을 챙겨 입고 식탁에 앉았다. 감색 반바지에 흰색 면 메리야스 그리고 컬러풀한 하와이안 반팔 셔츠를 걸쳤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패션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소주 가져와라.”
썬은 즉시 냉장고를 열어 절반쯤 차 있는 초록색병을 꺼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도 붙박이장에서 소주잔을 들고 온다.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아버지가 소주병의 뚜껑을 열자마자 휘발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학인데 둘 다 공부는 하는 거니?”
아버지는 그렇게 묻고 소주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식탁으로 떨궜다. 식어가는 라면 국물에 허연 기름이 둥둥 떠 있었다. 아버지가 파우더 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 저녁에는 둘 다 뭐하니?”
그러자 썬이 식탁 아래로 내 발을 꾹 지르밟는다.
“도서관 가요. 오늘도 갈 거고요.”
내가 대표로 뻔한 핑계를 댔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아버지는 고무줄 같은 면발만 후루룩 후루룩 흡입하더니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철컥,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우리는 싱크대로 가서 빈 그릇을 설거지하고 도망치듯 집을 탈출했다.
굵은 빗방울이 여전히 아스팔트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다. 나와 썬은 커다란 우산을 쓰고서 후덥지근한 거리를 걸었다. 비가 오는데도 이렇게 덥다니. 마치 미지근한 사이다를 들이켜는 기분이다. 콧잔등에 몽글몽글 맺힌 땀을 쓱 닦아내고 내가 물었다.
“스쿠터 타고 가면 안 돼?”
썬은 단호했다.
“안 돼! 다 젖잖아.”
아니, 그게 뭐 별거라고. 나는 대범한 척했다.
“괜찮아. 조금 젖으면 어때? 옷이야 말리면 그만이지.”
그러자 녀석이 지껄인다는 소리가 이렇다.
“아니. 형 말고 홀리.”
홀리는 썬의 새 보물 1호 베스파 125 V31의 애칭이다. ‘Roman Holiday’의 홀리인 셈인데 휴일 혹은 신성하다는 의미라나 뭐라나. 역시 꿈보다는 해몽이다. 아무튼 녀석은 이제 더 이상 비 오는 날에 스쿠터를 끌고 나가지 않는다. 썬의 뇌리에서 이미 오래전에 잊혔을 줌머 50, 그 아줌마 시절보다도 더한 지극정성인 거다. 그래서 요즘 들어 날씨에 민감한 녀석은 이번 장마가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일 년 중 스쿠터를 만끽할 수 있는, 춥지 않으면서도 화창한, 써니 데이(화창한 날, 동시에 썬의 날이기도 하다)는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B팩토리의 건너편 버스정류장으로 온 차창이 수증기로 도배된 초록색 마을버스가 안착했다. 커다란 타이어가 길가에 고인 물을 비스듬히 튕겨낸다. 썬이 먼저 타서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입을 열었다.
“그냥 피시방이나 노래방으로 갈 걸 그랬나?”
나는 옆자리에 앉아 우산부터 접는다.
“무리야. 피시방은 담배냄새, 노래방은 재정부족. 대략 반나절은 시간을 때워야 하는데 밥값까지 고려하면 구립도서관만 한 곳이 없다니까. 구내식당은 싸잖아.”
내 말에 녀석은, 그런가, 라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비가 두드리는 차창은 심벌즈처럼 진동한다.
구립도서관 근처의 버스정류장까지는 대략 40분이 소요됐다. 빗길이라 그런지 정체가 상당한 탓이었는데 덕분에 거의 다 말랐던 러닝화를 또다시 적셔가며 구립도서관으로 향해야만 했다.
방학기간에 날씨까지 한몫해서 실내는 청소년들로 북적일 수밖에 없었다. 스틸로 된 우산 물미로 빗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며 로비에 들어섰을 때 썬이 제안했다.
“형. 배 안 고파? 매점 가서 우동 먹는 거 어때?”
