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모를 이야기

출구와 입구, 그 방향성과 심오함에 대하여

by 데미안

한때, 내게 가장 큰 고민은 친구 K에 관한 것이었다. K는 걸핏하면 서른다섯에 자살하겠다는 녀석이었다. 서른 즈음 만해도 농담으로 치부하긴 했지만 보험사기에 준하는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하는 녀석을 목도하니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싶었다. 나는 5년 동안 최선을 다해 K를 설득했고 그에 대한 피로도는 극에 달해 있었다.


디데이는 코앞이었고 K의 뜻은 확고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판이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K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아무튼 그러던 와중에 출국 일정이 잡혀버린 터라 고심 끝에 고등학교 동창인 업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부탁 하나만 하자. 실은 K가 죽으려고 해. 내가 조만간 출국이라, 그동안만 너도 신경 좀 써주라.”


간단히 안부부터 묻고 요약하자면 대충 저런 내용을 토로했다. 수화기 너머의 업수는 피식 웃어넘기는 것 같았다. 참고로 업수는 ‘씨 없는 수박’을 줄여 부르는 별명이다. 임신에 가까스로 성공한 그 녀석을 두고 동창모임에서 짓궂게 놀리는 모양새였다. 나는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다.


“믿기 힘든 거 알아. 처음엔 나도 너처럼 웃어넘겼으니까.”


여전히 스피커 홀은 고요하다.


“농담이 아니구나? K가 정말 자살하려 한다고?”


업수는 충격을 받은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곧바로 확인 사살해버렸다.


“그래. 계획한 지는 벌써 5년 정도 됐지. 곧 실행할 생각인 거 같아.”


그러자 업수는 흥분한 듯 말을 더듬는다.


“K가? 전혀 그런 낌새 못 느꼈는데. 잠깐! 그럼 넌 안 말리고 뭐 하는 거야?”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안 말려봤겠냐. 좋게 설득도 해보고 화도 내 보고, 상담 예방센터에 문의도 해보고, 경찰서에도 연락해보고, 심지어는 그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한테 팬레터까지 써봤어. 대신 말려달라고 말이야. 별짓 다해봤다고.”


“그럼 부모님은? 그 친구 부모님한테는 알려봤어?”


“연락처도 몰라. 게다가 대뜸 연락해서 K친구인데 K가 죽으려고 하니 말려주세요, 하면 순순히 믿어줄까?”


그때부터 녀석은 나를 비난하는 투로 말했다.


“에이. 그건 아니다. 부모님한테라도 알려야지.”


“그게 능사가 아니야. 친구로서 자기 의사를 존중해달라는데 내가 더 이상 뭘 어떻게 하겠어. 개입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도 입장이 난처하다고.”


“그래도 그건 아니지. 걔네 부모님한테라도 알려야지.”


업수는 꼭 나사 하나 빠진 것 마냥 덜덜거리고 있었다. 나는 덤덤하게 받아쳤다.


“나이가 몇 개인데 자꾸 부모 타령이냐. 부모한테 알리기만 하면 다 해결될 거 같아? 오히려 역효과 날 수도 있어."


“너 그러다 방관 죄로 잡혀갈걸?”


한참 후에 지껄인다는 녀석의 말이 저랬다. 방관 죄가 뭔지나 알고 씨부리는 건가. 미취학 아동과 대화하는 기분이 들어 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래도 대충 대화를 마무리해야겠다 싶어 졌다.


“어쨌든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해. 자살하지 못하도록 24시간 내내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에이. 그건 아니다. 그럼 너는 대체 나한테 이 얘기를 왜 하는 건데?”


“이미 말했잖아. 상의하고 싶었다고. 너나 나나 K한테는 몇 안 되는 동창이잖아. 도움이 필요해.”


갑자기 녀석이 빈정거렸다.


“아아. 그러니까 K가 자살하면 나보고 가서 봐달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외국에서는 연락이 어려운 경우도 있어. 네가 사정을 알고 있으면 내가 대신 연락을 부탁할 수도 있고...”


그러자 업수가 중간에 내 말을 자르고 말했다.


“야. 그건 아니지. 너 지금 실수한 거야.”


나를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수라니? 이런 얘기를 너한테 꺼낸 거 말이야?”


“진짜 그러는 거 아니다. 너 실수하는 거야.”


머리를 크게 다치기라도 한 건지 그때부터 녀석은 같은 말만 무한반복이다. 나는 화를 꾹꾹 누르며 차분히 대꾸했다.


“좋아. 어떤 부분이 실수라는 건데? 그 친구 부모님한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거?”


“지금 자꾸 같은 얘기만 돌고 도는 거 알아? 너 진짜 실수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 실수라는 게 대체 뭔데? 정말 모르겠어서 묻는 거야.”


“아니다. 됐다. 앞으로는 그냥 연락하지 말아 주라.”