나는 연두색 점자블록 계단을 오르며 대꾸했다.
“우선 자리부터 찜해놓고.”
그러자 녀석도 손가락으로 오케이 표시를 해 보인다. 우리는 열람실로 들어가 붙어있는 두 자리를 찾아낸 뒤 낡은 독서실책상에 가방을 내려놓음으로써 찜을 마쳤다. 그때 워싱 청바지의 호주머니가 진동한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고무 재질의 복도로 뛰쳐나갔다.
“엄마! 언제 와?!”
내가 마이크 홀에 대고 소리쳤다.
“언제긴. 갈 때가 돼야 가는 거지. 그건 그렇고 방금 아빠랑 통화했는데 식사는 잘 챙겨 드렸다며.”
엄마는 조곤조곤 말했다. 언제 왔는지 썬이 내 옆에서, 엄마야? 하고 묻는다. 내가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엄마가 부탁한 거니까 억지로 한 거지 뭐.”
“그래, 아주 잘했어. 근데 라면 끓여 드렸다면서?”
나는 그렇게 묻는 엄마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거야 아버지가 끓이라고 시켰으니까…”
“그래 알아. 그렇지만 내일부터는 그렇게 말씀하셔도 꼭 밥을 해드리도록 해. 밥할 줄 알지?”
그것은 우리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미션이었다. 나는 최대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싫어. 못하면 괜히 욕만 먹을 걸? 그냥 시켜 먹으라고 해. 그 편을 더 좋아할 거야.”
“아니야. 너희가 챙겨주는 걸 더 좋아하셔. 아무튼 힘든 일 하시니까 아버지 밥 잘 챙겨드리고. 유선이랑 싸우지 말고 럭키도 보살피면서 잘 지내고 있어.”
엄마는 자기 할 말만 하다 대화를 마무리한다. 안 돼! 엄마, 아이니쥬! 아직 끊지 마!라고 애원해 봐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미 통화가 끊어진 뒤였다.
“엄마가 뭐래?”
썬이 캐물었다.
“내일부터는 밥을 하라는데?”
내가 말했다. 녀석은 복도를 둘러싼 전창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피아노 줄 같은 빗줄기로 채워진 세상은 마치 커다란 어항 속에 담겨있는 것만 같다. 나는 땀에 절어 치렁거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혹시 엄마가 그동안 우리한테 쌓였던 걸 이럴 때 푸는 게 아닐까?”
썬은 확신하는 얼굴로 동조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평소에는 잘만 배달시켜먹으면서 말이야.”
나는 썬의 목덜미에 팔을 올려 뱀처럼 휘감았다. 녀석도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깡총거린다. 역시나 위기상황일수록 협력적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지기 마련이다.
다음 날은 모처럼 하늘이 활짝 개어 있었다. 빗물로 세탁된 세상은 크레파스로 칠한 것처럼 진하고 선명하다. 나와 썬은 젖은 풀냄새와 젖은 흙냄새 그리고 젖은 돌 냄새를 맡으며 사회복지회관으로 향했다. 보통이라면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낮잠을 즐겼겠지만 오늘은 근래에 보기 드문 써니데이인 관계로 오랜만에 둘이서 드라이브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요 며칠 바닥 생활을 해서 그런가. 몸도 뻐근하고 자도 자도 피곤하네. 형은 안 그래?”
썬은 찌뿌둥한 듯 자꾸만 뒷목을 주무른다.
“엄살은, 우리가 침대 생활한 지 얼마나 됐다 그래.”
나는 그렇게 퇴짜를 놓았다. 곧 눅진한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홀리가 시야로 들어온다. 녀석은 신박한 듯 말했다.
“하긴 그러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바닥 생활했었는데 말이야.”
나는 썬을 도와 방수커버를 걷었다. 고여 있던 빗물이 여러 줄기로 갈라져 땅으로 데구루루 굴러 떨어진다.
“형. 생각해보니까 어렸을 때는 우리 집, 엄청 가난하지 않았어? 반 지하 단칸방에서 살고 그랬었잖아.”
스쿠터의 시동을 켜던 녀석이 무심결에 그런 말을 꺼냈다. 물론 기억력이 좋은 나로서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현재 썬의 반 지하방 정도 되는 공간에서 네 식구가 다 함께 먹고 자고 생활했었으니까. 나는 헬멧을 쓰고 텐덤 시트에 올라탔다.
“근데 대체 언제 이렇게 우리 집이 생긴 거지?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은 우리가 주인집이잖아.”
그 물음에는 썬도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기억이 안 나. 최소 스무 번은 넘을 걸?”
공회전 속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어 보지만 딱히 이렇다 할 힌트는 건져내지 못한다. 썬은 찜찜한 얼굴로 스로틀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과연 써니데이다웠다. 물론, 바짝 마르지 않아, 아직은 미끄러운 도로 상태가 아쉽기는 했으나 그것만 제외한다면 스쿠터를 타기에는 완벽한 날씨였다. 간만의 드라이브는 어떠한 방어기제로도 걸러지지 않는 초미세 스트레스까지 모조리 박멸시킨다. 썬과 나는 악어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스쳐가는 바람을 삼키려고 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썬의 날은 너무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곰달래로를 따라 언덕길을 오를 때부터 꾸물꾸물 모여들던 먹구름이 기어코 빗방울을 흩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목동사거리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썬이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
“형.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에이 씨! 일기예보에서 오늘은 분명 맑다고 했는데.”
좌회전 신호가 표시되자마자 코너링 한 스쿠터는 소금쟁이처럼 빗길을 신속하게 미끄러져간다.
“썬. 괜찮아?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내가 소리쳤다. 빗물이 헬멧을 타고 옆으로 흐른다. 녀석은, 그럼! 하고 패기 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하늘에 싱크홀이라도 뚫린 듯 비폭탄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연의 반격인 건지 요즘 유행하는 게릴라성 호우다. 썬도 고개를 저었다.
“형. 안 되겠다. 비 좀 피하고 가자.”
지그재그로 난 일방통행로를 질주하던 스쿠터가 속도를 줄이며 작은 길로 들어선다. 썬은 상가 건물의 접이식 어닝을 발견하고 그 아래에 스쿠터를 멈춰 세웠다.
“아버지 퇴근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머리카락에 묻은 빗방울을 털어내며 썬이 질문했다.
“지금이 5시니까 한 시간 정도 남았어. 근데 아직 쌀도 씻어놓지 않았는데 괜찮을까?”
우리는 불안한 얼굴을 맞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를 어찌나 퍼붓는지 마치 투명한 포렴을 드리운 것만 같았다. 접이식 어닝 끝자락에 맺힌 빗방울은 마치 라인스톤처럼 반짝이다 추락한다. 내가 손을 뻗어 잡아보려는데 썬이 말을 꺼냈다.
“형. 저거 달팽이 맞지?”
녀석이 가리킨 곳은 아스팔트 한복판이었다. 거무스름한 민달팽이 한 마리가 온 힘을 다해 골목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등에는 흔히 달팽이 집이라 불리는 껍질도 없어서 지켜보고 있자니 유독 애처로운 느낌이 든다.
“그러게. 근데 왜 여기 있을까? 원래 달팽이는…”
그러나 나는 말을 끝까지 맺을 수 없었다. 말줄임표로 예고 없이 날아든 앙칼진 목소리 탓이었다.
“아니! 아저씨! 실외기를 또 베란다에 놓으면 어떻게 해요?!”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맞은편 건물의 3층 베란다였는데 웬 나이 든 여자가 건물 외벽에 매달린 남자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그 여자의 양편으로 애 엄마와 똑 닮아 못 생긴 어린 남매가 공중곡예를 지켜보며 키득키득거린다. 의지하는 거라곤 얇은 안전로프 하나뿐인 그 남자는 에어리얼 로프를 선보이듯 베란다 가까이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니, 옥상에다 놓으라고 옥상!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여자는 뭐가 맘에 안 드는지 계속해서 악을 써댔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어설픈 서울말이라 그런지 더 우악스럽게 들린다. 내가 혀를 찼다.