그다음 툭 하고 끊어진 통화음을 듣고 나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 뒤로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두 번이나 업수에게 전화를 했으나 녀석은 내 연락을 피해 도망쳤다. 십 수년 된 관계를 미성숙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까지 장문의 문자를 남기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이다.






그런 허무한 기억에서 멀어져 갈 무렵, 지인의 부모님의 부고를 접하고 부랴부랴 모 대학병원 부속 장례식장으로 향한 날이었다. 장례식장까지는 거리가 꽤 있던 까닭에 퇴근시간에야 도착하게 되었고 덕분에 조문객들 틈바구니에서 정신없이 조문을 마쳤더랬다.


지하 2층의 빈소를 빠져나와 한적한 복도에 다다르니 비로소 피로가 밀려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화환도 없는 제11 빈소 앞에서 발걸음이 뚝 멈춰진다. 조문객도 향합, 향로도 없다. 오로지 빈소 바닥에 중고생 정도로 보이는 사내 녀석의 영정사진만 뎅그러니 놓여있을 뿐. 그리고 바로 그 옆에 업수와 닮은 남자가 흰색 정장을 입은 채 앉아있었다.


흰색 정장?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곧이어 그 남자도 나를 발견했으나 그저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다.


“나야. 유림이. 오랜만이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남자는 조용히 대답한다.


“아무래도 사람을 착각하신 모양입니다.”


그러자 방금까지 청년으로 보이던 그의 얼굴이 어쩐지 중년에 가까워 보였다.


“죄송합니다. 아는 사람과 닮아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나는 황급히 사과하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남자가 나를 급히 불러 세웠다.


“저기...”


그러고는 한 템포 침묵, 남자는 주름이 깊게 파인 손으로 하얀 꽃들이 수북이 담긴 원형 라탄 바구니를 나에게 건넸다.


“이 수국을 좀 밖으로 옮겨주실 수 있으신지요? 부디 출구까지만...”


나는 얼떨결에 바구니를 받아 들고 물었다.


“버리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남자가 이제는 노년의 얼굴로 간청하고 있었다.


“1층 입구에 두면 될까요?”


내가 묻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키지는 않았으나 일단은 그 상자를 들고서 빈소를 빠져나왔다. 반짝거리는 대리석 계단을 곧장 올라 로비를 성큼성큼 걷는다. 1층 입구는 회전문이다. 돌고 돌아 입구에 닿아 회전문 기둥 앞에 갈색 바구니를 내려두고 손바닥을 탁탁 털어냈다.


“저기요, 선생님. 그거 거기 두고 가시려는 건 아니죠?”


뒤를 돌아보니 보라색 ‘도우미’ 배지를 가슴팍에 단 건물 관리인이었다.


“그게... 저도 부탁을 받은 거라서요. 여기다 꽃을 두면 된다고 하던데요.”


“꽃이라뇨. 그거 폐기물로 처리하셔야 됩니다.”


폐기물? 나는 의아해져서 다시 라탄 바구니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 수국 더미가 넘쳐흐르던 그 바구니에, 꽃들은 온데간데없고, 줄기와 뿌리만 너저분하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누구한테 부탁받으셨는데요?”


관리인의 질문에 나는 떨떠름하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11 빈소요. 그곳에 계신 남자분이신데요.”


관리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현재 11 빈소는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번 달부터 축소 운영 중이란 말입니다. 선생님. 이건 제가 치워드릴게요. 근데 양심은 좀 지킵시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멀어지는 관리인의 등을 황망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도중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하고 들었다. 나는 다시 회전문을 돌아 남자가 있던 빈소를 향해 뜀박질했다.


도착해보니 관리인의 말 대로였다. ‘운영 잠정 중단’이라는 팻말이 붙은 제11 빈소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사용된 적이 없던 것처럼 말이다.






기묘한 일을 겪은 그날 밤,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쓸데없는 얘기들로 줄곧 변죽만 울리던 내가 무심한 척 질문을 던진다.


“혹시 업수 소식은 알아?”


“업수? 글쎄다. 최근에 들은 얘기로는 득남했다던데. 개인적으로 연락은 안 해서 잘 모르겠네. 근데 걔는 갑자기 왜?”


“아아. 실은 아까 장례식장에 다녀왔는데...”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괜히 얘기 꺼내봤자 꿈꾼 거 아니냐며 핀잔이나 듣겠지 뭐. 나는 일부러 화제를 돌린다.


“야 근데. 혹시 장례식장에서 수국도 사용하나?”


“장례식은 국화 아닌가? 잘은 모르겠다. 미안.”


“미안하긴. 모르면 모르는 거지.”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으나 눈꺼풀이 무거운 걸 보면 이미 꿈의 입구로 향하는 셈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실의 출구일지도 모르고. 역시 그랬다. 모르면 모를 얘기지.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애쓰지 않게 되었다.