“참 생긴 대로 논다. 저 아줌마는 추한 걸 모르나 봐. 분명히 애정결핍일 거야. 저렇게 악쓰다가 편도선이나 부어버려라.”
그러자 썬이 뜨문뜨문 입을 연다.
“형. 저 남자… 아버지야.”
“뭐라고?!”
나는 크게 놀라서 그 남자를 자세히 관찰했다. 이제 보니 땅딸만 한 뒷모습은 분명 아버지의 것이었다. 우리는 다급하게 어닝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막말로 아버지와는 고개만 돌리면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다. 아버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해명했다.
“고객님. 좀 전에 실외기를 옥상으로 올렸는데 남편 분께서 다시 여기에 설치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 아! 그건 모르겠고 어쨌든 다시 올려줘요. 베란다에 에어컨 실외기를 두면 얼마나 시끄러운데!”
여자는 고집을 부렸다.
“고객님. 소음이 걱정이시라면 차라리 베란다 보호난간에 앵글을 설치하는 게 어떠신지요?”
그 절충안에 나와 썬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우리 둘 다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앵글을 공짜죠? 참고로 나 신제품 체험단인데.”
여자가 조금 누그러진 얼굴로 물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님. 기본 설치비용 외에 추가 설치비 발생은 체험단 개별 부담입니다만…”
아버지는 쩔쩔맸다.
“뭐욧?! 아저씨. 체험이 뭔지 몰라? 됐고 당장 실외기 옥상으로 올려요!”
괴팍한 여자는 다시 노발대발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매달려있기가 버거운지 베란다 밖으로 튀어나온 철제 보호난간에 한쪽 발을 걸치고서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만… 고객님. 실외기는 에어컨과 달리 굉장히 무겁습니다. 저와 제 보조기사가 이 빗속에서 이미 네 번이나 실외기를 올리고 내렸습니다. 체력 소모도 심할뿐더러 다음 설치 스케줄도 있으니 부디 양해를…”
정중한 태도였지만 여자의 무대포 정신은 한결같았다.
“이 아저씨 봐. 그거 드는 게 뭐가 어렵다 그래요?! 계단으로 갖고 올라가면 되잖아요.”
“고객님. 그건 처음에 설명해드렸습니다만 옥상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좁아서 계단으로는 옮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 몰라요! 나는 들은 적 없고. 어쨌든 실외기 다시 안 올려놓으면 회사로 컴플레인 걸 테니 그런 줄 알아요! 내가 인터넷에 올리면 아저씨 큰일 나! 이거 왜 이래!”
여자는 막무가내로 쏘아붙이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적지근한 비는 줄기차게도 내린다. 거북이처럼 단단했던 아버지의 등이 크게 부풀다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다시 올려야겠다.”
아버지가 옥상을 향해 외쳤다. 대기하고 있던 보조기사는 고개를 내밀고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에어컨 실외기에 굵은 로프를 여러 줄로 꽁꽁 묶은 다음 하늘로 내던졌다. 보조기사가 로프를 받아 있는 힘껏 끌어올렸고 덩달아 아버지도 실외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이내 아버지의 온몸이 고장 난 세탁기처럼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낙하하는 빗방울에 작용하는 중력의 세기는 어쩌면 공중에서는 더 클지도 모른다. 푹 젖은 쇳덩이가 옥상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썬이 입을 열었다.
“형. 가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도 썬은 스쿠터의 시동을 켠다. 나도 말없이 텐덤 시트에 올라탔다. 땅은 물이 차있는 수영장 바닥 같았다. 스쿠터가 통 통 통 뜀박질하자 난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선 아버지가 우리로부터 점차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